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나이

내 인생 책

by Henry Hong

내가 아들의 나이였을 때

인생의 책을 만났다.


비밀일기

영국 작가 수 타운센드(Sue Townsend)

원제 "The Secret Diary of Adrian Mole"

한국에서 얼마나 팔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에드리안이라는 아이가 겪는 좌충우돌 성장기

내용이야 가족, 친구들의 소소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고 2 여름에 읽은 책으로 인해 35년간 일기 쓰기를 하고 있다.

일기 쓰기가 병영 메모, 업무 일지, 취중 넋두리의 모습을 띈 적은 있지만.

일기 쓰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일기1.jpg


'비밀일기'를 읽고 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야구 경기를 보다가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 한

무라카미 하루키만큼 커다란 결심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는데 이유 같은 게 있어야 하나?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기 쓰기를 지속하며 주변에서 숱하게 듣던 질문


"일기를 왜 써?"


예나 지금이나 내 대답은 한결같다.


"늙어서 심심할 때 읽으려고.."


저녁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마치면

자연스럽게 책꽂이 옆, 소파의 오른쪽 귀퉁이에 앉는다.

이어폰을 끼고 80년대 음악을 선곡한다.

들국화나 이문세의 노래가 되기도 하고,

홍콩 영화 음악이 되기도 하고,

나오코 가와이나 아키나 나카모리를 듣기도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언제나 80년대의 노래들.

어차피 노래는 중요치 않다.

일기를 위한 무드를 조성하면 된다.

준비 끝, 일기장을 펼치고 일기 쓰기를 시작한다.

일기를 쓰고 있으면 아내나 아들이 웬만해서는 말도 안 건다.

내가 짜증 낼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 만의 시간 나 만의 생각에 빠져 하루를 기록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비정상인들의 뒷 담화, 역시 정상인은 드물다.

사소한 립서비스에 기뻤던 일을 적기도 한다. 나의 속물근성.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글이다 보니

내가 봐도 어느 때는 가관이다. 중년의 찌질함.

다시는 안 보려 했던 정 사장과 2주 후에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세상살이 쉽지가 않다.

아직도 모르겠는 것투성이다.


일기를 써서 좋은 점?

글쎄 잘 모르겠다.

단지 확실한 게 있다면,

지오디의 박준형과 동갑 인,

선미, 은영, 선주, 수경, 재아가 30여 년 전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1992년 6월 3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2003년 4월 1일에 무슨 느낌이었는 지를 정확히 기억하는 중년이 되었다는 것 정도.

요즘은 내가 왜 아내나 아들에게 삐졌는지 확실히 안다.

일기 없이 화난 이유 알기? 쉽지 않다.


가끔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30여 년 전 그들이 저지른 비행을 폭로한다.

한결같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친구들

중년이 된 나이..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잔소리할 자격은 있는 건가?

그냥 그들의 젊음이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면 될 것을..


아들이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부터 일기 쓰기를 권유했다.


일기2.jpg


아들은 6살인가에 사준 일기장을 10여 년째 쓰고 있다.

일기를 석판에 새기는 것도 아닌데 일기장 하나를 평생 쓸 모양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