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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IKETRIP Dec 11. 2019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홋카이도 여행

아사히카와 그리고 비에이


지난 겨울 이야기 입니다. 



나와는 먼일이라고 생각했던 겨울의 낭만도 이곳에 오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길은 미끄러워 종종걸음을 걸어야 하고 직접 차를 몰아 여행을 하게 되면 미끄러운 길은 예삿일이고 차선도 안 보일뿐더러 차선이 보일 때면 겨울 한낮의 강한 빛 때문에 바닥은 엘도라도 앞에 선 것 마냥 눈이 부시지만 그래도 으례껏 겨울 하면 홋카이도고 삿포로라는 건 내 여행에서 1+1=2 만큼 당연한 얘기다.


요즘은 값싼 항공권이 많이 나와 예전에는 다른 일본 여행지에 조금은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지금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모두 비슷한 여행 루트로 어쩌면 뻔한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하지만 같은걸 보더라도 담아오는 추억은 다들 다르다보니 SNS에서 누군가의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뻔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즐겁다.



얼마전 홋카이도에 다녀 왔다. 두 계절 전에 다녀 왔으니 정확히 반년만이다. 이번 홋카이도 여행에선 조금 더 멋진 사진을 조금 더 멋진 추억을 남기고 가겠노라 다짐하며 JR열차에 몸을 실었다. 덜컹 거리는 리듬은 변함이 없었지만 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여름과 많이 달랐다. 여름의 청량했던 색들은 무채색으로 시원했던 바람은 조금 매서운 느낌이었다. 눈과 추위가 만들어 낸 이 화학적(?)반응은 천천히 지나가건 빨리 지나가건 낭만적인건 분명했다.



여행의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삿포로에서 잠만 자고 다음날 차를 빌려 비에이로 향했다. 오랜만에 다시 볼 풍경이 설레 빨리 달려볼까도 싶었지만 눈 덮인 아스팔트 도로는 한껏 들뜬 마음을 가라 앉게 만들 정도로 미끄럽고 불편했다. 부지런을 떨며 출발 했지만 오후가 훨씬 지나서야 비에이에 도착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변함없는 아름다운 풍경에 나즈막한 감탄사가 절러 나왔다. 그리고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천천히 내뱉었다. 살갗을 애는 듯한 추위는 조금 더 예쁜 사진을 담고 싶은 나의 마음까지 닿진 않았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때까지 언 손을 비비길 반복하며 홋카이도 여행의 추억을 담았다.



여름의 추억을 꺼내 겨울에 담다.



인생 사진 한장을 위해서라면 추위쯤이야.


이 겨울에 혼자 심취해 한 참 사진을 찍고 있을 무렵 단체 관광객이 탄 관광버스가 도착했다. 갖혀 있던 까마귀가 날아가듯 차 문이 열리자 검은 롱패딩의 사람들이 우루루 내렸다. 개중에는 두루미 마냥 고혹함을 뽐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멋좀 아는 사람이 있어 마냥 하얗기만 할뻔했던 사진에 동백꽃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장면 만들어 주었다.






여담이지만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침범으로 비에이의 인기 명소중 하나였던 마일드세븐 언덕의 나무들을 주인이 잘라냈다. 관광지가 아닌 농지고 사유지라 마음대로 들어가는건 분명 잘못된 일인데 매너 없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아름다운 풍경을 하나 잃고 말았다. 이러다 다른 나무들도 잘려져 나가진 않을까 걱정이다. 여행에서 매너와 배려는 필수다.


친구에게 추억 한장을 선물하다.


평소엔 사진 한장 찍을려고 하면 손사레부터 치던 친구 녀석도 이 곳에선 손받침을 만들어 남들 다찍는 사진 한장을 찍어달라 부탁을 한다. 겨울 홋카이도 여행은 없었던 사진 욕심도 생기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곳인가보다.



일년 내내 메리 크리스마스
 홋카이도 겨울은 유난히 해가 짧아 반의 반나절만에 다 구경하려면 패키지 여행만큼이나 바쁘게 다녀야 한다. 


 

차를 돌려 겨울에 더 아름다운 흰수염 폭포로 향했다. 조수석에 탄 친구는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손을 내밀었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찍기를 반복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많은 눈을 본게 처음일테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시로가네 온천물 덕분에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푸른빛을 띄고 있어 신비롭기까지한 흰수염 폭포. 절벽 사이에 매달린 엄청난 크기의 고드름과 상고대, 온천 수증기가 만들어 낸 풍경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흰수염 폭포라는 이름도 아마 겨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겨울 홋카이도 여행의 첫 페이지를 비에이로 장식하고 아사히야마 동물원으로 향했다. 이 동물원은 '아사히야마 동물원 이야기 : 펭귄을 날게 하라'는 영화로 제작되었을 정도로 일본 최고의 동물원이다. 실제 폐업 위기에 처해있던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직원들이 획기적인 사고와 피나는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물. 일본의 마케팅 능력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



영화 제목처럼 이 동물원의 최고의 볼거리는 다연 펭귄 워크다. 펭귄이 나타날 시간이 되면 장사진을 이룰 정도로 인기다. 아이가 어른 신발을 신고 발을 질질 끌며 걷는 것 같은 펭귄의 모습은 웃겼다 즐거웠다 감탄했다 즐겁고 좋은 감정이 쉴세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한참을 보다 보면 펭귄이 나를 구경하는건지 내가 펭귄을 구경하고 있는건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 외에도 아사히야마 동물원엔 히말라야 호랑이, 표범, 순록, 여우, 두루미, 늑대등 다양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펭귄들의 모습을 보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불쌍하기도 하다.



 아름다움, 행복함, 즐거움, 낭만 그리고 아쉬움. 홋카이도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안고 아사히카와에 돌아왔다. 그리고 호텔에 도착해 간단히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향했다. 5시만 되도 한밤중 마냥 캄캄해진 거리는 상점 간판들이 밝게 비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 가장 핫하다는 5조 7쵸메를 찾았다. 5,7코지후라리토라고 불리는 이 작은 골목길엔 열예닐곱 가게들이 모여 있는데 70년이 넘은 라멘집부터 홋카이도산 재료를 사용한 이자카야, 야키도리 집등 이 골목에서 들어서자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그중에서 가장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야키도리 전문점 긴네코의 문을 열었다. 아니 열게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런 분위기는 자석처럼 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일본 감성은 정말


역시나 가게 안은 북적거렸고 가게안을 가득 메운 웃음소리와 얘기소리는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아 한참을 두리번 거렸다. 메뉴도 메뉴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술한잔은 '너한테만 말하는건데' 운을 띄우며 비밀스러운 얘기를 주고받는게 당연한 것 같아 보였다.



맥주 두잔과 야키도리 몇개를 주문하고 오늘의 여행 얘기를 내일의 여행 스케쥴을 계획했다. 분위기에 취해 잠시 잊고있던 불편한 자리는 어느새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일어나 고치소사마데시타를 외치고 가게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홋카이도 여행 시작전 미리 찾아둔 고독한 미식가 촬영지 산시로를 찾았다. 5,7코지후라리토에서 좀 떨어져 있다는 후기도 있었는데 눈 길위라 멀게 느껴질뿐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주택가 초입에 위치한 이 곳은 퇴근길 하루의 고단함을 술한잔으로 씻어내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조금전 들렀던 긴네코와는 또다른 느낌의 분위기.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젓가락들은 예약이 된 자리인가 싶었는데 나갈때까지 그대로인걸 봐선 손님이 있건 없건 미리 준비해둔 모양이었다



자리에 앉아 따뜻한 물수건을 내오고 오토시로 나온 식초에 절인 콩은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습니까 묻고 싶을 정도로 인상 깊은 맛이었다.



붓글씨로 쓴 젓가락 커버는 웃음, 복, 일생에 한번 만나는 인연등 살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과 경험들이 정성스런 붓글씨로 적혀 있었다. 이럴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애정과 관련된 걸 뽑는다. 이런게 다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갈땐 웃음의 문으로




그리고 고로상이 먹었다는 신코야키와 맥주를 주문하고 가게안을 두리번 거렸다. 어수선 해보이지만 조화로워 보이고 마스터라고 불리는 가게 주인이 건내는 선한 미소는 홋카이도의 밤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먹기 좋게 뼈가 다 발라진 신코야키. 짭조름하고 불맛 가득한 이 요리는 한잔의 맥주로는 부족할 정도로 궁합이 잘 맞았다. 내일 일찍 출발하지만 않는다면 가게문을 닫을 때까지 술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머물고 싶은 그런 곳. 홋카이도 여행의 중간쯤 지나온 여행 얘기를 다가올 여행 얘기를 나누기 좋은 곳.


언제가도 변함없는 매력의 홋카이도. 여행을 같이 한 친구마냥 편하고 좋은듯 하다. 날씨는 흐렸지만 기분은 맑았고 몸은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지난 겨울과 같은 풍경을 봤지만 다른 얘기를 담아 또하나의 겨울 추억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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