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Still and Know

시편 76:1~12

by 뉴욕댁


숨 쉴 구멍이 필요할 때야만 큐티를 하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도저히 글 쓰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기에 오늘은 큐티로나마 나의 갈급함을 해소해 보려 이렇게 말씀 앞에 앉는다. 이번 주엔 처음으로 뉴저지에 가서 뉴저지 온누리교회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한국에서부터 심상현 목사님 찬양 플레이리스트를 자주 들었던 터라 언제나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었는데, 뜬금없이 지난 금요일 남편이 뉴저지 온누리 가서 예배드릴래?라고 내게 제안했고 나는 남편이 말을 바꿀세라 잽싸게 가겠다 외쳤다.




뉴저지 포트리는 90년대 한국과 비슷했다. 어릴 적 동네에서 보던 간판들이 나를 반겼다. 모든 것이 한국어로 적혀있는 동네에 들어서자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예배 시간까지 시간이 한참 남아 그 지역에서 맛집이라고 소문난 '명동칼국수'를 방문했다. 웨이팅이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는데 비가 오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칼국수 집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아마 비가 오는 날이어서 더 북적였을 수도?) 칼국수를 먹으러 갔지만 벽면에 붙은 콩국수 사진을 보자 급 콩국수가 너무 먹고 싶어 져 나는 콩국수를, 남편은 육쌈비빔냉면 정식을 주문한 후 자리에 앉아 국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한국인이었다. 물론 영어가 더 편한 2세도 많았지만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꽤나 많아 보였다. 그들 가운데 앉아있으니 왠지 모를 평안함이 내 마음에 찾아들었다. 남편에게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살고 있었나 보다고 말하자 긴장할 게 뭐가 있냐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게, 긴장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내 몸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젓가락으로 내 눈앞에 있는 기본 밑반찬 김치를 한 입 먹자 익숙한 마늘향이 내 입안을 감돌았다.




엄마가 가끔 서울에 놀러 올 때면 명동에 쇼핑을 가곤 했는데 쇼핑을 마치면 우린 늘 명동교자에 가서 칼국수를 먹었다. 명동교자 김치는 마늘향이 많이 나기로 악명(?) 높은데 이 김치가 딱 그 김치 맛이었다. 곧이어 콩국수가 나왔다. 콩국수에 소금을 뿌려 먹는 내 모습을 보며 어떻게 그런 걸 먹을 수 있냐는 듯 남편이 경이롭게 나를 쳐다보았다. 진짜 맛있다는 내 말에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어 본 후에도 남편은 고개를 저어댔지만 나는 한 입이라도 더 먹기 위해 바삐 숟가락과 젓가락을 움직여댔다.




한상 거하게 먹고 남편은 한국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고, 이후엔 한국식 베이커리에 들려 찹쌀 도넛과 커피를 사들고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회는 생각보다 아담했지만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내가 다니던 한국 교회 그 자체였다. 언니들과 함께 서빙고 온누리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던 날들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주보를 받아 들고 예배당으로 들어서자 심상현 목사님이 찬양 인도를 하고 계셨다. 찬양을 드리는 내내 나의 영혼이 다시금 소생하는 느낌이었지만 예배를 드리는 내내 내가 있어야 할 교회는 뉴욕장로교회라는 확신이 들었다.




남편을 두고 새벽기도를 나갈 때, 하나님은 뜬금없이 내게 시편 23편 말씀을 주셨다. 그때는 남편의 일이 워낙 힘들 때라 평안하라는 뜻인가 보다 했는데 작년 미국에 와서 교회를 정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닐 때 하나님이 뉴욕장로교회 예배에서 시편 23편 말씀을 보여주셨다.




제23 편 〔다윗의 시〕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래서 이 교회가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시는 교회인가 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시 결혼식 준비를 하러 한국에 갔어야만 했고 일 년 여의 공백 이후에야 다시 돌아와야 했기에 상황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일 년이 지나 뉴욕장로교회를 간 날, 정말 기가 막히게 하나님은 예배 가운데 시편 23편을 다시금 보여주셨다. 예배 전 성시 교독문을 읽는데 그게 시편 23편이었던 것. 그렇게 시편 23편을 읽는데 눈물이 미친 듯이 흘렀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셔서 우리 삶 가운데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내 마음속으로 여실히 느껴졌다.


용사이신 하나님 76:1~6

1

유다에 하나님이 알려지셨고 이스라엘에서 그 이름이 위대합니다.

2

살렘에 그 장막이 있고 시온에 그분이 계시는 곳이 있습니다.

3

거기서 그분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 무기를 다 부수셨습니다. (셀라)

4

주께서는 눈부시게 빛나고 사냥감이 있는 산들보다 뛰어나십니다.

5

용감한 사람들이 약탈을 당해 잠이 들었으니 용사들 가운데 그 누구도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6

오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의 꾸지람에 말도, 전차도 기절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 예배를 다녀오고 나서 나의 영혼이 완전히 소생된 기분이 들었다. 예배를 드리며 뉴욕이 선교지라는 생각이 다시금 깊게 들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내가 있는 퀸즈 땅을 품고 계속해서 기도했다. 이곳에 있는 이민자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길, 내가 하나님의 빛으로 쓰임 받을 수 있게 되길, 그리고 우리 부부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은 존재로 서게 되길. 하나님은 오늘의 말씀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사냥감이 있는 산들보다 뛰어나신 분이시다.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 삶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하루다.





내일이면 엄마 아빠는 우리 세 가족이 살던 기장 사택을 떠나 이사를 가게 된다. 내가 미국에 오기 전, 나는 일 년간 회사를 다니지 않고 엄마 아빠가 있는 기장 아빠 회사 사택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서울에서 지내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 동네에서 살려니 처음에는 불편한 게 한 두 개가 아니었지만 결혼하기 전 함께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집에 붙어 엄마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런 정든 집을 떠나려니 아빠가 서운했는지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엄마는 이제 시집가서 잘살고 있는데 이해가 안 된다며 T스러운 말을 했지만 아빠가 눈물이 난다는 말을 살아생전 처음 듣는 나는 마음이 아려왔다. 그래서 다음날 아빠에게 전화해 우리가 먹은 콩국수가 얼마나 맛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에서 먹던 콩국수보다 더 맛있었다며. 그러자 아빠는 다음에 한국에 오면 울산 신정시장에 가서 콩국수를 먹자고 이야기했고 우리는 그러기를 약속하고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정말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 내가 이 땅에 오길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바라셨기에 이미 내가 왔으니 나머지는 주님께서 이루시리라 믿는다. 내게 신앙이 없었더라면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이 모든 순간이 힘겹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확신이 내게 있기에 나는 지나간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하늘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다. 내가 할 것은 그저 이 땅에서 내가 드린 서원을 이루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기에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살아가도록 오늘 하루도 노력해야겠다.




비천한 자들의 하나님 76:7~12

7

경외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주께서 한번 노하시면 누가 주 앞에 서겠습니까?

8

주께서 심판하시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을 때 이 땅은 두려워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9

하나님께서 심판하려고 일어나신 것은 이 땅의 모든 연약한 사람들을 구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셀라)

10

진실로 사람의 분노는 주께 찬송이 될 것이고 주의 진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주께서 허리띠처럼 묶어 버릴 것입니다.

11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그 일들을 이루라. 주위의 모든 땅들은 두려워해야 할 그분께 예물을 드리라.

12

그분이 통치자들의 영을 잘라 내실 것이니 세상의 왕들이 그분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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