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욕댁 Nov 13. 2024

최고의 혼주 한복을 찾기 위해 들인 내 수고를 인정하라

"수미야, 엄마는 이런 한복 꼭 입고 싶어."


고급스러운 미색 저고리에 신부 엄마를 상징하는 핑크색 치마. 혼주 한복을 고르러 가기 전 엄마는 대뜸 내게 폰을 들이밀며 본인이 원하는 한복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땡땡이 결혼식을 갔는데, 땡땡이 엄마 한복이 예쁘더라. 거기서 할까?"

"엄마 내가 여기 찾아놨는데 여기서 하자. 엄마가 원하는 색이 이 가게에 딱 있어."


내가 손품 팔아 찾아온 A 한복집의 한복을 엄마에게 보여주자 내 예상과는 다르게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 저었다. 잘 모르겠단다. 그러면서 본인이 생각했을 때 A보단 B한복이 더 좋은 것 같다며, B 한복집으로 피팅 예약을 해달라고 했다.


B 한복집에는 엄마가 생각하는 한복이 없을 텐데. 그렇지만 계속해서 B 한복을 주장하는 엄마의 의견을 꺾을 수 없어 그렇다면 A 한복집과 B 한복집 둘 다 피팅을 해보고 결정하자고 설득했다.



"혼주 한복이랑 혼주 메이크업 예약했어! 진짜 예쁜 곳으로 했어. 어머니도 정말 맘에 들어하셨으면 좋겠다."

"비싼 곳이면 엄마가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어. 우리 엄마는 그런 거 잘 몰라."


가격대를 말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람? 그저 어머니와 엄마 두 분 모두를 위해 예쁜 곳으로 찾고 찾아서 예약했다고 자랑하듯 말한 거였는데 기껏 저런 소리나 듣자니 억울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남편은 내가 이런 곳을 예약했다고 어머니에게 말을 전하길 바라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저 내가 바랐던 말은 단 한마디였다. "수미야, 너무 예쁘다. 수고했어."


그래. 어차피 남편이 이 한복 입는 것도 아닌데, 그냥 어머니들이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복 피팅 날짜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남편의 말은 쉬이 잊히지 않았다. 계속해서 남편의 말이 내 마음 안에서 맴돌았다.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어...'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B 한복집에는 엄마가 찾던 미색의 저고리에 핑크색 치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B 한복집도 어느 정도 괜찮으리라 생각했지만 사진과 실물의 갭은 컸다. 혹자는 한복에 왜 그렇게 신경을 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로 두 분이 최고로 예쁜 걸 입었으면 좋겠는 마음이 컸다.


남편을 키우느라 고생하신 시어머니, 그리고 나를 키우느라 고생한 우리 엄마 두 사람은 결혼식에 충분히 빛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우리만의 잔칫날을 맞이하기까지 우리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며 살아온 두 사람. 이제 그렇게 잘 큰 자식들이 본인들의 품을 떠나 둥지를 틀러 가는 식을 하는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를 입히고 싶었다.


그렇게 B 한복집에서의 피팅을 마치고 A 한복집으로 향했다. A 한복집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여기 고급 한복집이오'라는 아우라를 마구 뿜어댔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가게 부원장이라는 분이 원하는 색상을 물어본 후 먼저 시어머니가 원하셨던 색상 계열의 한복을 여러 벌 가져오셨다. 그중 그 한복집의 가장 기본 라인을 먼저 입혀주셨다. 그리고 한복을 입고 나온 시어머니를 보자마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다.'

고급스러운 미색 저고리에 영롱한 에메랄드빛 치마.

내가 생각했던 한복이었다.

아름다우셨던 어머니




연신 소녀처럼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차례가 끝나고 엄마의 차례가 왔다. 먼저 시어머니와 같은 한복을 입었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또 한번 적중했다. 엄마가 입고 나온 한복은 엄마가 내게 보여주며 내내 찾던 그 한복이었다.


문이 열리고 소녀처럼 좋아하던 엄마의 모습은 평생 내 마음에 남을 만큼 강렬했다.

혼주 한복을 입은 엄마는 혼주가 아니라 왠지 모르게 십 대 소녀 같이 느껴졌다.


시어머니와 엄마, 두 분 모두 그 자리에서 결정하실 만큼 만족스러운 한복이었다.

그리고 이 한복집을 고른 내 안목에 혼자 뿌듯했다.




"아유, 너무 비싸죠. 얘가 워낙 별나서. 한복 대여 50만 원이면 할 텐데."

두 어머니들이 고른 한복은 생각보다 고가였다. 원체 가격대가 있는 한복집이기도 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비싼 라인을 골랐으니 비싸다 놀랄 만도 했다. 사돈에게 괜히 미안했는지 엄마는 연신 너무 비쌌다, 수미가 별나서 그렇다를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마음 한편에 담아두었던 남편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부담스러워하실 수도 있어...'


물론 어머니는 전혀 부담스러워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드는 한복을 하셔서 행복해하셨다. 그런데 이걸 두고 연신 내가 별나다 말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있자니 엄마의 속뜻이 무엇인 줄 알면서도 진짜 시어머님께 부담을 드렸나 싶은 마음과 함께 서운함이 폭풍같이 차올랐다. 그렇게 나는 한복 투어를 마치고 시어머니와 함께 식사 자리를 하는 곳에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비단 그 말 때문만이 아니었다. 엄마가 가장 예쁜 걸 입었으면 했던 나의 마음, 엄마가 그날 가장 예뻤으면 했던 그 마음이 깡그리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화장실에서 몰래 울고 나왔지만 이미 토끼눈이 되어버린 나를 보고 어머니는 깜짝 놀랐고, 엄마는 그제야 한복이 너무 예뻤다고 칭찬해 주기 시작했다.


이미 내 마음은 토라질 대로 토라져버렸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남편에게서부터 듣고팠던 그 한마디, "수미야, 너무 예쁘다. 마음에 들어." 였는데. 그 말은 왜 그렇게도 듣기가 힘든 건지.


어찌어찌 어머니와 식사자리를 마무리하고 엄마와 함께 호텔로 돌아오던 지하철에서 나는 입을 꾹 다문채 지하의 깜깜한 벽만 보이는 창밖만을 응시했다.




"수미야, 미안해. 생각보다 비싸다 보니 혹시라도 사돈이 놀라셨을까 봐 그랬지. 진짜 이쁘더라."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한번 토라진 마음은 쉬이 달래 지지 않았다.


"수미야, 근데 있잖아. 한복이 그렇게 예쁠 줄 몰랐어. 엄마는 여태껏 입어본 한복이 다 이상했거든. “


이게 무슨 말이람.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진 걸 알아챘는지 엄마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엄마 결혼식 때 입었던 한복은 그냥 식장에 있던 싸구려 한복이었어. 그런 한복을 입고 서있으니 나한테 한복이 진짜 안 어울리더라고. 그래서 나는 이때까지 한복이 안 어울리는 사람인 줄 알았어. 그런데 오늘 너무 예쁘더라. 거기 실장도 나보고 어깨선이랑 모든 게 한복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 몸 이래. 처음 알았어."


그렇게 호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마워 수미야. 진심이야. 하나님이 수미 결혼식을 통해 엄마의 상처를 다 치유해 주시는 것 같다. 정말로. 이렇게 예쁘다 못해 최고급 한복도 입어보고. 너무 예쁘더라."


순간 그저 동네 예식장에서 단돈 몇백만 원에 아빠와 휘뚜루마뚜루 결혼식을 올려버린 엄마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차올랐다. 이렇게 예쁜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엄마는 너무 많이 희생하고 살았다.

좋은 게 있으면 일단 나 먼저. 예쁜 것도 매번 수미가 다 하라고, 자신은 필요 없다 말하며 나를 위해 살아온 엄마의 삶이 생각났다. 엄마는 그렇게 날 위해 평생을 살았는데 내가 그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알아준 적이 있었나.


부끄러웠다.

엄마는 삼십여 년을 날 위해 살았지만 내게 고맙다는 말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고작 그 하루, 엄마가 내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토라졌던 것이었다.


"아니야 엄마. 내가 미안해. 내가 인정욕구가 엄청 많은 사람인가 봐."

"수미가 있어서 엄마는 정말 다행이야. A 한복집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수미는 그런 게 어떻게 다 보이니? B 한복집은 진짜 별로더라. 내가 왜 거기 가자고 계속 고집했는지 모르겠어."


셀프 디스를 시전 하는 엄마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는 언제 싸웠냐는 듯 조잘거리며 한복집에서 찍은 사진을 자기 전까지 계속 들여다봤다. 아무리 봐도 한복을 너무 잘 골랐다며. 그렇게 그날 밤을 마무리했다.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그날을 마음에 새기며.




시월의 마지막 날, 피앙세 비자가 승인이 났다. 이렇게 나는 내년 초, 미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빨리 나온 덕에 양가 부모님 모두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나또한 빨리 나와서 1월에 남편과 함께 미국에 들어가는 걸 누구보다 바랐지만 사실은 내심 조금 더 늦게 나와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이렇게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서. 매번 토라지고 사소한 일로 싸워도 엄마 아빠와 헤어지는 생각만 하면 닭똥 같은 눈물이 자동으로 떨어진다. 조금만 덜 예민하게 굴고 잘해줘야지 다짐하지만 아침부터 청소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 금세 그런 마음은 싹 사라지고 또 틱틱거리는 철부지 딸로 변신한다.


어쩌겠나, 참.

여러모로 이런 힘든 딸을 키우느라 엄마가 수고가 많았어.

결혼식에 최고로 예쁘자.





                     

이전 04화 남편의 백마디 위로보다 엄마의 말 한마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