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대의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습니다. 곧이어 피아니스트로 보이는 사람이 객석에 인사를 하고, 피아노 앞에 앉자 연주할 채비를 마칩니다.
피아니스트는 시간에 맞춰 악보를 넘기거나 건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할 뿐 피아노 건반을 한 번도 건들지 않습니다. 악보에는 아무 음표도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주곡 <4분 33초>를 작곡한 존 케이지는 미국의 현대 음악가입니다. 작곡뿐만 아니라 작가, 철학자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죠. 그는 어떤 이유로 아무 음표도 그려져 있지 않은 곡을 작곡했을까요?
그는 우연히 하버드 대학교에 방음시설이 된 빈 방을 들어가게 됐다고 합니다. 당연히 정적만이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주 미세하게 들리는 소리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정적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깨닫고 <4분 33초>를 완성하게 된 것이죠.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는 악보지만, <4분 33초>를 연주할 때는 수많은 소리들이 들리곤 합니다. 관객들의 숨, 속삭이는 소리, 밖의 소음 등 우리를 둘러싼 여러 소리들이 매번 새로운 음악으로 변주시키는 거죠.
꼭 연주곡에는 예상한 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고, 편안히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4분 33초>. 이것이야말로 '고요가 주는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늘 수많은 정보에 파묻혀 살고 있습니다. 많은 소리를 듣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오히려 불안, 초조해하곤 하죠. 책 <스틸니스> 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며칠 동안이라도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손으로 고요를 박탈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 그뿐만 아니라 한층 높은 수준의 역량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급하게 서두른다고 미로를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미로를 풀기 위해서는 멈춰서 생각해야 한다. 에너지를 아끼면서 신중하고 느리게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할 도리 없이 길을 잃고 만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을 풀 때에도 마찬가지다.
<스틸니스> 中
어쩌면 우리는 고요한 시간을 얻지 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외면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침묵 속에서 깨어나는 자기 성찰과 좋은 아이디어를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4분 33초>의 훌륭한 연주를 들으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