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심은 데 T 난다던데 우리 집안만큼은 예외였다. 엄마와 아빠는 T, 나는 F.
어렸을 적 엄마와 내가 가장 많이 다투게 된 이유는 대부분 서로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정서적인 공감을 원하는 내게 그건 네가 잘못했네라고 말하는 엄마. 괜찮아? 놀랐겠네,라고 말해주면 안 되는 거냐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도 엄마에겐 통하지 않았다. 감정적 이해를 바라는 나를 엄마는 더욱 날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그렇게 싸운 날이면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홀로 이불을 덮어쓰고 흐느껴 울었다.
결혼 전, 엄마가 대뜸 본인들이 경제적으로 엄청 풍족해서 네가 일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 수 있었으면 싱글로 계속 살았을 것이냐 물었다. 이 질문에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경제적인 상황은 내게 1순위 이유가 아니었다. 난 어릴 적 이불속에서 홀로 흐느낄 때 다짐했었다. 반드시 소울메이트를 찾으리라고. 홀로 우는 날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사람을.
그랬던 내게 지금의 남편이 왔다.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이 내게 절대로 나를 홀로 두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줬기 때문이다. 때는 내가 레바논에 있을 때였다. 선교지는 내가 상상하던 곳과는 많이 달랐다. 중동이어서 따뜻할 줄 알았던 내 생각과는 달리 레바논은 너무 추웠다. 그 혹한의 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며 첫 주부터 감기가 걸렸더랬다. 게다가 나를 제외하고도 6명이나 되는 팀원들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 멘붕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부다비 지역의 한인교회에 다니는 중고등부 아이들이 레바논으로 수련회를 오게 되었다.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는 중 마주한 한국 아이들은 참 예뻤다. 특히 레바논 난민 친구들을 위해 찬양을 준비해 온 모습이 너무 예뻤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이 준비해 온 워십 율동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한 고등학생 남자애의 얼굴에 그 당시 전 남자 친구이었던 남편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떨쳐내려고 해도 계속해서 그 아이의 얼굴에 남편의 얼굴이 오버랩되었고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흘렀다.
아직 내가 얘를 못 잊은 걸까?
4년 간의 연애 끝에 우리는 이별했었다. 레바논으로 떠날 때에는 헤어진 지 일 년이 훨씬 지난 때였는데도 닮은 얼굴을 보자니 눈물이 미친 듯이 났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닮은 친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간에 연락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그에게 주저리주저리 카톡을 보냈다. '잘 지내지? 사실은 나말야 선교지에 왔어~ 블라블라블라... 너도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그렇게 카톡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순간, 답장이 왔다.
"너무 멋지네 수미야 선교지 갔구나. 괜찮아? 적응은 할만하고? 항상 그 친구들과 너의 선교 활동을 위해서 기도할게. 위험지역일수록 항상 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언제든지.
그 언제 든지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 정중앙을 뚫고 들어왔다.
한밤중에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낯선 레바논 집의 침대 위에서 나는 오열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희승이가 바로 나의 소울메이트라는 사실을.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렇게 결혼식을 두 달 정도 앞둔 시점에, 문득 남편이 내게 아직까지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받고 싶은 프러포즈가 딱히 있진 않았다. 레스토랑에서 반지나 가방을 주며 디저트 접시에 결혼해 달라는 문구를 새겨 넣는 뻔한 청혼이라면 더더욱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느 날 전화로 넌지시 그에게 물어보았다.
"희승, 너 나한테 프러포즈 안 할 거야?"
"이미 반지도 줬는데 어떻게 프러포즈를 해?"
그 순간, 갑자기 내 입 밖으로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나 프러포즈받고 싶어."
"엥? 갑자기?"
"받을래! 프러포즈!"
"아니, 결혼반지를 이미 줬는데 어떻게 프러포즈를 해?"
"몰라. 창의성을 발휘해 봐."
"내가 한국에 가면 같이 내내 붙어있을 건데 어떻게 준비해?"
"몰라! 나 프러포즈 안 받으면 결혼 안 해."
수화기 너머로 어이없어하는 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결혼식을 한 달여 앞두고 프러포즈를 꼭 받고 싶었다.
내 머릿속에는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한 프러포즈 장면이 있었다. 바로 영화 어바웃타임에서의 프러포즈 장면. 남들 앞에서 보여주기식 프러포즈가 아닌 우리 둘만의 공간에서 받는 프러포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렇게 프러포즈를 받고 싶었다. 유별나게 드러내지 않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 속에서. 그렇다고 해서 딱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희승이라면 그저 뻔한 프러포즈어도 좋았다. 내가 이 남자에게 프러포즈를 받을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여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으아아아아앙"
내가 프러포즈를 받으면서 오열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해달라고 한 프러포즈였기에 이렇게나 감동적일 것이라 전혀 생각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우리가 결혼 전 일주일 간 묵게 된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두장의 편지를 내게 건네며 프러포즈를 했다. 한 장의 편지는 본인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와 더불어 우리의 결혼 생활이 성경의 히브리서 11장에 나와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서로를 향한 믿음을 바탕으로 지속됐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두 번째 편지를 건넸는데, 그 편지의 앞부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 프러포즈에 대한 답이 YES면 이 봉투를 열고, NO면 열지 말고 버리시오."
풉.
노 일리가 있나.
기대반 설렘반으로 두 번째 봉투를 열자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너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 물건이 사용되면 좋겠어."
그 순간 나는 설마?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씩 웃으며 내게 신상 맥북 에어를 건넸다.
"으아아아앙. 이게 뭐야. 대박이야. 노트북이야? 너무 좋아."
"아니 아까 카드 읽을 때는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리더니 선물 받으니까 우는 거야?ㅋㅋ"
너무 기뻐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의 맘속 깊은 곳에 숨겨둔 내 꿈을 알아봐 주는 사람. 우스갯소리로 본인도 장항준이 되고 싶다는 그는 내가 이불속에 웅크려 눈물 훔치며 하염없이 바라던 사람이다. 내 소울메이트를 드디어, 찾았다.
희승이와 다시 만나며 읽었던 책 중에 이런 제목의 책이 있었다.
의역하자면 "당신의 모든 상처 입은 영광을 사랑해 줄 사람."
이 책의 표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겐 위로가 됐다.
저 계란이 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완벽하지도 않고, 못나고 깨진 상처투성이인 나.
다시 재회했을 때 나의 깨진 껍데기가 희승이에게 보일까 불안했다.
그런데 외려 희승이는 그 상처를 못 본 체하지 않았다.
상처 입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아픈 나를 보듬어줬다.
진짜 사랑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속에서 서서히 회복했다.
정답은 없겠지만 나의 경험에 따라 소울메이트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내가 최악의 상황에 있더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사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 아는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홀로 울게 두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나는 더 이상 이불을 뒤집어쓰고 홀로 울 일이 없겠지
언제나 너와 나는 이불을 나눠 덮을 거고
내가 울 때면 네가 바로 알아차려 줄 테니까.
그리곤 네 그 특유의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묻겠지.
수미야, 괜찮아?라고.
그러면 난 다 괜찮아질 거야.
그게 내가 평생 바랐던 전부였으니까.
엄마, 아빠.
감정적으로 무척이나 예민한 날 키워내느라 고생 많았어.
엄마, 내가 말을 안들을 때면 꼭 너같은 딸 낳아서 겪어봐라고 했잖아.
앞으로 진짜 나같은 자식을 낳게 될까봐 살짝 떨리는 건 기분 탓이겠지?
엄마 아빠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싶었어.
나는 필연적으로 희승이와 결혼을 했어야만 했던 것이야.
그래야만 내가 나로서 완성이 되고, 그도 그로서 완성이 되니까.
우리 안의 안테나는 태초부터 서로를 향해 맞춰져 있었거든
우리는 서로를 위해 하나님이 빚어주신 존재, 소울메이트니까.
고마워,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줘서.
그리하여 엄마 아빠의 자식이라는 기쁨을 누리게 해줘서,
또 희승이라는 짝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줘서,
이제는 더 넓은 세상에서 나와 희승이는 우리의 가정을 꾸려볼게.
엄마 아빠가 그랬듯 말이야.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자식이 내 뱃속에서 나오더라도
엄마 아빠가 내게 그랬듯 계속해서 사랑할거야.
그래야 그 아이들도 언젠간 자라
그들의 짝을 찾아 갈테니까.
받은 사랑을 밑천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