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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다 Sep 28. 2020

먼저 재밌도록 하겠습니다

클래스를 들으라는 이유, 별 거는 아닌데요

친구와 팬워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는 팬아트를 그리고, 저는 팬픽을 썼습니다. 팬아트, 팬픽... 팬심 쩌는 이 활동, 요즘도 하시는 분들 있지요? 혹은 그런 지인이 입에 침이 튀도록 이야기할 때 '그게 뭔데 씹덕아'하는 마음으로 여기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팬픽이나 팬아트를 만들 때 사람이 어떤 심경 변화를 겪는지 아시나요? 옛 성인 못지않은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세상에는 사랑하는 대상과 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어떤 번뇌도, 고통도 없습니다...


자칫하면 사이비 종교처럼 들리겠군요. 어쨌든, 세상에서 가장 이타적인 창작자는 팬심으로 펜대를 돌리는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창작자는 현재를 잊고 행복감에 젖어 살 수 있습니다.


이들은 왜 이러는 걸까요? 돈도 안 되고, 스펙이 되지도 않는 작업이 왜 그렇게 몸살 나게 즐거웠던 걸까요?


김영하 작가는 TED 강연에서 이러한 활동을 예술이라 칭하며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술과 약물의 도움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거 해서 뭐 할래?'라는 질문에 '재밌을래.'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죠.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겁니다. 어차피 사라질 모래성을 공을 들여 쌓고, 계약이 만기 되면 나가야 할 집의 벽에 그림을 그리고, 누가 보지도 않는데 춤을 추던 시절. 그 어린 시절의 즐거움이 짜릿한 경험으로 남아계신 분들 많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은 학교에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사그라들지요. 먼 과거의 아련한 추억, 혹은 쓸모없는 과거로 남게 됩니다. 그런데, 그래서, 그만큼 행복해졌나요? 사는 재미, 아직 있나요?


저는 수많은 크리에이터를 만나 클래스를 만드는 프로듀서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사는 재미를 되찾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여러분께 그 방법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온라인 클래스 서비스에 접속하세요. "예끼 이놈! 광고 본색을 드러냈구나!" 싶다면 조금만 참아 주세요. 어떤 서비스여도 상관 없고, 지갑을 열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로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수많은 클래스 가운데, 사진만 보고도 마음 가는 것을 클릭해 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골라야 한다 생각하지 마세요. 마음 가는 대로 두세요. 그럴 수 있을 만큼 현재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취미 클래스가 생겼거든요.


이제 클래스에서 무료로 공개된 콘텐츠 중에 준비물 소개를 보세요. 어떤 클래스든지 준비물은 무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준비해보세요. 단, 소개 그대로 사지 않아도 됩니다.


예를 들어 그림을 그려볼까요? 스케치북:우리에겐 차고 넘치는 A4용지가 있습니다. 연필:4B든 6B든 HB가 최고입니다. 색종이:포스트잇, 마카:싸인펜... 아, 성에 안 차는 표정을 보아하니 장비병이 있으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그래요. 그냥 화방에 가서 훨씬 더 좋은 재료를 사셔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사는 재미는 ‘사는 재미’이기도 하잖아요.


이제 빈 종이를 자유롭게 채워보세요.


예,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모를 때의 '자유롭게'는 전혀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지요. 그렇다면 전혀 자유롭지 않을 때는 어떨까요? 개인적으로는 회의 시간에 보고서 귀퉁이에 그리는 낙서가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끄적이는 글귀, 샤워하며 흥얼거리는 노래, 잠들기 직전 휘갈긴 그림이 참 재밌습니다. 그 무엇이 되었든, 재밌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조금 먼저 재밌는 중입니다. 돈은 조금 더 썼는데요. 실버 주얼리 클래스를 신청하고 집 안에서 망치질을 시작했습니다. 층간소음이 적은 고무망치라서 다행입니다. 생각보다 쉬워서 시시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새벽이었습니다. 아려오는 손가락 마디만이 지나간 시간의 증거였네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안 사셔도 돼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먼저 재밌기만 하면 됩니다. 먼저 행복해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다 문득 외로울 때, 함께할 사람이 필요할 때, 그때 클래스를 찾아주셔도 전혀 늦지 않습니다. 예, 이번엔 본색을 드러낸 거 맞습니다. 나 행복하게 해주려고 누군가가 가르쳐주고, 행복을 나누려고 누군가가 함께 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행복해지고 싶을 때 찾아와주세요.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에도 대체 자본주의 시대에 돈이 안 되는 게 무슨 소용이냐? 그런 실용적인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할게요. 자본의 도움 없이도 하루를 재밌게 살게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큰 가치입니다. 다르게 말해 술 마시는 것보다 돈을 아낄 수 있죠. 그 가치를 소개하기 위해 굳이 트와일라잇의 팬픽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던 사례 같은 것까지 가져오지는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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