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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름 Jun 07. 2024

10.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상담이 바꾸고 또 남긴 인생의 흔적

예전에 어렸을 때 일기를 쓰면 그랬다. 오늘 한 일을 쓰고, 참 재미있었다. 내일도 재미있게 놀고 싶다. 근데 인생이라는게 그런거 같다. 해도 해도 재미있는 일이 있고, 그럼 오늘 그걸 하고, 내일이 되면 그 설레임에 일어나서 그 재미있는 일을 또 하는 것.

상담으로 얻은 것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 나에게 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그 자체로 예쁘다 해주는 것. 그러나 한편 또 나의 마음 한쪽에는 언제나, 발전하고 싶다 어제보다 낫고 싶다 그런 마음들이 있다. 이 두 마음을 어떻게 잘 조정해야 할까? 발전하고 싶은 이 마음 자체도 따르지 않는 게 좋은 걸까? 지금의 나도 너무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도 동시에 조금 더 나아지고 싶은 면이 있는 건 보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는 한은, 괜찮을 것 같다. 상담선생님도 이제 앞으로는, 뭘 더 하고 싶어요? 라고 종종 물어보니까, 이정도는 괜찮겠지!

이제부터는, 예전의 어떤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 더 잘 할 수 있었던 것에 덜 신경쓰고 싶다. 내가 조금 더 잘 했으면 됐을것같은 사람에게 한참 지나 괜히 연락하지않고, 내가 조금 더 많이 알았으면 더 잘했을 것 같은 현명한 커리어 선택에 신경쓰지 않고 싶다. 나는 지금 나만이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한 명 밖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내버려두고 현재에 존재하고 싶고, 그렇게 짐정리를 마치고 헐빈해진 마음 공간에는 미래에 대한 설레임을 채워가지고 살고 싶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을 가진 사람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지 않다. 나를 좋아라 하고 예쁘게 봐주는 사람, 내 장점을 봐주고 내 단점까지보지만 그것에 비판적이지 않은 사람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과 시간을 더 보내고, 나에 대해 '의견'을 가진 사람과 덜 만나고 싶다. 나를 너무 많이 걱정하거나 그래서 나를 고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덜 보내고 싶다. 함께 있을때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나 관심을 요구할 사람들 말고, 근처에 있을 때 내 심장이 편하게 뛸 수 있는 사람들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의 내장들에게 아드레날린이 없는 시간을 좀 더 선사해주고 싶다.

지난 상담을 하면서 나의 부모님과 접점을 줄여야 할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자주 연락하지 않되, 연락 할 때는 진짜 대화를 하고 싶다. 엄마가 잘 지내냐고 물으면 못 지낼때는 딱 죽겠다고 말하고 싶다. 부재중 전화를 그대로 남겨두며 죄책감이 드는 대신 오늘은 피곤해서 전화받기가 힘들다고 문자를 남기고 싶다. 엄마가 습관처럼 전달하는 불안에 잠식된 언어들 혹은 말투가, 나의 신경계를 너무나 오래 자극해왔고 지금도 너무나 잘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다.

나의 몸이 재미있어하는 일을 많이 해주고 싶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가지게 해주고 싶다. 이번 주말은 좀 쉬고 싶다고 할 때 괜히 그래도 나가야지 하고 힘든 몸을 일으켜 나가고 싶지 않고, 그래 그럼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고 소파에 누워서 하루 쉬자! 이렇게 쿨한 몸의 주인이 되어주고 싶다. 몸이 힘들다고 신호를 보낼 때, 그 신호를 잘 듣고 싶다. 큰 일이 생겨서 심장이 쿵쾅쿵쾅 대면 잠깐 갓길에 차를 세워 쉬고 가거나, 그날 내야 될 과제가 너무 싫으면 멋진 부모가 되어 제껴주고 싶다. 너무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있지만 이해가 안 될 때,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싶다. 어렸을 때 내 모부가 해주지 못했던 것을 내가 내 몸에게 해주고 싶다. 내 장기가 내 자식이라는 기분이 들면 좀 이상한가?

상담을 받으며 신체 감각이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는데, 가장 느끼기 쉬운 부분은 심장인 것 같다. 특히 긴장되고 스트레스 받는 순간에 심장은 신호를 정확하게 보내준다. 놀라거나 무서울 때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 슬플 때 찢어질 듯 아픈 느낌 이런 느낌들은 신체감각 초보자들이라도 쉽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호흡도 있다. 어? 하고 어느 순간 숨을 쉬지 않거나 얕게 쉬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런 느낌은 보통 허벅지가 조이는 느낌과 같이 온다. 그러면 가슴을 확 펴고 심호흡을 하면 그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불안해서 그런 것이다. 배의 느낌도 있다. 이건 보통 릴렉스 될 때 온다. 마른 미역을 따뜻한 물에 넣으면 확 풀어지듯이, 배 속에 들어있는 소장이나 대장이 확 느슨하게 풀어지는 그런 느낌은 물을 오래 보고 있으면 온다. 릴렉스 될 때는 대체로 몸 속에서 따뜻한 느낌이 확 퍼지는 것 같다. 나는 두 손을 심장 위에 얹어서 5분 정도 있으면 느껴지는 심장이 따뜻해지며 녹진녹진 풀어지는 느낌도 좋아한다.

괜히 내 감정이 거부된 것 같아서 화날 때, 규칙이나 예의범절 같은걸 끌어와서 상대를 닥달하지 말고, 그냥 보고싶었다, 서운하다, 나를 더 신경써줘 내 감정을 전달하는 어쩌면 유치한 말을 더 하고 싶다. 이런저런 감정과 신체감각에 더 신경을 쓰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은 무한한 주관적 세계이고, 키는 내가 잡고 있다. 지도는 내 신체,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이다. 돈이나 명예같은 외부의 기준들보다, 내가 편안한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가치를 반영하는가를 더 신경쓰고, 그런 선택을 내렸을 때 괜찮을까 내가 잘한 걸까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신뢰를 주고 진심으로 만족하고 싶다.

내면의 목소리를 너무 듣지 않아서 지금은 그 목소리가 너무 작고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다가 '내면 양육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읽었는데, 내면 양육자 목소리가 생기기 전에 내면 아이의 목소리부터 좀 키워줘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면의 아이가 좀 더 천천히 하고 싶다는 목소리, 이건 위험하게 느껴진다는 목소리, 이건 하고싶지 않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더 듣고 싶다. 지금은 들리긴 하는데 너무 모기소리 만해서 잘 안 들릴 때도 있고, 습관적으로 무섭게 혼낼 때도 많다.

이제부터는 언제나 어렴풋이 원했던 방향으로 내 배가 항해하게 되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이가 70살쯤 되면, 내가 언제나 노년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인, 내 보금자리 거실에 서서 황금색 석양을 고양이와 함께 바라보고 있는 노인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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