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빅아일랜드는 제주보다 5배 정도 크다고 한다.
하와이 열방대학의 과정을 마치고 왔을 때, 내 삶에는 뭔가 드라마틱한 일들이 벌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예상했던 시나리오는 아니었지만, 내 인생을 드라마로 쓸 정도로 버라이어티 한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은 그때에는 미처 몰랐다.
3달간의 하와이 생활을 마치고 도미니카와 아이티에 머문 후 천안으로 왔다. 외국에 오랫동안 있지 않았지만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낯선 언어와 음식은 어색하고 적응하기 힘들었다. 또한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 거주하는 것과 이동하기 위해 짐을 계속 싸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엘에이(LAX) 공항에 도착해 표를 끊기 위해 줄을 섰다. 우리에게는 이민가방 2개와 캐리어 4개가 있었고 어린 딸은 유모차에 타고 있었다. 만 2살이었던 딸아이 찬스로 긴 줄에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티켓팅을 할 수 있었다.
귀국 후 제주도 열방대학에 세컨드 스쿨에 참여하기로 했다. DTS를 수료한 사람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상위 과정 코스인 셈이다.
내가 다닌 과정은 세미나 과정으로 목조건축 세미나로 불렸다. 1주간의 이론 공부와 함께, 2달여간의 목조주택 건축을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선택들이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제주도 행을 선택을 했다. 2015년도에 제주에 갔을 때 한창 제주 한 달 살기가 화두가 되고 있었다. 내가 건축에 참여한 목조 주택은 귤 농장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숙소로 사용될 집이었다.
우리가 지냈던 집은 제주 시골집이었다. 조천읍 함덕리에 바닷가 근처에 있는 집이다. 돌담으로 둘러져 있었고, 앞마당엔 잔디가 있는 아늑한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아내는 집에서 딸은 어린이 집에서 제주도와 친해지고 있었다.
3월의 제주는 조금 쌀쌀했다. 조천읍은 바람도 많이 불었다. 하와이에서 지내다 제주도에 오니 예전에 보지 못했던 제주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하와이에 갔을 땐 신혼여행지인 몰디브 섬과 하와이를 비교했고, 제주도에 갔을 땐 하와이와 제주도를 비교했다.
가장 불편하고 힘들게 만든 건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과 난 개발이었다. 어딜 가나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짓다 만 건축물, 파헤쳐진 산림 등이 너무 많이 보였다. 멋진 바다 뷰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높은 건물들이 올라갔다. 우리가 지냈던 함덕 해변은 갈 때마다 변해 있었다. 큰 호텔들이, 빌라들이, 타운 하우스들이 곳곳에 들어섰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짓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자연과 공존하지 않고 짓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만약에 지금 다시 하와이에 간다고 해도 그곳에선 변한 건 별로 없을 것이다. 건물들, 상점들은 그대로 일 것이고, 바다도 그대로 우리를 맞이해 줄 것이다. 하와이는 고도 제한을 둬서 높은 건물도 짓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제주도도 하와이 같이 자연을 먼저 생각하는 개발이 되어, 언제든지 그곳에 돌아가도 낯설지 않은 고향 같은 푸근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두 섬의 비슷한 점 몇 가지는 섬이라는 특성으로 육지(본토)보다는 물가가 비싸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두 군데 모두 지냈을 때 휘발유 가격이 항상 육지(본토) 보다 비쌌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농협 주유소를 하와이에서는 코스트코 주유소를 이용했다.
두 섬 모두 화산의 폭발을 통해 이루어진 섬이어서 검은색 돌(현무암)을 어딜 가나 볼 수 있다. 하와이에는 블랜샌드비치가 있다고 한다면, 제주에는 검은 모래 해변이 있다. 제주에는 귤이 유명하다면 하와이는 커피와 마카다미가 유명하다.
제주도에 머문 함덕리는 함덕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서우봉이 있고, 낮은 수심으로 수영하기 좋은 곳이다.
전날 제주도에서 사용할 짐을 한 가득 차에 실었다. 새벽에 나는 천안에서 목포로 출발했다. 아침 8시경 출발한 배는 오후 1시쯤이 돼서야 제주항에 도착했다.
아내와 아이는 저녁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했다. 다시 한번 낯선 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그곳이 시작점이다." -카비르 (인도 사상가)
많은 도전과 시작이 있었다. 지금도 그 도전은 진행 중이다.
한순간의 변화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미련하게도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했다.
오늘 넘어져도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