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부천의 갈림길 (2020)

mixed media on korean paper-100x73(cm)

by 김주원


규원이가 이번 달 부산에서의 전시를 성황리에 마치고 나에게 보내준 작품이다. 우선 작품에 대한 그의 설명부터 보자.


작품 속의 이미지는 왼쪽의 서울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를 담장으로 한 서울과 부천의 모처다. 왼쪽 오르막 길은 서울의 주소이고, 오른쪽은 나의 작업실로 가는 길이자 부천 지역이다. 이 두 길은 서로 다른 정책으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행정적인 정책(주소)에 따라 왼쪽 길에 적을 두고 있다면 서울의 긴급 재난 정책으로 지원을 받고, 오른쪽은 경기도 부천시의 긴급 재난 지원금을 받는다. 실제 저 인접한 두 지역에 재난이 있다는 것은 같은데, 그 지원 정책이 다르다는 것이 묘한 느낌을 느끼게 했다.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정책은 실제 살아가는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스스로 발전적이고 효율적인 통제를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이 정책은 서로의 믿음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범우주적 존재들은 그 본질을 그렇게 설계하지 않았다. 마치 물처럼 각자의 법칙대로 흘러가게 둘 뿐이다. 물은 그 위에 비친 풍경을 사실 그대로 비추지 않고 그 스스로의 본질에 맞추어 비추어준다. 이 나무는 저 나무와 한데 섞여서 그 형태와 색이 모호했다가 뚜렷했다가 하고 자꾸 움직이며 왜곡한다. 물이라는 물성을 제대로 알고 파악했다면, 우리는 물의 표면이 아닌 그 깊이를 가늠하려 한다.


그렇다고 나는 이 정책과 우리 사회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 정책과 우리 사회가 우리 인간을 위한 것일 뿐이며 본질을 왜곡하고 곡해할 수 있음을 인정하자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자주 보는 이 이중적인 풍경을 물에 비추인 모습으로 그려보고자 했다.


생각 (1) -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나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나의 얼굴에는 눈, 코, 입, 볼, 귀, 이마와 같은 신체의 일부분이 모여서 하나의 얼굴을 구성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 경계는 누가 정했을까? 그리고 그 경계는 어디쯤일까? 모호하다.

그래도 이쯤 어딘가에 눈이 있고 그 아래에 볼이 있으며 그 사이에 코가 있고 그 밑에 입이 있다. 경계는 모호하지만 누군가의 명명으로 그런 부위들은 이름이 생겼고 각기 제 역할을 부여받았다.

사물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하나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구분하려 하고 가치를 매긴다.


생각 (2) - 누구나 자기만의 색을 가진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일수도 있겠다.


생각 (3) - 작품의 색감이 전작보다 많이 밝아졌다. 밝아진 작품의 색감을 통해 작가의 내면이 좀 더 긍정적인 변화를 이룬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오해일 수도 있다.


생각 (4) - 의도적으로 만든 듯한 불안한 구도는 작가의 심리 상태의 반영일까? 궁금해서 규원이한테 물어봤는데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고 물의 출렁거림을 표현하기 위해 소실점을 비튼 정도라고 했다. 정작 나는 그림을 보면서 약간의 불안을 느꼈다. 내 무의식의 반영인 듯하다.


생각 (5) - 실체가 없지만 우리 삶을 구분하는 존재가 생각보다 많았다. 그중 법과 돈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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