아들의 롤러코스터 하루

뉴욕 고등학교의 펜싱 시즌

by Henry Hong

지난 9월에 시작한 고등학교 펜싱 시즌이 끝났다.

각 학교를 대표해 나온 선수들 중에는 실력을 뽐낸 아이도 있었고,

실력 차이를 실감하며 칼에 찔리기만 한 아이도 있었다.

아빠의 눈으로 경기를 지켜보자니 칼에 찔려 패배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메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칼에 찔려 아프기까지 한데 시합에 진 아이들이다.

격투기처럼 과격하지는 않지만

멋진 펜싱 유니폼 밑으로는 멍투성이 몸이다.

딱 기분 나쁠 만큼 아프다.


시즌 마지막 날 시합은 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있었다.

예선을 마친 학교들이 모여

에페와 플뢰레 종목의 학교 순위를 가리고, 득점 계산을 해

종합 우승팀을 가리는 날이다. (샤브레는 종목에 없다.)


오전 6시 30분에 집을 나서야 했다. 시합장 까지는 1시간 거리

가는 길에 도넛 가게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구입했다

아들이 밥맛, 입맛 없다지만 뭐라도 먹여야 했다.


아들이 중학교 다닐 때 까지는 펜싱 클럽에 가입 해, 전국 대회 참여도 하고

운동도 곧잘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개인 클럽 활동을 그만두고

학교팀에서만 운동을 해왔다.

아들은 신입생 때를 제외하고 작년부터 에페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

(뉴욕의 고등학교는 4년 제이다. 초등학교는 5년제, 초중고를 모두 더하면 12년, 한국과 동일하다)


작년은 팬데믹 때문에 펜싱 시즌이 취소됐고

이번이 주장을 맡고 처음 맞는 대회였다.

1주일 전에 있었던 개인전에서 아들은 6위를 했다. 신입생 때 이미 3위를 했었던 경험이 있어

많은 아쉬움이 따랐다.

아들은 팀을 이끌고 복수에 나서겠다며 칼을 갈았다.

하지만 팀원들을 보고 있자면 주장의 부담만 커질 뿐이었다.

아들의 부담감이 나에게 까지 전해졌다.

나조차도 입맛, 밥맛 다 떨어진 상황, 고작 고등학교 시합의 학부모 마음이 이런데

국가대표를 둔 부모님들 마음은 어떠실지 상상도 안된다.


너무 큰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아들은 평소와 너무도 다른 펜싱을 했다.

서두르다가 득점을 허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에 비해 팀원들은 평소와 다르게 잘 싸웠다.

주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예선 때만 해도 점수 따는 기계였는데 오늘은 점수 잃는 기계가 돼버렸다.

아들은 거의 울상이 되었다.

거기다 결정적 심판의 오심. 아들의 멘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제 몫을 못한다는 창피함, 부담감.. 그럴수록 게임은 더 안 풀렸다.

그리고 패배.... 아들은 장비를 팽개치고 체육관을 뛰쳐나갔다.

감당하기 힘든 부담감을 느껴 불쌍해 보였던 아들이지만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동은 용서할 수 없다.

관중석에 앉아있던 나도 바로 쫓아나갔다.

처음에는 어디로 갔는지 아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영화에서 보면 이럴 때 화장실이나

어느 구석에서 선수가 울고 있던데..

아들은 아예 체육관 밖에서 울고 있었다.

아들을 보니 나도 울컥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당장 들어가서 팀원들과 같이 하라고 했다.

시합은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지만 잘못된 매너는 용서가 안된다고 했다.

주장으로서 시합장을 뛰쳐나가는 행동을 팀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나는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본능적으로 행동을 한 거 같다.

아들은 안 운 척 눈물을 닦아냈다. 체육관으로 들어가려는 아들을 돌려세워 안아줬다.

"It' OK, Don't worry You did your best"

위로가 안 되겠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팀 주장을 해본 적이 없는 아빠의 한계였다.


에페 시합이 끝나고 플뢰레 시합이 시작됐다.

아들 학교의 플뢰레 팀은 선전했지만 결승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제 남은 건 두 종목의 점수를 더해 종합순위를 가리는 일만 남았다.


에페와 플뢰레 두 종목 모두에서 고르게 좋은 성적을 낸 스타이브슨 고등학교가

일찌감치 단체 우승을 확정 지었다.

점수 합계 후, 바로 순위 발표가 있을 차례였는데,

본부석에서 아들의 학교 코치와 헌터고 코치를 부른다. 그리고 들리는 웅성거림

서로 물고 물리는 혈전 때문이었는지,

두 학교의 점수(찌르고 찔린 횟수)가 정확히 똑같아 두 종목 주장이 대표로 나와

Sudden-Death rule로 대결을 한단다. 한 번 찔리면 경기 종료

학교의 명예를 건 칼싸움이다.

축구로 치면 페널티 킥

펜싱에서 좀처럼 없는 일이란다.

옷까지 갈아입었던 아들이 바빠진다. 나는 차에 갖다 놨던 장비를 가지러 주차장까지

뛰어갔다 왔다. 헥헥.. 숨을 몰아쉬며 아들을 쳐다봤다.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긴장돼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상대는 헌터의 주장.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아들과 어릴 적부터 클럽 친구다.

중학교 때 까지는 아들이 한 수 위였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상대. 신입생 때 개인전 1위, 올해는 2위를 한 강자였다.


에페인 아들이 먼저 경기를 했다. 시작하자마자 찔리고 졌다.

다음은 플뢰레의 아들팀 선수가 상대를 찔렀다. 와우 겨우 기사회생

1:1 동점 상황

바로 이어서 같은 플뢰레 주장끼리 경기가 진행됐다.

룰이 왜 이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번에도 아들팀 선수가 상대 선수를 이겼다.

2:1이 되는 상황이었다.

팀원이 찍은 경기 모습


이제 아들 순서.. 아들이 한 번만 찌르면 게임 끝

이제는 상대팀 아이의 부담감이 커진 상황이다.


몇 번의 공방

그리고 그림같이(?) 들어 간 아들의 공격!


바로 터진 함성, 학교 팀원들이 아들을 얼싸안고 겅중겅중 뛰었다.


단체전 2위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 저 높이 체육관의 조명을 바라봤다.


부담감의 무게를 감당하던 아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차마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들! 수고 많았다!


펜싱3.jpg


경기가 끝난 후, 주차장에서 아들과 마지막 경기를 한 아이와 엄마를 우연히 만났다.

우리와 알고 지낸 지 7년쯤 된 중국 가족이다.

어떤 위로 건 해주고 싶었다. 주춤거리다가,

나는 아들의 친구를 안아줬다. 하마터면 그 애 엄마를 안을 뻔했다.


"제이슨 힘내라! 그냥 러키 샷 어었어!" 그 아이가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제이슨의 엄마가 내 아들에게 축하를 건넸다.


그 후의 침묵이 견디기 힘들어,

행운을 바란다는 빠른 인사와

내년 시즌을 기약하자며 헤어졌다.


오늘 아들의 심리상태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

오르락내리락.. 울었다, 웃었다, 우울, 환호..

그에 덩달아 내 심리상태도 널뛰기를 했다.

부담감이라는 게 적당하면 긍정적 요인이 분명 있을 텐데

그 적당한 부담감이 세상에 있기는 한 건가요?



이 세상 모든 운동선수와 그 가족분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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