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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이 Mar 10. 2023

무한게임에 내몰리는 사람들

지위 욕구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매일경제 '무한게임에 내몰리는 인류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없네' 기사 발췌 :

https://www.mk.co.kr/news/culture/10667082








인간을 세계의 원소라고 볼 때 우리가 속한 세계의 크고 작은 운동의 원인은 결국 결핍에 관한 충족 욕망으로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돈, 권력, 섹스는 인간 행동을 이끄는 유구한 역사 속 동인이었고 이 세 가지는 서로가 서로를 길항하며 인간 주변에서 작동해 수천 년 인간 삶의 양태를 만들어냈다.



돈, 권력, 섹스





신간 '지위 게임'은 '돈, 권력, 섹스'의 획득이란 인간 행동 메커니즘의 전통적 설명을 전복시키면서 인간의 모든 행동 중심에는 무엇보다 지위가 목표처럼 설정됐음을 선언하는 책이다. 소셜미디어의 '좋아요'와 추천 문화부터 힌두교 2만5000개의 카스트 제도, 또 히틀러 나치의 부상과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까지 가로지를 만큼 거의 모든 의미에서 놀라운 통찰력이 돋보인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자. 인간이 소유, 점유, 향유를 욕망하는 모든 것은 대개 서열의 최상층에 위치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지위의 위계는 확고하다. 벤츠 S500, 압구정 현대, 에르메스 버킨백 등 가시적 자산뿐만 아니라 매일 출퇴근하는 회사명과 그곳에서의 직위가 각인된 빳빳한 명함, 심지어 백옥 같은 피부나 허리둘레까지도 지위의 고저를 설명해준다. 이 모든 것은 개별 범주 내에서의 '지위 상징'이다.





지위 욕구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지위 게임은 본능에서 출발한다. "지위 욕구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과장이 아니다. 지위라는 요물을 가운데 두고, 인간은 자신과 타인의 서열을 매 순간 심사하면서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지위를 좇으며 인생을 산다.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지위라는 유무형의 목표가 개인이 '지위 게임'에 참여하도록 강력하게 독촉하기 때문이다. 높은 지위를 좇는 쟁탈전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위는 개인의 행복과 안녕을 결정하는 '필수 영양소'이며 더 나은 삶의 행복을 추구할 절대적인 기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지위 게임이 장밋빛이기만 할까.


'지위 게임'의 승자와 패자가 숫자로 증명되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인간의 수천 년 역사에서 아직 출현한 지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소셜미디어의 부상이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는 지위 게임의 참여자는 현재 추산컨대 무려 36억 명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이토록 거대한 숫자의 인류가 동시적 플랫폼 내 하나의 게임에서 경주한 적은 없었다. '좋아요' 숫자에 집착하는 참여자들은 업로드 직후 눌리는 환호의 숫자에 중독되고, 반대로 타인의 피드를 보며 가라앉기도 한다.





게임의 꼭두각시가 되는 건 업로드된 글의 게시자만이 아니다. 그 글에 달린 댓글까지도 평가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관한 SNS 이용자의 강박적인 집착은 게시에 따른 보상이 매번 다르다는 점 때문에 발생한다. SNS는 지위를 위한 일종의 슬롯머신이며, 우리가 지위를 얻기 위해 쓰는 전략이 우리의 정체성이 된다.



SNS는 지위를 위한 일종의 슬롯머신




지위를 바라보는 저자의 천리안은 수천 년 종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신앙의 본질을 일종의 지위 게임으로 재정의한다. 저자에 따르면 종교는 변형된 지위 게임의 하나다. 이를테면 일종의 '도덕 게임'이랄까.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기독교 등 모든 종교는 게임의 규칙을 교리라는 이름으로 합의한 다음 '위로 오르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계층 구조를 형성하며 신자에게 다가선다. 3000개의 카스트와 2만5000개의 하위 카스트가 5개의 주요 계층을 형성하는 힌두교를 떠올려보자. 이보다 더 체계적인 서열과 위계가 있을까. 종교라는 도덕 게임이 그 게임의 결과로 제공하는 당근은 현생이 아니라 후생에서 누리게 될 지위로 약속된다.





지위 게임의 페널티는 참여자가 절절하게 느끼게 될 가슴 깊숙한 모멸감과 수치심이다. 두 부정적 감정은 대개 폭력으로 이어졌는데, 지위 게임에서의 패배와 상실은 역사상 최악의 비극을 낳기도 했다. 히틀러를 향한 독일 국민의 환호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로 희생을 감수하며 막대한 배상금을 약속해야 했던 베르사유 조약에서의 씻지 못할 모멸감이 감춰져 있었다. 9·11테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은 "이슬람국가는 80년 넘게 모멸감과 불명예에 시달렸다"는 서명을 냈다. 명성과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인간의 사전에 타인의 안위라는 낭만적 수사는 자리하지 않는다.





결론에 이르러 지위는 하나의 '꿈'일뿐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더 높고, 더 크고, 더 날씬하고, 더 행복하기 위한 상징의 숫자에 가려져 우리가 인생을 잘못 살아가는 건 아닌지 저자는 반문한다. 책에 따르면 인생에 결승선은 없다. 인생이란 지위 게임의 승자가 되기 위한 혈투가 아니라 끝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즐거움을 얻는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누구도 지위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하며, 승리해서도 안 된다.
인생의 의미는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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