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상상력을 위한 게임, Nations State
Q.범죄가 적고 선거를 사랑하는, 민주 시민 8백만 명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있다. 정부 예산 지출 중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것은 복지, 국방, 교육이다. 이 국가의 대학생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시민으로서의 다양한 정치적 권리에 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한다. 국가 경제는 목재 수출, 가구 복원, 송어 양식, 관광 산업 등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누구나 쉽게 꺼내고, 도시 어디에서든 그라피티를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문화에 대한 애정이 높다. 태평양 지역에서 문화 수준이 상위 20%에 들고, 세계적으로도 상위 26%에 해당하는 이 국가는 어디일까요?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NationStates'라는 게임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 국가 '언디'의 이야기니까. 요즘 뭐 재밌는 것 없나. 어느 날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는데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이거 하는데 네 생각 많이 나더라. 너 완전 좋아할 것 같아. 그 얘기에 컴퓨터를 켜고 곧장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취향 저격의 게임이었다. 애초에 게임을 좋아하고,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주는 게임이라면 더더욱 환영이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자기 국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들을 처리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메인 화면에서 이슈 버튼을 누르면, 최대 5개까지 플레이어가 국가 원수로서 처리해야 할 이슈들이 뉴스의 형태로 나타난다. 가령 '버스킹과 소음'에 대한 이슈가 있다면, 위와 같은 뉴스 이미지와 함께 텍스트가 뜬다.
새로운 내각 장관들의 선서식이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는데, 근처에서 벌어진 부부젤라 연주자들의 열광적인 버스킹이 방해가 되었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버스킹 공연의 소리가 너무 커서 선서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발적인 사고였기 때문에 몇 사람들은 웃어넘기긴 했지만, 버스킹과 소음에 대한 이슈가 사회 전반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이때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도 함께 뜬다. 옵션은 두 개나 세 개가 뜨는 경우가 가장 많고, 개인적으로 본 가장 많은 옵션은 다섯 개였다. 실제로 버스킹과 소음에 관한 옵션은 세 개가 제공된다.
1) "그것은 소음일 뿐이에요!" 도심에 거주 중인 마론 소린이 크게 소리쳤습니다. "내가 오후 3시에 평화로운 낮잠을 자려고 애쓰는 동안, 계속 재능 없는 뮤지션과 배우들에게 방해받았지요. 그들은 돈이 없는 거지들일 뿐이에요. 게다가 시끄럽고 짜증 나기까지 하지요. 버스킹을 금지하고, 그들의 악기를 부수고, 수입을 빼앗아야 해요."
2) "물론 대단한 뮤지션은 아니에요." 버스커 블라디미르 보위가 이야기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일지라도 춤, 노래, 저글링, 페인팅과 같은 예술적인 경험들은 우리의 삶에 색깔을 입히지 않나요? 오히려 정부가 길에서 공연하는 모든 예술가에게 지원금을 주면 좋을 것 같은데요. 모든 사람의 삶이 매일 매일 행복해질 수 있도록요!"
3) "양쪽 모두 행복해질 방법이 있어요." 문화예술부 장관인 킴벌리 하크니스가 의견을 개진했다. "좋은 연주, 작품, 공연에는 확실히 힘이 있지요. 공식적으로 버스킹 라이센스를 만듭시다. 예술적 성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사람들에게만 라이센스를 발급하는 거에요. 그렇게 되면 양쪽 모두 좋게 되는 거지요.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에 대한 인식도 올라갈 거에요."
어떤 의견에 동의(Accept)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우선 메인 화면의 국가 소개가 바뀐다. 가령 버스킹 라이센스를 만드는 의견에 동의하면, 국가 소개에 'UN-DE's Got Talent are screened by the government to make sure that they actually have talent(언디의 예술가들은 정부에 의해 그들이 정말로 재능이 있는지 확인받는다).'는 식으로 한 줄이 추가된다. 정말 흥미진진한 것은 해당 결정이 나의 국가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항목별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결과창이다.
각 이슈 결정에 영향을 받는 항목은 다양하다. 청소년들의 반항성, 소득 분배의 평등성, 문화, 동정심, 정치적 자유, 치안, 복지, 폐쇄성, 평화주의, 영성, 건강, 세금, 관광, 시민권, 해외 원조, 사망률, 평균 수명, 방어력, 순응성, 정부 규모, 친환경성, 보건, 날씨, 범죄율, 과학적 발전 등 총 80여 개의 항목들을 통해 내 국가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예시로 든 '버스킹과 소음' 이슈의 경우 '버스킹 라이센스를 도입한다'는 의견을 수용했더니, 우선 관광 스치가 크게 올라갔다. 양질의 공연들만 남으면서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도심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짜증이나 불편함도 줄었는지 평화주의(Pacifism) 수치도 올라갔다. 대신 세금이 올라갔으며, 정부 규모도 커졌다. 무엇보다 정치적 자유(Political Freedom) 등급이 SuperB에서 한 단계 아래인 Excellent로 떨어진 게 컸다. 어찌 되었든 검열이니까.
주기별로 등장하는 이슈들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것 이외에 이 게임에서 즐길 수 있는 다른 컨텐츠도 있다. 이 게임은 한 개인이나 조직의 정치관을 온전히 시뮬레이션할 수 있도록 돕는 목적이 크다. 따라서 직접 공격하거나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방법으로 다른 국가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지만, 국가들이 연합해서 세력을 형성할 수 있고, 다른 국가들과 정치적으로 토론하고 국제법을 발의할 수도 있다. 그 외의 기능에 대해서는 필자도 플레이 경험이 길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차차 알아가야 하겠지만.
Nation States(네이션 스테이트)는 재미있고, 매력적인 게임이다. 특히 이 게임이 가진 교육적인 가능성, 유용성은 정말이지 놀라운 수준이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그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 '정치'에 대해 쉽게, 그러나 절대 얕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가령 도덕적인 관점에서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버튼을 누르면 결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과학적 발전 속도와 의료 수준이 낮아지고, 국민의 평균 수명이 줄어드는 대가를 감당해야만 한다. 현실이 그렇듯이 이 게임에서도 완벽하게 좋거나 나쁜 선택은 없다. 무엇인가가 좋아지면, 반드시 무엇인가가 나빠진다.
우리는 이 게임을 통해 사회적으로 어떤 이슈들이 있는지, 그것들이 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주요 당사자들의 입장은 무엇인지 부담스럽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치적 신념들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체험하고 가치관을 재구성하거나, 다른 가치들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 특히 개인적 차원을 넘어 주위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며 하나의 국가를 운영해나간다면,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의견을 교류함으로써 건강한 시민의식을 길러갈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토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내리고 주체로서 운영해나가기 때문에, 주권 의식과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강화되는 것도 이 게임이 주는 고유의 선물이다.
당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나라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당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들은, 당신이 옳다고 믿는 방법들은 정말 옳을까? 당신이 눈길을 주지 않았던 다른 가치들에, 다른 방법들에는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궁금하다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 세계의 변화를 위한 정치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게임, 네이션 스테이트를 강력히 추천한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그룹으로 시작하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