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를 뿜어내는 사람들의 특징
‘멋있다’의 대표 주자 강경화 장관. 염색하지 않은 머리에서 묻어나는 무심함. 그것이 ‘멋있다’는 감탄을 자아낸다. 허옇게 센 머리를 염색으로 가리지 않고 내어놓는 당당함. 그녀에게서는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려는 단단함이 느껴지면서 자연스레 '놈코어룩'이 떠오른다.
놈코어는 평범함을 뜻하는 ‘노멀(normal)’과 철저함을 뜻하는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다. 화려하게 차려입지 않아도 멋있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 바로 그것이 놈코어 룩이 패션계를 휩쓸었던 원동력이다.
놈코어 룩을 보여준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그는 무려 12년 동안 뉴발란스 스니커즈,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이세이미야케 검정색 터틀넥만 입었다. 차림새만 봐선 그가 아름다운 것에 무관심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그를 포함한 인간이 아름다움에 끌리는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애플에서 만들어낸 모든 상품의 외관, 유저 인터페이스UI, 서체, 제품 박스, 그리고 애플 스토어의 인테리어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잡스의 1995년 인터뷰 영상을 보고 그의 탁월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겨우 당시의 트렌드를 좇고 있을 때 그는 우리가 현재라 부르는 미래를 정확히 예견했고, 그 맥락에서 더 나은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모든 흐름의 중심에 있기를 꿈꿨다.
이렇듯 남과 ‘다른’ 그의 면모를 표현해주는 것은 옷이 아니라 그의 생각이었다. 그가 내세운 애플의 철학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가 그가 없는 애플에서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라”가 잡스가 지닌 아우라의 근원이었음은 분명하다.
인터뷰 영상이 촬영된 당시, 그를 쫓아낸 애플은 파산 직전이었고 그가 경영하던 넥스트는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한 상태였지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그의 눈은 끊임없이 빛나고 있었다. 인터뷰어는 잡스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히피입니까, 너드입니까?”
잡스의 답은 히피였다. 히피는 기존 권위와 다른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말한다. 인터뷰에서 잡스는 자신이 매료되었던 어떤 정신을 제품에 불어넣고 동료들 혹은 매킨토시 사용자들과 그것을 공유하는 것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했다.
히피가 기존 권위에 저항하고 남들과 ‘다르다’에 집중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드는 남들에게 무관심하고 남들과 달라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으며 자신의 세계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다. 너드는 우리말로 흔히 ‘괴짜’라고 번역된다. 잡스처럼 차원 높은 ‘다르다’를 표현한 사람들은 옷으로 ‘다르다’를 표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놈코어 룩을 입었지만, 너드들은 처음부터 옷에 관심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놈코어 룩을 입었다.
자신을 너드라고 칭하는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면 티셔츠와 헐렁한 청바지, 검정 바람막이, 그리고 슬리퍼 차림을 즐긴다. 그는 하루하루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에 옷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다는 말로 자신의 차림새를 변호한다.
너드는 히피처럼 다르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남들과 다름에서 초래되는 결과를 거추장스러워한다. 그래서 자신을 감추고 자신을 세상과 고립시키려 한다. 저커버그는 사용자의 개인정보 공개와 사용자 간의 연결을 추구하는 ‘페이스북’ 대표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개인정보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것은 저커버그가 너드이기 때문이다. 그가 푸드 트럭에서 산 음식을 길바닥에 앉아서 아무렇지 않게 먹는 것도 어쩌면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빛나는 천재성과 넘치는 위트로 무장한 너드의 아우라는 아무렇게나 입고 다닌다고 해서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히피든 너드든, 놈코어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놈코어 룩을 입어온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살펴보면 놈코어 룩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놈코어 룩은 옷으로 ‘다르다’를 표현하지 않고도
아우라를 뿜어낼 수 있는 사람들의 룩이다.
놈코어의 핵심은 룩이 아니라 ‘아우라’다. 그 결과 무심한 룩이 탄생한 것일 뿐. 어쩌면 아우라를 선망하는 마음이 놈코어 룩 따라 입기로 표현된 것일 수도 있다. 놈코어 없는 놈코어 룩은 아우라 발하기를 아우라 갖기로 치환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사치가 ‘비싼 것 갖기’에서 ‘우아하게 살기’로 진화했듯, 놈코어로부터 ‘자기 표현의 진화’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비싼 옷 입기’가 아니라 ‘나답게 존재하기’로 우리 자신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잡스나 저커버그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특별하다고 여긴다면 누구든 아우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트렌드로서의 놈코어 룩이 사라지더라도 정신으로서의 놈코어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따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