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눈이 내리는 오후였다. 서울에서는 겨울이 오면 심심찮게 오곤 하는 눈이지만, 나에게 서울의 눈은 매번 특별했다. 그래서 늘 눈이 올 때면 창문가에 고개를 쭈욱 빼어 내밀고 코끝에 감도는 겨울 눈 냄새를 킁킁대며 흠모했다. 진눈깨비에 섞인 빗방울 냄새에는 때때로 밴쿠버의 새벽 공기가 담겨있곤 했는데, 그 냄새를 맡는 날이면 왠지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아 한참 동안이나 창가에 서있곤 했다. 그날도 그런 오후였다. 창가에 서서 진횟빛 눈이 안 그래도 회색빛 도시를 더욱 매캐하게 만들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숨이 턱턱 막혀오던 와중 웬 알록달록한 우산을 쓴 사람이 골목에서 별안간 튀어나왔다. 자세히 보고 있으니 지나가는 우산보다 크기가 확연히 큰 게 우산은 아닌 모양새였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 파라솔.
“미친놈이군.”
외국인이 서울에 처음 오면 형형색색의 네온사인과 화려함에 압도된다는데 오히려 나는 그 반대였다. 내 눈에 띈 건 바로 무채색 인간들. 머리 스타일부터 옷 스타일, 심지어 라이프 스타일까지 유행만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보다 뒤처지지 않길 바라면서도 누구보다 눈에 띄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그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튀지 않으려 용을 쓰는 사람들.
“그냥 참아.”
캐나다에서 한국에 갓 돌아오자마자 입학한 한국의 중학교는 내가 다니던 학교와는 분위기가 판이했다. 낯선 환경, 낯선 친구들. 그중 나의 심기를 가장 크게 건드린 선생님은 바로 음악 과목을 담당하던 김자명 선생님이었다. 물론 담임 선생님을 포함한 다른 선생님들도 마음에 썩 내키진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김자명 선생님은 선생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학기가 시작된 첫 주의 첫 음악 수업이었다. 선생은 우리 반에 들어와 인사말도 없이 묘한 눈빛으로 우리를 훑었다. 짙다 못해 허옇게 뜬 분칠에 눈두덩이의 반을 채운 아이라인 화장을 한 그녀의 모습은 선생보다는 무속인에 가까워 보였다. 굵은 롤로 앞머리와 뒷머리를 한껏 띄운 그녀의 머리통을 바라보고 있자면 우아하다기보단 기묘해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점심 이후의 수업이라 교실의 반은 식곤증으로 졸고 있었고 나머지 반 가량은 새로운 친구와 떠들고 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기분 좋은 나른함을 그녀는 무지막지하게 교탁을 내리치는 출결부 소리로 산산조각 냈다. 그렇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자 그제야 그녀는 중대한 공지라도 되는 마냥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너희는 이제 예삐와 나삐로 나뉘게 될 거야. 내 마음에 드는 착한 아이들은 예삐, 그리고 떠들고 말 안 듣는 애들은 나삐. 나삐가 되고 싶지 않으면 떠들지 말고 수업에 집중을 잘하도록.”
어이가 없었다. 그 후 그녀는 정말로 자신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지 않는 아이들은 ‘나삐’ 그룹에 분류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음악실에서는 아예 두 부류로 나뉘어 앉혔다. 자신의 피아노와 가까이 앉아있는 왼쪽 분단은 ‘예삐,’ 그리고 오른쪽 분단은 ‘나삐.’ 명확한 기준은 없었다. 옆친구에게 몇 페이지냐는 질문을 하다가 걸린 운이 나쁜 친구는 나삐가 되었고 선생님에게 유달리 아부를 잘하는 아이는 예삐로 승격되었다. 나는 예삐도 아니고 나삐도 아닌 그저 학생#9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이런 부조리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교장 선생님께 알리겠다고 하는 나에게 엄마는 의외의 말을 한 것이었다.
“왜 참아야 해?”
“한국의 학교는 캐나다의 학교와는 달라. 교장 선생님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너한테 좋을 게 없어.”
“엄마가 그 선생이 하는 걸 못 봐서 그래.”
“그래도 선생님인데 선생님을 공경해야지. 그럼 못써.”
“그 선생님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데 왜 우리만 공경해야 하는 거야?”
“오늘 피자 먹을래? 윤지네 아줌마 집 근처에 새로 연 피자가게, 거기 맛있대.”
엄마는 항상 대답하기 곤란한 상황이면 말을 돌리곤 했다. 왜 말을 돌리냐고 따지려다가도 결국 ‘엄마 말 들어’라는 결론이 날 건 뻔하니 피차 서로 힘 빠지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엄마의 말을 따라 피자나 먹으러 가기로 한다. 그 사건이 나의 첫 침묵 사건이었다.
이게 유교 사상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서울에 사는 인간들이 무채색 인간이 된 것도 이 빌어먹을 유교 사상 때문이고. 그 인간들, 다들 어른 말 잘 들어야 한다는 엄마 말 듣다가 이 사달이 난 거다. 장담한다. 그저 엄마 말 따라 선생 말 잘 듣던 아이들은 대학교수가 부조리 한들 그저 학점을 위해 넵 교수님만 줄곧 외치다 사회에 던져졌다. 이후엔 엄마의 역할을 대신 담당하는 직장상사의 말에 넵! 넵! 넵! 그렇게 본인의 의견 피력 따위는 까마득하게 잊은 지 오랜 인간들. 물론 나 또한 그 부류 중 하나로 보일 수 있겠지. 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나는, 지극히, 오랑우탄 때문이다.
오랑우탄. 그 녀석에게 누나가 붙여준 이름이다. 그리고 그가 나타난 건 바로 그 김자명 선생님 사건 이후였다. 음악 수행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나자 침묵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마음속 깊은 어떤 곳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공명했다.
“잘 참았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잘못 들은 걸까? 가끔 기가 허해지면 헛것을 듣기도 한다던데, 그렇기엔 나는 너무나 백 미터를 십오 초 만에 뛸 만큼 건장했다. 분명 나의 마음은 아니었다. 고개를 들고 반을 둘러보았지만 모두 각자 자리에서 나삐가 되지 않기 위해 음악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저 알 수 없는 속삭임이었다. 심란한 마음을 뒤로한 채 나 또한 선생님의 장구 소리에 맞춰 리듬을 외웠다. 쿵 더러러러 쿵 덕덕... 예삐 나삐로 인한 어떠한 피해자는 나오지 않았고 어떤 사건조차 없이 그저 한 해가 지나갔다. 아니, 지나간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