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가 애쓴다

인내심의 한계

by Henry Hong

하버드 대학의 언어 학자와 인터뷰 기회가 있었다.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60대로 보이는 여 교수였고,

여유 있는 웃음과 동구권 억양이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는 조기 영어 교육에 관한 내용이었다.


질문 내용 중,

"외국어 교육은 언제 시작하는 게 좋은 가?"

"12살 이전에 시작해야 하는 게 맞는 가?"


교수의 대답은 여유 있는 모습만큼 심심했다.

"아무 때고 내킬 때 시작하면 돼"


"늦게 시작하면 발음에 문제가 있지 않나?"


"미국 사람이나 영국 사람 같지는 않겠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발음보다는 어휘력이 더 중요하다."


평생 영어의 벽에 부딪친 나로서는 반가운 대답이었다.

언제 건 배우고자 하는 욕구만 있다면 외국어 공부는 어렵지 않다고

해석을 했다.


준비한 질문이 모두 끝나고 카메라 장비를 챙기며

개인적인 궁금증을 물었다.


내 아이가 두 살 정도 됐는데, 엄마는 영어권이고

나는 한국어권이다.

집안에서 두 언어를 써도 괜찮은지?를 질문했다.


교수는 아기에게 한 가지 언어를 쓰는 게 좋다고 했다.

이제 막 언어에 노출되는 시기인데 아기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두 가지 언어를 집에서 쓰면 자연스럽게 두 언어를 익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하버드 언어 학자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아기와의 소통은 영어로만 했다.

그 아기가 지금은 16세가 됐다.

여러분 제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집안에서 영어가 표준어가 되다 보니

아이는 한국어와 저만치 멀어져 있다.

방학 때 한국에 가서 잠깐잠깐 익힌 한국어 수준은 우습기만 하다.

그마저도 팬데믹 이전 3년 전이다.

안녕히 가세요! 와 안녕히 계세요! 를 헷갈리는 수준

발음은 더 웃기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아이는 한국어를 더 멀리하게 됐다.


"한국말만 하면 사람들이 웃잖아.." 아들이 하소연한다.


"얘야! 네가 웃겼잖아.." 내가 위로한다.


중학교에 들어 가 제2 외국어를 선택해야 할 때도

스패니쉬(Spanish)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와 스패니쉬는 공통점이 많은 언어다 보니 성적은 좋게 나왔다.

하지만 집안에서의 한국어 입지는 좁아지기만 했다.

영어, 스패니쉬 그리고 한국어

한국어가 제3 외국어가 돼버렸다.


한글2.jpg 아무래도 교재를 잘 못 선택했나 봐요.


한국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통화라도 하게 되면

통역하느라 나만 바빠진다.

구글 번역기 덕분에 아주 조금 편해지기는 했다.


예전 하버드 교수가 이야기한 외국어 교육의 기회는 언제가 될지?

뼛속까지 한국인인 아빠의 고민은 커지기만 했다.

그리고 코로나 시국.

세 식구가 집에 갇혀 지내는 시간은 길어만 갔다.


TV의 재발견

스트리밍 서비스로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다.


'킹덤'으로 시작된 한국 드라마 보기가 '불가살'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이가 한국어에 관심이 생겼다.

부쩍 질문이 많아졌다.

나에게 폐하와 전하의 차이를 묻는다.

질문 수준이 이따위?!

대답 전에 인터넷 검색을 해야 한다.


팬데믹 상황에 돈벌이는 줄고.

집안에 갇혀 있는 시간만 많아졌는데..

아들이 한국어에 관심이 생겼다.

시간을 쪼개 한국어 공부도 한다.

이 시국이 지나고 한국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한국어로 대화하는 게 목표란다.


한글1.jpg


하버드 교수가 이야기 한 대로,

본인의 욕구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기는 했는데 실력은?

버터 냄새 풍기는 억양으로 뺨 맞는 경우나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어가 애쓴다. 아들이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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