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대해서

애아빠가 되어 맞이한 비상계엄과 재난문자

by 명하

아이를 키우는 것이 패널티는 아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나 하나만 챙기면 되던 때와는 분명히 달라졌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아 있을 그날 밤. 그때는 우리가 한창 준이를 주차장에서 재우던 시기였다.


두 돌이 되었지만 여전히 준이는 홀로 잠이 드는 법을 몰랐다. 잠을 자도록 교육할 나이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잠이 드는 루틴을 만들어야 했다. 이 방법 저 방법 쓰던 끝에 찾은 루틴 하나가 바로 아이를 업고 주차장을 도는 것이었다.


집과는 공기가 달랐고, 꽤 넓은 공간을 이리저리 걸어다닐 수 있으니 제자리에서 둥가둥가 흔들어주는 것보다도 훨씬 좋아했다. 그래서 그날도 아이를 업고 30분쯤 주차장을 돌고 있었다.


그런 밤중에 뉴스 속보가 뜨고, 비상계엄 같은 단어를 보면, 그 서늘한 날씨에도 등줄기에 땀이 날 수밖에 없다.


문득 돌아본 고요한 주차장은 오히려 오싹했다. 아무도 없는 적막이 곧 내가 아이로부터 막아야 할 세상의 공기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는 신변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출근한 사람이 오늘 출근할 때 아무 지장이 없었다더라도, 냉장고의 음식이 그대로 있고 통장 잔고가 홀로 사라지지 않았다더라도, 순간의 불안이 그렇게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아이를 재우고도 밤새 뜬 눈으로 모든 과정을 엿보았다. 유튜브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날 밤의 일은 다행히도 해제로 끝났지만, 내게는 더 이전의 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직 이유식으로 완전히 전환하지 못했던 무렵이었다. 나는 이유식을 젓고, 아내는 젖병을 물려주던 때다. 그러니까 조금 더 과거의 일이다. 밤잠이 통잠이 되기엔 아직 부족해서, 우리는 새벽마다 눈을 비비며 이른 아침을 준비하곤 했다.


그때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고요한 아침 공기를 찢는 사이렌은 낯설고 이상했다. 창밖으로는 평온한 햇살만 비치는데, 귀로는 사이렌이 들리는 경험, 아주 불길했다. 너무나 먼 곳에서 나는 듯 울리는 안내방송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경고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재난문자가 울렸다. 당신도 기억하고 있을 바로 그 문자였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대피라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유아는?)

그때 젖병을 물리고 있는 아내와 그 품 안의 준이를 보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어떡하지?’와 비슷한 어감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이 먹을 도구는 어디까지 챙겨야 할까, 이유식은 어떻게 보관하면 좋지, 산소는 또 어떻게?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조금 늦게야 TV를 켰다. 이 일련의 과정이 해프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의 20여 분간, 불안한 마음으로 속보를 지켜봤다.




나는 나고 자란 나라로서 우리나라를 좋아하지만, 가끔씩 불안하다. 그건 앞서 했던 말처럼 이제는 나 자신만 챙기면 되는 시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가족을 잘 지킬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마음 한 켠에 자리해 있다. 동시에 그 의문에 불안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믿음이 있다. ‘그래도 사회가 우리를 지탱해 줄 거야.’


그런데 가끔은 이 믿음이 흔들린다.

뭔가 이유나 근거가 있어서 흔들리면 모르겠는데, 그 원인이 어떠한 결정이나 결심에 있었다 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작게 보면 서운함이기도 하고, 크게 보면 배신감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때면 우리 같은 초보 부모를, 어딘가 홀로 계실 노인을, 가족을 지켜야 할 소년소녀 가장을 상상해본다.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정치 담론과 인터넷, 유튜브나 뉴스에서 한번 흔든 깃털 하나가 주류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떨어질 때. 그곳에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소식이 아니라 큰 불안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일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소한 일로 지나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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