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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선의 Nov 06. 2024

찾아라, 이 주의 빌런!

<나는 SOLO> 과몰입러이신가요

오늘은 내가 일주일 중 가장 좋아하는 요일, 수요일이다. 수요일 밤이 올 때까지 일주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는 하나. 밤 10시 30분부터 나만의 행복한 파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를 파티로 초대한 이는 바로 남규홍 PD. 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애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연출자다. 나는 목욕재계를 마치고 가벼운 심심풀이 스낵과 함께 아이패드 앞에 앉아 남PD의 파티 초대장을 열어본다. SBS 앱이 실행될 때 잠깐의 버퍼링을 보고 있으면, 침을 꼴깍 삼키며 커다란 성문을 끼이익 여는 신데렐라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리는 BGM이 나오면 가슴이 설렌다. (사진 : 촌장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처)


  <나는 솔로>를 챙겨보기 시작한 건 2022년 봄부터다. 계기는 단순했다. ‘솔로나라 4기’에서 웬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를 향해 막말을 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는데, 나중에 보니 여성 출연자도 ‘남혐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더라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들의 신상을 탈탈 털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대체 무슨 프로그램이기에 저 난리람.’ 호기심에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이 이제 내 삶 깊숙이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잔잔하고 무해한 ‘노잼 기수’들을 지나 <나는 솔로>는 몇 번의 돌싱특집과 모태솔로 특집을 거치면서 포텐이 폭발했다. 특히 “손풍기 없어?”라는 멘트와 손동작으로 유명한 10기 영수, “상철이 이 자슥아! 누가 소설을 뒤에서부터 읽는데!”로 유명한 16기 영숙 등은 희대에 길이 남을, 드라마 작가 보고 쓰라고 해도 못 쓸 정도로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을 포함해 각 기수마다 ‘빌런’은 꼭 있다. 가끔 보면 사회생활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인데, 사실 남PD를 비롯한 연출진의 ‘악마의 편집’이란 걸 알면서도 매주 빌런들의 활약상을 기대하게 된다. 


세 차례의 돌싱특집은 <나는 솔로>의 포텐을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캐릭터가 확실한 출연자들은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사진 : 촌장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처)


  지난주에 끝난 22기 역시 돌싱특집이었다. 고된 생활 속에서도 부지런히 살아내고, 또 사랑받고 싶은 게 눈에 보여서 응원하고 싶은 출연자도 있었고, 자신을 자칭 ‘사기캐릭터’라고 칭하며 자신감을 내보이고 남성 출연자를 어장 속 물고기로 취급하다 최종선택은 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출연자도 있었다. 22기는 프로그램 방영 중에 결혼하는 커플까지 나오면서 연애 예능으로서 리얼리티를 한층 더 살려주었다. 리얼할수록 나를 포함한 시청자들은 더욱 과몰입 하게 됐다.  


  본방송은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즈음 끝난다. 하지만 나의 밤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방송 후의 반응을 살펴본다. 누가 보면 이 프로그램 작가인 줄 알 정도다. 평소에는 접속하지 않던 사이트에 들어가 본방송 속 황당한 에피소드와 관련된 원색적 댓글들을 보며 낄낄거리는 내 모습은 남들에겐 숨기고픈,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큰 쾌감을 안겨주는 ‘길티 플레저’다. 방송 후 하루 이틀이 지나 목, 금요일쯤 되면 <나는 솔로> 제작사인 촌장 엔터테인먼트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영상이 올라오는데, 거기에 달린 댓글을 읽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공식 채널까지 찾아와 댓글을 달 정도면 이미 프로그램에 과몰입한 시청자들이기에 엄청난 감정이입으로 표현을 풍부하게 쏟아낸다. 위트있고 센스 넘치는 댓글도 많이 다는데, 피식피식 웃으며 그 드립들을 보는 게 나에겐 큰 재미다. 




  나는 왜 <나는 솔로>를 좋아하는가. 아니, 좋아하는 것을 넘어 환장하는가. 다 제쳐두고, 일단 재밌다. 연애하고픈 일반인이 출연해 제한된 시공간에서 사랑에 빠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걸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그리고 남녀 불문하고 출연자 가운데 가장 ‘내 스타일’이 누구인지 속으로 채점판에 점수를 매기는 것도 은근한 즐거움이다. 외모는 차치하고 누가 진국인지를 끊임없이 평가하는 것이다. 방영 첫 주 첫인상에서는 영수를 제일 미덥게 봤지만, 둘째 주 자기소개를 보고는 광수가 괜찮아 보였고, 방영 중간 즈음엔 영호가 속 깊고 멋있어 보였다가, 마지막 주에 이르러선 영철이가 진짜 진국이었다는 식으로 내 ‘최애캐’는 매주 바뀐다. 아마 남PD의 의도에 맞게, 그가 ‘해당 회차의 호감형’으로 연출한 순서 그대로 취향이 흘러갈 것이다. 그러면 뭐 어떤가. 재미있으면 됐지.


  유용성 측면에서도 <나는 솔로>는 인생의 훌륭한 교보재다. 인간의 심리를 헤아려보고 사회성을 간접적으로 기를 수 있어서다. 애청자들 사이에서 ‘나쏠은 남PD의 사회실험 프로그램’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그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상대의 이야기를 왜곡해 받아들이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지, 세상은 이렇게 험난한 곳이니 조심하라고 예방주사를 맞는 기분이다. 그런가 하면 예의바르고 분명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 사람 사이에 있을 때 이 사람의 말을 저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 자세가 얼마나 필요한지, 궂은일에 앞장서고 청소와 설거지를 나서서 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멋져 보이는지 삶의 지혜도 깨칠 수 있다. 


  어쩌면 ‘어머머, 저 사람 좀 봐!’ 하면서 옆 사람 어깨를 찰싹 때리면서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하고 싶은 원초적인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빌런’ 캐릭터가 나오면 퇴근한 남편에게 그 사람의 빌런 짓이 어떠했는지 잔뜩 신이 나 설명해주곤 한다. 그러면 남편은 피곤한 얼굴로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예쁜 여성 출연자가 나온 영상을 들이밀면 눈이 반짝반짝해져 집중하고 본다. 으이구, 남자들이란. 여하튼 <나는 솔로>는 내가 일주일을 잘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이자, 손꼽아 기다리는 낙이자, 내 삶의 윤활유다. 악마의 편집이 들어갔대도,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자극적인 방송이래도, 미안하지만 재밌는 건 재밌는 거다. 오늘 밤도 나는 남PD의 초대장을 들고 성문을 끼익 열어 솔로나라에 입국할 것이다. "여긴 어디~~~? 나는~~~ 솔로!!!"




< 에필로그 >

이 글은 내가 지난주 수요일, 그러니까 <나는 솔로> 속 솔로나라 23기가 첫 방송되기 전에 쓴 글이다.

글을 쓴 날 밤에도 즐겁게 23기 방송을 시청했고, 본방송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옮겨다니며 출연자 직업 스포 같은 정보를 찾아봤다.

그런데 보도가 이어졌듯이, 23기 여성 출연자의 과거 이력(범죄 전력으로 추정되는 상황)문제가 되면서 공식 영상에서 해당 출연자의 분량이 모두 편집됐고 <나는 솔로> 제작진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진짜로 출연자의 버라이어티한 전력이 밝혀지니 고인물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죄책감이 든다.

제작진은 어쩌면 나같은 과몰입러의 만족을 위해 혹은 신규 시청자 유입을 위해 빌런 캐릭터 만들기에 혈안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출연 신청자의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약간의 '쎄함'을 인지했더라도 그대로 출연을 강행하며 빌런 캐릭터로 인한 화제성을 끌어보려 했을지 모른다. 

빌런과 도파민에 환장한 과몰입러였다가, 현실 찐 빌런(일지도 모르는)이 출연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조금 주춤하게 된다. 오늘 하는 방송부터는 조금 차분한 마음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고, 온라인 커뮤니티도 좀 덜 들어가면서 현생을 살아야겠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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