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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IKETRIP Oct 07. 2021

엄마 강릉가자

엄마와 단둘이 떠난 강릉여행


코로나 이전에 다녀온 여행입니다.



 

'불 꺼졌나 확인했어?', '보일러 외출로 해놓고' 고작 2박 3일인데 엄만 나보다 준비할게 더 많은가 보다. 난 노트북과 카메라가 들어갈 만한 가방이 전분데 엄만 주전부리를 담아 놓은 작은 가방과 옷가지가 담긴 가방, 그리고 정체 모를 가방까지 3개나 됐다. 점심이 한참 지난 후에 나 출발할 건데 전날 미리 짐을 챙겨 둔 거 보면 엄만 분명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거나 오랜만에 하는 아들과의 여행에 조금은 들뜬 사람 같았다.   




 

 엄마랑 2박 3일 강릉 여행을 다녀왔다. 블로그를 하면서 가끔 있는 이런 소소한 이벤트 덕분에 블로그 하고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돈 주고는 절대 가지 않을만한(멀거나 혹은 가격이 비싸거나) 곳에 갈 기회가 주어지니까. 덕분에 엄마에게 효도할 기회도 생기고 여행 핑계 삼아 엄마랑 얘기도 좀 많이 나눌 시간도 생기고 말이다. 그러고보니 엄마랑 하는 국내여행은 처음이다. 어렸을땐 친구들과 애인이랑 단둘이 오붓이 많이 다녔는데 이 나이 먹도록 엄마랑 제대로 된 여행을 한번 못다녀 봤다는게 참 부끄러운 일 같다. 좀 더 살가운 아들이 되도록 노력해봐야겠다. 엄만 살가운 아들보단 돈 많이 벌어 좋은 여자를 만나는게 더 우선일테지만. 



강릉으로 가는길.
차안에서 듣는 내 플레이리스트는 엄마가 안좋아할게 뻔하니 라디오에 나오는 노랫소리와 사연을 들으며 한바탄 수다를 떨며 강릉으로 향했다. 강릉에 도착할때쯤 라디오에서 아들 자랑하는 엄마의 사연이 나왔다. 엄마가 누구네 아들은 어쩐다 저쩐다 말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런 사연을 주위에서 저런 얘길 들으면 분명 부러워하고 내 걱정할게 뻔한데 아직까지 참 부끄러운 아들로 살고 있는것 같다.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고 잘난 아들이고 싶은데 아직도 잘 안된다. 매번 마음을 다시 고쳐먹고 하지만 그때뿐인것 같다. 나랑 이런 얘길 곧 잘 나누는 동생 역시 나의 단점을 제대로 알고 말해 주지만 사실 뭘 해야 하나 답을 모르겠다. 암튼 듣기 불편했던 사연 때문에 차안의 공기는 바깥 공기보다 차가웠던것 같았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갈만한 곳을 찾아 봤다. 엄마도 나도 강릉이 처음이 아니라 굳이 꼭 가야 하는곳이 없어 근처에 있는 영진해변을 찾았다. 이곳은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고은과 공유가 높은 파도를 배경으로 서 있는 방파제가 있는 곳이다. 드라메에서 알려지지 않았다면 흔한 동해바다를 따라 있는 방파제중 하나였을텐데 역시 방송의 힘이란 정말 대단한것 같다. 이곳에 가면 방파제가 두개 비슷한 방파제가 두개 있는데 도깨비 사인이 있는 곳이 드라마속 장소다. 




 드라마가 끝난지 벌써 몇년이 됐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저마다 드라마 속 김신과 지은탁이 되려고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연애의 감정을 느껴본지도 참 오래된 것 같다. 요즘은 연애할 때 느끼는 감정보다 엄마와 이렇게 다니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더 따뜻하고 소중하다. 




 젊은 커플들은 삼각대를 놓고 찍고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은 서로 찍어 주기 바쁘다. 여느 때처럼 엄마사진만 찍고 갈까 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뒤에 있던 사람에게 사진 한장만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랑 같이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였을까? 엄마랑 눈을 마주치는게 이렇게 어색한 일이었던가. 엄마는 날 보며 미소를 건냈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아마 항상달고 있는 그 생각 때문인듯 했다. 바람 때문인가 기분이 묘해서 그런가 눈물이 조금 났다. 여행중 가장 짧은 순간 가슴속에 아로새긴 엄마와의 추억. 




난 배경중심이 좋은데 엄만 인물 중심을 더 좋아한다. '넌 사진찍는 애가 이렇게 밖에 못찍니? 내가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엄마에게 항상 듣는 소리다. 앞으로는 어디서 찍었는지 모르게 프레임 가득 엄마를 채워야겠다. 




 엄마는 백종원 스타일. 난 맵고 짠건 별론데 엄만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야 간이 맞는 것 같다고 한다. 가끔 엄마가 싸준 반찬들이 물에 헹궈 먹어야 될 정도로 짜면 버럭 화를 내던 내 모습이 참 한심해 진다. 엄마의 나를 위한 행동은 늘 당연한듯 여기는 나는 아직 철부지인가 보다. 


 


 

엄마가 좋아하는 믹스커피를 팔지 않지만 분위기 때문에 찾아간 테라로사 사천점. 아들이 엄마를 엄마가 아닌 여자로 보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내가 더 나이가 들어도 엄마는 엄마가 아닌 순간이 없기 때문에 쉽지 않다. 하지만 단둘이 여행을 떠나 좋은곳, 예쁜곳을 보고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뜻밖에 쉽다는걸 깨닫게 된다. 





정체모를 가방에 들어 있던건 다름 아닌 노트북. 여행에서도 엄마의 고스톱 사랑은 계속됐다. 





 아침먹고 걷던 호텔 앞 솔숲 산책로. 




 무료입장이 가능한 나이가 된 엄마


 

서울은 지하철만 무료라 엄만 항상 버스보단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야 되는 경우엔 버스 두세 정거장은 항상 걸어 다니신다. 그냥 버스타고 다니라 해도 한사코 걸어 다니신다. 운동삼아 걷는다고 하지만 쾌쾌한 매연과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에서 운동삼아 걷는건 아닌것 같은데. 사실 엄마와 나의 타협점이 생기지 않는 이 논쟁이 생긴지는 좀 됐다. 버스도 무료가 되지 않는 이상 이 논쟁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나한테 엄마도 걱정거리겠지만 이럴땐 엄마도 나에겐 걱정거리다. 




 2박 3일 특별히 많은 사진을 찍진 않았다. 엄마는 내사진보다 셀카봉에 연결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더 좋아하니까. 엄마랑 앞서거니 뒤서가니 걸었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기도 했고 뒤돌아 걸으며 엄마의 앞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엄마와 마주보고 밥을 먹을땐 유심히 엄마의 손을 들여다봤다. 주름지고 탄력을 잃은 엄마의 손엔 엄마가 감당해 온 세월이 엿보였다. 더 늦기전에 더 늙기전에 엄마와 여행을 또 떠나야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새하얀 목련꽃이 필때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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