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아 조금만 천천히 가다오.
장사를 시작한 후로 나는 핸드폰 캘린더에 매월 납부해야 할 것들을 알림 설정 해 두었다. 그래서 별다른 일정이 없더라도 매월 정기적인 지출로 인해 캘린더 일정은 꽉 차있다.
* 5일 : 아내에게 생활비 입금, 배달앱 이용료, 배달대행업체 관리비, 가게 화재 보험, 자동차 장기 렌탈비, 식기세척기 할부, 포스 렌탈비
* 7일 : 전월 사업자용 신용카드 대금
* 10일 : 정수기 렌탈비
* 18일 : 해충 방역 이용료(세*코)
* 21일 : 가게 임차료
* 22일 : 수도요금, 가게 통신비(전화, 인터넷)
* 24일 : 전기요금
* 30일 : 가스요금, 가게 대출금
당장 생각나는 것만 나열해 봤는데 여기서 노란 우산 공제,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아파트 대출금은 제외했다. 지출 목록을 볼 때마다 내야 될 것들이 참 많다고 느낀다. 생각나는 것만 적었는데도 말이다.
월 가게 임차료가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인데도 고정비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장사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라서 월세가 밀린 적은 없지만 내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흘러서 어느덧 다음 회차 납부일이 다가오고 있다. 이러다가 정신 차려보면 계약기간 만료일도 금방 올 것 같다.
대출받아서 장사하는 거라 실제 월 임차료는 가게 대출금까지 합하면 실로 어마어마해진다. 실제로 내가 직접 경험을 하고 있다 보니 대출받아서 장사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뜯어말리고 싶다. 자기 자본으로 충분히 가게를 차릴 수 있는 형편이라도 말리고 싶은 심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이 지배적일수록 현실이 이런데 내 생각마저 절망적이라면 정말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꾸는 건 돈 드는 일도 아니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가지 상황 중 절약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점이 가장 긍정적이다. 포스 렌탈비는 이전 가게에서부터 계약이 이어져 와서 이제 곧 만기가 된다. 월 3~4만 원 정도였는데 이제는 월 1만 원으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신용카드도 지난달부터 웬만하면 체크카드로 바꿔서 쓰기 시작했다. 해충 방역 서비스도 집중 점검 기간이 끝나서 월 이용요금이 9만 원 정도였다가 다음 달부터 5만 원 대로 떨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안에서는 둘째 아이가 기저귀를 뗐다!
이 정도만 해도 벌써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긍정적 생각 다음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줄 수 있다는 점, 건물주에게 임차료를 안 밀리고 낼 수 있다는 점, 일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쉴 수 있다는 점, 주기적으로 꾸준히 단체주문이 들어온다는 점, 아직까지 아내가 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다는 점, 내 팔다리가 아직은 쓸 만하다는 점 등... 생각해보니 감사할 것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처음에는 글에 하소연을 담으려고 했는데 마지막에는 희망이 생겨버렸다.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면 분명 빛이 보이리라 믿는다. 단지 자그마한 소원이 있다면 내 기대치와 비슷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뿐이다.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만큼 지금 세상은 예전보다 더 빨리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