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나무, 이모

겨울을 견디는 나무

by 뉴욕댁

엄마는 이모에게 언제나 빚진 마음이 있다고 했다. 이모가 삼촌과 본인을 두고 도망가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나에게도 또한 이모에게 빚진 마음이 있다. 이모는 내게 엄마와 같은 존재다. 엄마가 학원 일로 바빠 갓 돌을 지난 나를 돌보아주지 못했을 때 이모는 발 벗고 나서서 엄마 역할을 자처했다. 이모는 여러 조카 중 나를 유달리 사랑했다. 심지어 다른 조카들은 그저 이름으로 불렀던 반면에 나에겐 꿀순이라는 애칭을 지어주며 언제나 날 꿀순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모에게만큼은 누구보다 특별한 꿀순이었다.


나의 결혼식 날, 나를 바라보는 이모의 흔들리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이모의 마음속을 지나가고 있음을. 이모의 꿀순을 떠나보내고 있음을.


이모와 이모부는 사업을 했다. 사업이 잘될 때 이모는 가족모임이 있을 때마다 맛있는 소고기를 턱턱 사주며 우리에게 용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건 비단 물질이 아니었다. 사랑이었고, 지나간 세월에 대한 한풀이었다. 이모는 부모를 여의자 어린 두 동생을 키우기 위해 공장을 갔다. 공장에서 나오는 월급으로 어린 두 동생을 보살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이모부와 결혼을 했다. 엄마와 삼촌이 성인이 되어 밥벌이를 하고 살게 되었을 때, 그제야 이모는 숨통을 틔고 살았을 것이다.


"수미야, 네가 준 핑크색 옷이 없어졌다."


이모는 엄마 이름을 내 이름으로 부른다. 그렇게 엄마에게 대뜸 내 이름을 부르며 엄마가 준 핑크색 옷이 없어졌다는 이모의 전화가 왔다. 이모부의 사업이 몇 년 전부터 기울기 시작하며 자연스레 이모가 주축이 되었던 가족모임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 이모를 엄마는 종종 불러내어 이모가 좋아하는 회를 사 먹이기도 하고 옷을 사주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가 준 몇 벌의 옷 중 하나가 없어진 모양이었다. 엄마는 요즘 다시 날씨가 추워져서 이모가 엄마가 준 털코트를 찾는 것 같다고 내게 말했다.


이모는 씩씩하다. 이모뿐만 아니라 엄마도, 삼촌도. 김가네 DNA에 꺾이지 않는 들풀과 같은 강인함이 있다. 나는 그 강인함을 언제나 선망했다. 그래서 힘든 순간이면 엄마를 찾았고, 엄마랑 싸운 날에는 이모를 찾았다. 내겐 없는 쓰디쓴 뿌리를 가진 그들에게 붙어있다 보면 나도 같은 뿌리를 가질 수 있게 될까 봐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밥 대신 쓴 뿌리를 먹고 자랐다. 친척집에서 쓴 뿌리를 먹었고, 공장에서 쓴 뿌리를 먹었고, 학교에서 쓴 뿌리를 먹었다. 잘근잘근. 소화도 되지 않는 엉긴 뿌리를 씹어 삼킬 때마다 그들은 엄마를 생각했고, 바다를 생각했다. 금빛 모래가 드리운 해운대의 백사장. 엄마, 삼촌, 그리고 이모의 고향.


더 이상 쓴 뿌리를 먹지 않아도 될 때가 되서야 그들은 바다로 돌아왔다. 엄마도 없고, 그 시절 가던 떡볶이 가게도, 모든 게 다 사라졌지만 그들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살아 돌아왔다. 단단하고 크디큰 나무가 되어.


나무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다. 그 나무는 기꺼이 나에게 그의 속을 내어주었고 내가 편히 잠들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주리지 않게 때에 따라 열매도 주었으며, 소나기와 뜨거운 햇살로부터 나를 보호해 줬다. 그런데 그런 나무가 이 혹독한 추위에 얼어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나무의 존재를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한 나 자신이 한심했다.


"패딩 너무 따뜻하다 수미야, 잘 입을게."


겨울이 다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나무에게 잠복소를 보냈다. 늦었지만 그 옷을 입고 나무가 잠깐이나마 남은 추위를 버틸 수 있길. 그래서 다시 힘을 내 다시금 여름에 큰 그림자를 드리워주길. 그 나무 안에 살던 작은 새는 이제 제 갈길을 찾아 떠나지만 나무는 봄에는 꽃을 피울 것이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새가 언제든 와주길 기다리며.


새는 나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그렇지만 나무를 한평생 기억할 것이다.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던 때를,

그에 맞게 나뭇잎이 흔들거리던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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