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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연 Dec 01. 2017

잘했어. 그리고 잘 왔어.

내가 나에게









실천이 없는 생각은 곧 죽은 것, 나는 살아야겠다.



20살 일주일에 여덟 번 클럽을 다녔고, 22살 요란스레 국내 여행을 다녔다.

23살 도대체 뭘 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록 일만 했다.

24살 무언가를 배운다는 즐거움은 술을 마시고 노는 것과 다른 즐거움이라는 걸 느끼며

25살 돈은 천천히 모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26살 퇴사를 생각해 본다.

27,28, 그리고 29살


퇴사 생각을 한 이후로 '그래. 지금이야. 이 지긋지긋한 회사를 당장 그만두겠어!' 가 아니라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박수연이라는 그릇 안에 대기업이라는 직장, 늘 걱정이 없었던 돈, 그로 하여금 부족함 없이 누리고 있던 모든 생활. 내가 담고 있던 그릇은 넘칠 듯 찰랑거렸다. '선택'이라는 건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하나를 포기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 큰 그릇을 망설임 없이 거꾸로 엎어 쏟아 내고도 미련 없이 다시 채워 나갈 수 있는 나를 기다렸다. 어느 날, 문득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점점 나태해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나태함을 느꼈다는 건 다시 한번 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9년 3개월의 끝에서 나에게 묻는다.

내가. 나에게.







은진 언니, 저 퇴사 날짜를 잡아야 될 것 같아요.




2017년 5월 31일. 정각 땡 하면 10분 버스를 타려고 미친 듯이 뛰었는데 오늘은 뛰지도 걷지도 않았다. 1층 로비에서 퇴근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혹시나 못 보고 가는 사람이 있을까 그 자리에 오래도록 기다리며 인사를 했다. 출근하는 한주 중에 마지막 날을 줄여 막날이라고 부르는데 오늘은 진짜 막날이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나의 퇴사 소식에 백 마디의 말 보다 고이기도 전에 무겁게 떨어지던 눈물이 내 손에서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해 마음에서 잡히고 말았다. 아쉬운 눈으로 그들의 마음을 보고 있자니 그 깊이가 보여 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9년을 함께 기억하고 추억하고 손을 잡아주고 힘이 되어 모두가 빛이 되었던 순간들이었다. 그녀들과 함께여서 더 오래도록 반짝일 수 있었다.







꿈은 끊임없는 숨이다.



모두들 가슴 한편에 있는 꿈. 세계일주.

내가 모든 걸 내려놓고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딱 두 가지였다. 미쳤거나 멋있거나.

떠나는 이유를 물었을 때도 큰 질문을 던지고 여러 작은 대답을 얻으려고 시작하는 여행도 아니었고 그냥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제목처럼.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쉬지 않고 달려왔던 9년의 끝에 스스로 1년이라는 휴식을 주기로 했다. 치열한 경쟁사회, 구조적 취업난의 최고봉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시기를 표면적으로 '아무것도 안 한 것'으로 말하더라. 그러나 결국 이런 치열한 삶도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의 차이이고, 나 또한 궁극적으로 행복해지려고 지금 이 시간을 준비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스스로에게 괜찮아, 잘 하고 있어. 하고 다독이며 마음에 여유를 주기로 했다.





나가려고만 하면 집 안에서의 시간이 소중해진다.



2017년 6월 15일. 사실은 며칠 전부터 짐을 싸야 된다는 핑계로 내 방, 큰 방, 그리고 거실에 온갖 내 짐을 뿌리고 다녔다. 떠나기 전 날까지도 옷이 정리가 안 돼있으니 내 정신도 시끄러울 수밖에. 사방팔방 뿌리고 다닌 옷들을 다시 큰 배낭가방에 구겨 넣었더니 돌덩이처럼 우스꽝스러워졌다. 보조가방에는 노트북과 카메라 등 전자기기를 꾸역꾸역 담아 넣으니 돌덩이 2가 됐다. 거실 앞에 놓인 돌덩이 1에 가족들이 붙여둔 메모 3장. 하트를 그려 넣고도 뭔가 부족해 보였는지 손 끝으로 공중에서 몇 번의 연습 끝에 화살표로 마무리하던 아빠의 모습을 봤다. 평상시에도 애정 표현을 잘 하는 분이시지만 처음 보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부끄럽고 수줍어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는 그 표정을. 엄마는 기차역까지 따라와서 한다는 말은 남자 조심이었고, 수정이는 가기 일주일 전부터 시도 때도 없이 울더니 가는 날까지 울었다. 부모님만큼 소중한 할아버지 할머니는 청각장애인이시다. 할머니는 일 년 뒤에 돌아온다고 했더니 밥은 어디서 먹고 똥은 어디서 싸고 잠은 어디서 자냐며 그건 아니라고 손을 흔드셨다. 가기 전날은 내 방에 오시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눈 밑에서 턱까지 쓸어내리는 손짓을 하며 나를 바라보셨다. 눈물이다. 침묵 속의 진심은 무겁고 선명했다.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배낭가방에 덜렁덜렁 달려있던 모든 줄을 탄탄하게 조여주셨다. 공항에 도착해 목베개를 빼내려 했지만 탄탄히 묶인 끈을 결국 풀지 못했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함께 묶인 것 같아 그대로 비행기에 올랐다.







또 다른 나와 대면하는 값진 시간들



참 부지런히 열심히도 달려왔다. 안정적이고 결혼할 나이에 백수가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다르겠지만, 많은 것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이제 돈 보다 시간이 많아졌고 모은다고 모아둔 이 돈으로 사치를 부린다면 시간을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 꿈은 삼키는 게 아니라 뱉는 거라고 했던가. 탈도 많고 가득 삼키고 있던 꿈을 이제 토해내 본다.



9년 3개월의 끝.

gy의 끝에서 내가 나에게 대답한다.

잘했어, 그리고 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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