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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May 22. 2020

<러반타운> Part I - #2

귀농, 절반의 성공


귀농한 사람 중 절반은 결과에 회의적이다. 겉으로 보이는 문제는 돈벌이다. 귀농 후 5년간의 소득 변화는 마치 스타트업이 창업 후 J커브를 그리며 죽음의 계곡을 지나가는 것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귀농 첫해 소득은 귀농 전 평균 가구소득보다 45%나 줄어들고, 귀농 5년차가 되어도 도시에서 벌었던 만큼 소득을 올리기 어렵다. 


귀농가구의 절반 정도는 농업 외의 경제활동으로 부족한 소득을 충당하는데, 제일 큰 이유는 농업소득이 부족해서(72.6%)이다. 순수 농업소득은 월 백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만약 귀농을 힘겨운 도시생활의 탈출구로 삼으려 한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귀농은 자금의 여유가 없으면 해외로 이민 가는 것 보다 힘들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자연인으로 산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귀농의 실상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농촌에 앞서 정착한 선배 귀농인들이 겪은 귀농 과정에 대해 직접 들어 보았다. 여기에 그 중 세 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야기 하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경기도 여주에 귀농한지 20년이 넘은 K 농부(50대)의 이야기다. 4천㎡ 규모의 시설하우스에 관엽식물 2만여 본을 재배하는 K 농부는(연간 매출 2억3천만원에 판매이익 8천만 원) 화훼강소농으로 불리운다. 


Q. 귀농 초기에는 무슨 농사를 했나? 

A. 귀농하면서 가지고 있던 현금 2천만 원 정도를 투자해서 느타리 버섯 농사를 했다. 40평 규모의 버섯 재배 하우스 3동이 있는 땅 5백평을 2천만 원에 인수해 시작했다. 땅은 아니고, 하우스 시설만 산 것이다. 버섯 재배 기술이나 경험은 없었지만, 그래도 시골에서 자랐고 농대 출신인지라, 농사에 대한 자신감은 넘쳤다. 하지만 농사를 시작한 첫 해에 바로 망했다. 고물이 된 하우스 시설은 다시 몇 년 후에 200만원 받고 팔았다. 아내가 맞벌이를 하지 않았다면 먹고 살 수 없어 농사를 그만뒀을 것이다. 


Q. 버섯 농사를 접은 후에 바로 화훼 농사를 시작했나?  

A. 아니다. 돈을 적게 들이고 할 수 있는 게 뭔가를 고민하다가, 다음 해에 버섯하우스 옆에 비어 있던 밭을 임대해서 목화 농사를 시작했다. 당시 밭 임대료가 평당 5백원이었다. 임대료는 쌌지만, 느타리 버섯 농사를 망치고 돈을 다 써버려서, 맨 손에 삽 한 자루 들고 열심히 일했다. 잘 가꾼 목화밭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귀농한 청년이 목화 농사를 짓는 것이 신기했는지 신문에도 소개되었다. 장식용 목화의 상품화에 성공한 이색 농업인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러나 실제 현실은 달랐다. 종자를 잘못 선택해서 수확한 목화를 팔지도 못했다. 


Q. 귀농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A. 돈이 제일 중요하다. 중요도를 별 다섯개로 표현하면, 자금은 별 다섯이고, 기술은 별 셋이다. 농업을 지속하려면 자금과 기술 중에 자금이 우선이다. 아무리 농사 기술이 있어도 투자할 자금이 없으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 옛날로 치면 소작농 처지가 된다. 내 손에 자금이 없으면 농협에서 빌려야 되고, 돈을 벌어도 빚 갚느라 허덕이게 된다. 


Q.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는가? 

A. 아직 멀었다. 귀농 후 지금까지 20년간 쌓인 영농 융자금 부채가 3억 원이다. 최근 칠팔 년 동안은 이자만 갚고 있다. 능력이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요즘 농업은 규모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규모화가 되려면 여유 자금이 필요하다. 적정 수준 이상의 규모화를 위해 필요한 자금이 없으면 농촌에서 먹고 살기도 어렵다. 규모가 작으면 매출도 줄고, 재투자도 어렵다. 결국 규모를 키우기 위해 돈을 빌면, 이자를 갚느라고 악순환에 빠져 계속 허덕이게 된다. 흔히 나 같은 사람을 강소농이라고 좋게 말하지만, 실제 강소농은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그냥 소농이다. 소농은 먹고 살기에도 빠듯하다. 


이야기 둘, 젊을 때 귀농해야

30년 전 A 사장은 아직 신혼 초였는데, 화물차 운수업을 하던 남편이 사기를 당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잠실 토박이 남편은 집안에서 농사를 짓던 형님 댁에 가서 같이 농사에 뛰어들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형님이 하는 농사를 돕는 수준이었다. 몇 년 후 독립해 용인면에서 농사를 처음 시작했다가 다시 양평으로 옮겨왔다. 양평에서 처음에는 쌈채소 농사를 1만평 정도 지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말하기 힘든 복잡한 사연을 남기고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돌이켜 보면 귀농한 외지 사람이라 더 힘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정리한 자금으로 지금 보유한 1천 평 정도의 농지를 마련해서 딸기 농사를 하게 되었다. A 사장의 독특한 영농 이야기다. 


Q. 하우스가 매우 밝고 깨끗하다.

A. 지금 운영하는 체험 농장을 시작하면서 투자를 많이 했다. 그냥 농사만 짓는 것 같으면 이렇게 안 한다. 일하기 바쁜데 청소에 신경 쓸 힘도 없다. 우리는 유통을 하지 않고 사계절 체험 농장만 운영하는데, 고객들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환경이 깔끔한 것을 좋아한다. 금년에도 새로 공사를 하면서 이중 하우스의 비닐 전체를 PO필름으로 바꿨다. 일반 비닐의 세 배 값이다. 더 투명하고 보온도 잘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농업기술센터에서 스마트팜 시설 지원을 받아 큰 도움이 되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받았나?

A. 2천5백만원을 시설비로 지원받아 이산화탄소, 온도, 습도, 일조량 같은 것을 측정해서 스마트폰으로 받아보는 센서들을 설치했다. 정해 놓은 온습도에 맞춰 자동으로 환기를 할 수 있다. 


Q. 다른 딸기농장과 차별점이라면? 

A. 양평의 딸기농장은 대부분 체험농장이다. 다들 인터넷으로 홍보도 하고 별반 크게 다를 것은 없다. 한 가지 나만의 방법은 하우스 안에 반려견과 놀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딸기 수확철이 아니어도 그냥 반려견과 놀기 위해 찾아오는 고객도 있다. 


Q. 유통은 하지 않고 체험만 하는 장점은 무엇인가? 

A. 한 마디로 말하면 인건비가 덜 든다. 아무리 자동화되어도 관리하는 데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도 인건비가 적지 않게 든다. 특히 딸기 수확철에는 집중적으로 일손이 필요한데, 그만큼 비용이 덜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오히려 고객에게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수확에 필요한 인력을 공짜로 쓰는 셈이다. 소비자는 싱싱하고 맛있는 딸기를 직접 수확하면서 맛볼 수 있고, 생산자는 오히려 체험비를 추가로 받게 되니 서로 이득이다. 


Q. 지금 오십대가 귀농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귀농은 한 살이라도 어려서 해야 된다. 나이 먹어서 귀농하는 것은 어렵다. 농사의 기본이란 게 한두 해 한다고 다 알 수 없지 않은가? 오륙 년은 계속 투자를 해야 되는데, 농사에 성공해도 실제로 남는 것은 별로 없다. 나이를 먹은 후에 농촌에 살고 싶으면 그냥 놀면서 사는 것이 좋다. 


이야기 셋, 10억 투자 후 적자 행진

양평에 귀농한지 10년을 맞이하는 청운면의 Y 대표(60대)는 한사코 만나기를 고사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우수한 시설을 보유한 귀농인이라고 추천했기에 그의 거절은 더욱 의아했다. 수차례 청한 뒤에 겨우 전화 통화로 짧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Y 대표와 통화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서울에서 살던 사업가였던 Y 대표는 11년 전에 귀농을 했다. 처음 귀농하면서 10억을 투자해 느타리 버섯 재배사를 만들었다. 대략 2천㎡ 규모의 현대적 시설이었다. 느타리 버섯은 일반 농사와 달리 거의 자동화된 공장 수준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서 버섯의 판로는 주로 서울의 가락시장 경매였다. 그런데 사실 버섯 매출은 투자한 금액에 비해 밝히기도 싫을 만큼 형편없이 적은 수준이었다. 서울의 사업을 병행하느라 아무래도 신경을 덜 쓴 탓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너무 적었다. 생산량이 들쭉날쭉 균일하지 않기도 했지만, 진짜 문제는 버섯이 종종 다른 균에 의해 오염되는 것이었다. 이익을 따져보았으나 계속 적자만 이어져서 나중엔 원가를 계산하기도 귀찮아졌다. 처음 농업을 시작한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적자가 아닌 해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농업을 포기하기 보다는 다른 사업에서 번 돈으로 먹고 살면서 농사를 계속하는 편을 선택했다. 투자한 시설 때문에 미련이 남아서 버섯 농사를 계속 하고는 있지만, 언제 그만두게 될 지 모른다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물었다. 


“귀농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답은 명료했다. “귀농하지 마세요, 언론에 보도되는 성공적인 귀농 사례도 실제 부딪혀보면 많이 달라요.” 10억을 투자했지만 적자 행진만 이어지는 농업을 버리지도 못하는 Y 대표의 결론이었다. 


지금까지 귀농인의 성공 사례는 대대적으로 알려지는 반면 실패 사례들은 자세히 거론되지 않았다. 실패가 성공을 낳는다고 하는데, 귀농 실패를 예방하기 위해 학습할 자료는 부족하다. 패널 추적 조사와 샘플링 조사를 실시한 결과 외에는 귀농 실패의 전체 통계도 없다. 귀농 행렬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귀농 실패의 원인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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