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입학 후, 바로 평가 시험이 있었다.
반에서 25등을 했다.
한 반에 71명이 있던 시절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 참을 놀다가 치른 시험에 중간 이상은 갔으니
고등학교 별 거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공부하면 상위권 진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한 달이 좀 지나고 첫 월례고사를 치렀다.
반에서 40 몇 등을 했다.
중간도 못 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나 빼고 모두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건가?
부모님께 성적표를 보여 줄 용기? 물론 없었다.
다음 시험에는 꼭 만회를 해야 할 텐데.. 조급함 뿐이다.
공부는 뜻대로 안 됐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보니 중학교와는 다른 차원의 유혹들이 있었다.
근처 여학교의 축제 방문, 서클 활동, 삼류 극장 탐방.. 하다 못해 친구들과 목적지 없이
순환 버스를 타고 맴도는 일 까지 재미있을 때였다.
어김없이 한 달의 시간이 흐르고 월례고사 날
죽을 상을 하고 앉아 서는 시험지를 받아 들었다.
문제가 눈에 들어 올리가 없다.
고개를 숙이고는 속으로 한 숨만 내셨다.
슬쩍 고개 들어보니 나 빼고 모두들 시험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시험 감독에 관심이 없으셨는지 창 밖만 내다보고 계셨다.
나는 옆자리의 희원이를 힐끔 봤다.
그 친구의 답안지가 훤히 보였다.
조그만 교실에 70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으니 당연하다.
고개를 돌리는 수고도 필요 없었다.
눈동자만 우로 돌리면 희원이의 답은 내 것이 되었다.
희원이는 반에서 1, 2등을 다투고 전교에서는 10등 내외를 오가는 학생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희원이의 답은 내 것이 되었고, 나는 신께 감사드렸다.
시험 결과? 희원이의 답을 전부 베끼지 않은 나의 주도면밀함에 힘 입어
반에서 15등, 희원이는 5등 정도 했던 걸로 기억된다.
그 후로 컨닝은 계속됐다.
시험공부는 하나마다였다.
열심히 공부하면 뭐하나?
곁눈질 몇 번이면 성적이 더 좋게 나오는데..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몇 번의 시험을 거치며 죄책감이 들었다.
내 실력으로 시험을 치르고 싶어졌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내 평생 두 번째로 공부를 열심히 한 시기였다.
최소한 암기 과목은 다 맞자는 마음으로 시험공부에 임했다.
시험이 끝나고 결과가 나왔다.
반에서 42등..
참담한 마음이었다.
기가 죽었지만 내 실력으로 시험을 봤다고 의미 부여를 했다.
다음 시험부터는 나아지겠지..
공부를 했다.
그리고 치러진 시험
결과는?
41등
모두가 나 만큼은 공부를 했나 보다.
자신감은 땅 밑으로만 향했다.
시험 결과가 나오고 며칠이 지났다.
방과 후, 교실 청소를 끝마쳐 가는 데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청소 검사를 하러 오셨는 줄 알았는데,
다른 아이들에게는 수고했다며 가라 하시고
나에게만 남으라고 하셨다.
무슨 일이시지?
텅 빈 교실에 의자 두 개를 놓고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깡마른 몸매에 금테 안경, 포마드로 잘 정리된 가르마
일제 강점기의 지식인 같은 모습의 중년 남자.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인자하게 웃으시며 요즘 공부는 어떠냐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냐고 물으셨다.
우물쭈물 거리며 아무 일 없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이 의자를 내 쪽으로 옮기며, 다가와 앉으셨다.
그리고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이 기도를 해주시겠다고 했다.
당신의 오른손을 내 머리에 얹으시고는
기도가 시작됐다.
선생님은 나를 말 못 할 고민이 있는 제자라 여기시며
열심히 기도를 해주셨다.
기도를 마치시고는 어떤 문제이 건
너는 이겨낼 수 있다고 용기까지 주셨다.
고개 숙인 나는 코를 훌쩍거리고만 있었다.
선생님은 갑자기 떨어진 내 성적에 말 못 할 이유가 있다고 여기셨다.
없던 고민이 생겼다.
선생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시험공부를 포기했다.
컨닝에 집중했다.
성적은 다시 좋아졌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이었다.
오전에 학교가 끝나는 시험 기간에는 극장을 가기도 좋았다.
삼류 극장을 찾아다니며 동시 상영 영화들을 섭렵했다.
나의 시네마 파라디소를 형성하던 화양연화였다.
선생님께 감사할 뿐이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컨닝은 그렇게 쭈욱 1학년을 마칠 때까지 지속됐다.
2학년부터 시작될 끔찍한 고난의 세월을 모르던 날들이었다....
내 아이에게 Cheating(컨닝)은 절대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너에게는 내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없다고는 말 못 한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