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derless Project
보더리스(Borderless)의 의미는 말 그대로 경계(border) 없음(less)이다. 넥슨은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고, 해왔다. 2019년에는 '게임을 게임하다/ invite you_' 전시(https://www.gameagame.org/)를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했고, 그보다 이전인 2012년에는 마비노기를 만든 사람들이 모여 청담동 313 아트 프로젝트에서 'borderless'라는 제목의 파인아트 전시를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청년 문화기획자를 지원하는 'NEO-JEJU'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시리아의 비가' '위플래쉬' 등 독립영화 보급에 참여하기도 했다. 게임회사 넥슨은 끊임없이 다른 분야의 문을 두드리고, 손을 내밀었다.
이제 넥슨은 게임을 가운데에 놓고 본격적으로 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자리 ('보더리스 : 티키타카 게임 뒷담화')를 만들었고, 김설진 안무가와 함께 게임을 테마로 한 영상(보더리스 프로젝트 뮤직비디오)을 만들며 게임과 춤, 영상의 경계를 직접 넘어보기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경계를 넘는 시도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년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더리스 공모전'도 진행할 예정이다.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장,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이은석 게임 디렉터, 류정화 전시기획자,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 박윤진 영화감독, 서재원 건축가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화두 하나를 던졌다.
서로 만나본 적 없는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게임을 접해보았다는 것. 하지만 1987년도에 8비트 게임 메탈기어부터 게임을 시작한 이은석 디렉터부터, 어린 시절 스포츠 게임을 즐기다 지금은 'FIFA 온라인'만 한다는 서재원 건축가, '갤러가(Galaga)'만은 자신 있다는 최윤아 관장과 '괴혼' 등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에 열광했다는 류정화 전시기획자, '바람의 나라', '일랜시아' 등 어쩌다 보니 넥슨 게임만 하고 있다는 박윤진 감독, 게임으로 점철된 인생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대도서관까지 각각의 게임 경험은 모두 다 다르다.
게임 하나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진 수다의 시간은 때때로 한없이 가볍기도 했고 종종 무척 진지해지기도 했다. 아무튼 즐거웠다. 결론을 내는 자리가 아닌, 논의의 물꼬를 트는 자리였고, 게임과 건축이, 게임과 현대미술이, 게임과 영화가 조금 친해지는 자리였다.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 자리 자체가 '보더리스'가 아닐까.
그중에서 건축가, 전시기획자, 영화감독, 게임 디렉터의 이야기를 일부 옮겨보았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보더리스 : 티키타카 게임 뒷담화' 영상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서재원 건축가와 단단집 그리고 마인크래프트
"아이들이 '마인크래프트'를 즐겨합니다. 자연스럽게 옆에서 계속 보게 됐죠. 보니까 게임이 다 픽셀로 이루어져 있는 거예요. 곡선도 자세히 보니 다 픽셀로 되어있고요. 그런 부분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그걸 건축에 적용해본 거예요. 건물의 형태를 만들 때 모든 것을 다 픽셀로 하면 마치 게임에서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항상 머릿속에 건축이 대중과 소통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건축물이라는 게 사람들의 일상을 설계하는 일이고 게임은 이제 완전한 일상이거든요. 게임 개발자 혹은 게임 플레이어의 플레이가 건축가에게 영감을 주고, 건축가가 만든 무언가가 게이머에게 영감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창작자로서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단단집이 그렇게 나온 거고요."
전시기획자 류정화가 생각하는 게임과 현대미술
"계속 현대 미술 쪽에서만 일하다가, 밴드나 영화감독, 건축가들과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생겨서 함께 하는 동안 흥미로운 경험을 많이 했어요. '현대미술이 다루지 않는 주제나 혹은 굉장히 일상적인 주제를 기존의 현대미술 형식에 담아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좋은 기회가 있어서 넥슨과 함께 ‘게임을 게임하다’ 아트 전시회를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이런 취지의 전시들이 되게 많아지고 좀 더 확대하고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임은 초월된 다른 세상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죠. 미술도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곳에서의 경험이 굉장히 중요해요. 이 두 경험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은석 게임 디렉터가 생각하는 게임의 현재와 미래
"예술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게임도 있고 아닌 게임도 있고 천차만별인 것 같습니다. 게임이란 건 스펙트럼이 워낙 넓으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상업 게임은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작가 개인의 목소리를 담는 건 아무래도 어려워요. 상대적으로 인디게임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니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죠. 물론 모든 인디 게임이 예술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또 어떤 종류의 인디게임들은 정말 아트하우스 게임이라고 분류할 만큼 정말 예술성이 높기도 해요."
"제가 생각하는 게임은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이고요. 우리 인류는 수만 년 이상 놀이와 함께 해왔죠. 그 놀이가 디지털화되면서 공간의 제약이 사라졌어요. 그래서 지금 같은 팬데믹에도 여전히 게임을 재밌게 할 수 있는 거죠. 그 점이 게임의 매력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한 게임을 한참 많이 할 나이인 10대에는 이른바 피지컬이 우월한 친구들이 항상 무리의 중심이 되잖아요. 운동을 잘한다든가 외모가 뛰어나다거나 싸움을 잘하는 친구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중심을 차지해요. 하지만 게임 속 세계는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롭죠. 이런 모든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게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장에서만 영화를 상영하던 시대를 지나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 만으로도 영상을 만들고 온라인에서 상영할 수 있게 되었죠. 게임 역시 조만간 지금의 유튜브나 틱톡 같은 플랫폼들이 나올 거라는 전망이 있어요. 게임이 가장 진보적인 창작 미디어, 자기표현 수단으로써 자리를 잡아갈 거라 생각을 합니다. 아마 그때쯤 되면 많은 사람들이 표현과 창작 수단으로써 게임을 사용하게 될 것이고요. 사실 사람들이 많이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집에서 게임을 창작하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박윤진 감독과 '내언니전지현과 나'
"'일랜시아' 속 '내언니전지현'이란 캐릭터는 제가 생각하는 저의 이상향이에요. 내가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삶을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감정 이입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냥 나의 일부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요새 본캐랑 부캐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보통 본캐는 내가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나고 부캐는 자유롭게 키우는 캐릭터를 말하죠. 어느 순간부터 그걸 반대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본캐라고 생각하면 저는 되게 부족한 점도 많아요. 이 나이대에 이 사회에서 제가 해야 되는 일들을 많이 못하고 있어서 약간 낙오자가 된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현실의 나를 본캐라고 생각하고 정해진 길을 따라가며 살기보단 나를 부캐라고 생각하면 하고 싶은 것도 해보고 그러다 보면 좀 더 삶이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래서 현실의 저를 부캐라고 생각하기로 했죠. '내 언니 전지현'은 게임에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고요. 현실의 저는 좀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게임 스토리가 점점 깊어지고 있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경험들을 앞으로는 게임을 통해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게임 안에서 내 캐릭터를 플레이하면서 내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거죠. 그걸 지금도 느끼고 있어요. '메이플스토리' 속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좋아해요. 에피소드 하나를 딱 깨고 나면 영화 한 편을 본 것만큼 깊은 감명을 얻을 때가 많아요. 영화를 보며 타인의 삶을 간접 경험해보는 것처럼, 게임을 하면서 내 삶을 내가 직접 플레이해보고 현실을 돌아보고 감동받는 유저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합니다."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의 역사는 25년이 넘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게임을 접하고, 영향을 받는다. 가끔은 영감 그 이상을 얻어 건물을 짓기도 하고, 하나의 게임을 소재로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 역시 많을 것이다. 류정화 전시기획자는 "요즘 사람들은 전시에서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체험을 요구한다"라고 했다. 게임이나 예술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해보지 않은, 해볼 필요가 없는 대부분 사람들은 이미 이 경계를 인식조차 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장은 '보더리스 티키타카 게임 뒷담화' 말미에 "게임에서 진정한 '보더리스'라는 의미는 게임을 통해 얻은 영감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예술가들이나 다른 장르로 구분되어있는 곳에서 거꾸로 게임을 찾아오고 게임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보더리스 프로젝트 뮤직비디오'는 바로 게임에서 예술로, 예술에서 게임으로 양방향으로 넘나드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넥슨은 예술가들을 게임으로 초대했다. 김설진 안무가이자 무용가, 이선태 무용가, 원일 음악감독, 민준호 연출가, 몽규 프로덕션 박성호 감독 등 각자의 분야에서 예술의 경지에 오른 전문가들과 함께, 게임이라는 소재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기로 한 것. 그들은 넥슨의 초대에 흔쾌히 응하고, 각자 자신들의 무기를 들고 모였다.
원일 음악감독은 게임 BGM과 전통음악을 함께 활용해 음악을 만들었고, 민준호 연출가는 게임을 모티브로 영상을 구상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김설진 안무가는 이선태 무용가와 함께 자유롭게 춤을 추었다. 그러는 동안 임치훈 촬영 감독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공간과 안무가의 움직임을 담았다. 촬영은 제주도에 위치한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진행되었다. 촬영 현장은 내내 기분 좋은 에너지로 가득했다. 현장 자체가 마치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모인 예술적인 게임 한판 같았다. 실제로 스태프들은 쉬는 시간 틈틈이 박물관에 있는 각종 게임기로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김설진 안무가는 평소 게임을 잘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민준호 연출가는 게임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현장에서 긴밀하게 소통했다. 김설진 안무가는 촬영이 끝난 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의 안내로,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춘 춤"이라고 이날의 작업을 표현했다. 어쩌면 촬영 현장이 '보더리스' 그 자체였던 것 같기도 하다. '보더리스 프로젝트 뮤직비디오'를 보는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김설진 안무가가 춤을 추며 게임 속을 유영하는 동안, 그 모습을 보는 우리는 게임에서 춤으로 다시 게임으로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Borderless Elements : 0 / 1>
컴퓨터 용어로 인풋(input)은 입력하다, 아웃풋(output)은 출력해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상 1> 속에서 김설진은 이 두 단어를 가지고 논다. 키보드와 마우스 등 입력 장치와 함께 김설진이 움직이면, 디스플레이, 프린터, 스피커 등 출력 장치가 쫓아간다. 김설진은 플레이어가 되고, 게임 속 캐릭터가 되고, 인풋과 아웃풋 사이를 흐르는 정보 자체가 되기도 한다. 경계가 없어진 가상공간으로 흘러가는 김설진의 모습에 집중해보자. 마비노기 OST 중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 전설’을 변주한 음악에 따라 김설진이 손가락 하나하나, 발 동작, 눈동자의 움직임, 미세한 고갯짓으로 안내하는 곳으로 함께 흘러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다음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Borderless Game : Connect & Play>
<Borderless Elements : 0 / 1>을 통해 초월적인 공간인 가상 세계로 들어온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따라가 본다. 그 과정은 마치 나만 볼 수 있는, 게임하는 나의 내면 같기도 하고, 멀리서 누군가 게임하는 나를 지켜본 모습 같기도 하다. 김설진과 이선태의 환상적인 즉흥 춤은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만남을 표현한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인터페이스(interface) 때문에 처음엔 불협화음을 내고 오작동 하기도 하지만, 반복적으로 시도하는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해 둘은 끝내 합일에 이르게 된다. 플레이어는 캐릭터와의 경계가 완전히 없어진 공간에 도달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