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권태기
2017.11.28
요란스레 돌고 돌아 104일을 흘러 지금은 스페인에 고여있다.
여행하면서 무서운? 생각이 딱 하나 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국 음식이 그리워도, 못 씻고 못 먹어도 절대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입 밖으로 태어나는 순간 그 말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우리가 여행 권태기가 오기 시작했다.
퇴사 후 여행을 떠나면서 당돌한 생각을 했었다. 돈 보다 시간이 많아졌고 그 돈으로 사치를 부린다면 그 시간을 사는 삶을 살겠다 떵떵거렸다. 막상 유럽 여행을 하다 보니 정말 시간을 돈으로 사야 되는 일이 허다했다.
남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오기 전 우리는 포기할까 돌아갈까를 처음 생각해봤다. 여행의 큰 제목은 변수라는 걸 알면서도 막상 생각했던 계획이 무너지니 멘탈은 기다렸다는 듯이 함께 짓이겨졌다. 다음날 씻으면서 아니. 때를 아주 빡빡 밀고 있자니 우습게도 생각이 조금씩 정리가 되면서 내가 포기하기 전에, 돌아가기 전에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떠나왔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잊고 있었다. 그 간절함을.
유럽을 함께 했던 차는 조기 반납 신청을 했다. 남은 기간 환불은 불가하다는 메일을 받았지만 절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겨운 유럽 여행을 끝내고 싶었거든. 곧바로 남미 에콰도르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생각보다 일찍 당겨진 일정에 준비된 건 없다. (돈이랑 멘탈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더 이상 고여 썩은 물이 될 순 없기에 우리는 다시 흐르기로 했다. 좁은 강을, 넓은 바다를 돌고 돌아 깨지고 흩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하며. 햇빛 좋은 날 강렬히 반짝일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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