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감기의 두려움
새벽에 준이가 울면서 깼다. 깨서 우는 일은 흔하기 때문에 안아서 달래 주면 곧 다시 잔다. 악몽을 꿨거나 뭔가에 놀랐을 때가 주로 이렇다. 그런데 이따금씩 안아 보면 깜짝 놀랄 만큼 따끈따끈할 때가 있다. 그러면 불길한 마음을 다잡고 체온을 잰다. 38.8도. 그러면 막 깨서 눈도 반만 뜨고 아이를 달래던 우리도 잠이 싹 달아난다. 또 올게 왔구나.
아이가 열이 나는 건 자주 돌아오는 연말정산 같다. 어딘가 다녀오면서 즐거웠던 날들. 재밌는 것을 보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거나 꺄르륵 웃는 아이들을 보면서 함께 누렸던 순간들. 그 사이사이에 잊고 있었던 위생과, 보이지 않아 간과했던 감염의 상황들을 피하지 못한 값을 조금 늦게 치르는 시기다. 아찔한 마음에 눈을 꾹 감는다. 해가 뜨면 아이를 들춰안고 병원에 다녀와야지. 어린이집과 재활센터는 쉰다고 얘기해야겠다. 이렇게 일어날 일련의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쉽지 않을 하루를 예상한다.
사실 아이가 아픈 건 예삿일이다. 특히나 어린이집도 나가고 재활센터도 나가는 아이라면, 흔히들 감기를 달고 산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나와 아내가 두려워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여전히 약한 기관지 때문이다. 어릴 적 폐렴을 크게 앓은 이후로(이 이야기는 앞서 아직 다 하지 못했다) 늘 기관지는 준이의 약점이었고, 감기는 항상 약점을 공략하는 크리티컬 히트였다. 기관지가 약해서 감기를 잘 받아내지 못하면, 남들보다 열도 많이 오르고 숨도 쉬기 어려워진다.
둘째는 여전히 준이가 말이 통하거나 낫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세 돌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약을 먹일 때마다 묘기를 부린다. 입을 다물고 삼킬 줄 모르기 때문이다. 뒤로 반쯤 눕혀 놓고 볼에 조금씩 약을 흘려 넣는다. 그러면 입 안에 들어온 이물감에 몇 번 캑캑거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한 번씩 꿀꺽한다. 재채기에 약이 튀어나와 우리의 몸이나 뺨을 적실 때도 있지만, 이제는 제법 (우리가) 익숙해져서, 딱 두세 번만 콜록거리다가 자연스럽게 넘어갈 만큼씩 물약을 넣어 준다.
아. 준이가 왜 이런지에 대한 이야기도 앞서 다 하지 못했다.
연장선상으로 물을 먹이기 어렵다는 점도 한몫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소아과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물을 많이 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준이에게 물은 빨대컵을 물리는 것에 성공했을 때 반사적으로 나오는 빨기 반응을 통해 흘러들어 가는 것이다. 마셔야 한다고 설명해서 마실 수 있지를 않는다.
이제는 제법 묵직해진 아이가 아직 혼자 앉거나 설 수 없기 때문에, 병원에 갈 때는 우는 아이를 계속 안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짚어둬야 한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왜 우리에게는 이렇게 멀까.
사실 앞서 준이의 상태에 대해 어떤 식으로 글을 풀어야 할지 여러 방법으로 고민하고 글을 써 보면서 큰 어려움을 느꼈다. 상식이라 여겨질 만큼 당연한 것에 대해, 그렇지 않은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내가 가늠했던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위 말하는 빌드업을 위해 여러 편을 할애했으면서도 아직 본론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본론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것도 참 곤란하다. 간단하게 보면 증상의 이름을 밝히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나열하면 끝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글을 나는 가지고 있다. 서울대에서 밝혀낸 아이의 유전 질환에 대한 서머리가 그것이다. 그 글을 보면 나조차도 차가운 심장으로 읽게 된다. 마치 아주 먼발치에서 일어나는 산불을 보는 느낌이다.
실제로 친구들에게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한계를 느낀다. 어쨌든 이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정보나 일화가 너무 많고, 그것을 전해 들었다고 해서 나와 아내가 느끼는 감정을 동일하게 느끼길 타인에게서 기대하는 것도 무리니까. 최소한 똑같이 아이를 키워본 입장은 되어야 그나마 우리 상황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도 준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의 이야기에 대해 귀 기울여 본 적이 없으니까.
게다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이런 희귀 질환이 있대요, 참 힘들죠? 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글의 주요 독자는 결국 아내다. 그리고 아내는 또 다른 증후군 아이를 키운 부모들의 일기나 영상을 보면서 힘을 많이 얻었다. 이 글도 누군가에겐 그런 역할이길 기대한다.
해열제를 먹여서 재웠는데, 아침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준이가 가래 낀 숨을 쉬는 것이다.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간신히 아침잠 한번 더 든 준이의 옆에 복잡한 심경으로 누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깜짝 놀라듯 깨더니, 허공을 쳐다보면서 손을 떨었다. 내가 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하고, 일정한 속도로 손을 꿈틀거렸다.
진짜 올 게 왔구나. 그건 모르는 내가 봐도 경기 같았다. 왜 올게 왔다고 하는지, 이런, 그 이야기도 앞서 다 하지 못했다.
언젠가 경기가 일어난다면 억지로 깨우지 말고 영상을 찍어둬야 한다고 세뇌가 될 정도로 외워 두었다. 다행히 잊지 않고 영상을 찍어둔 덕에, 준이의 증상을 의사 선생님에게 다시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다시 살펴보았는데 1분 남짓 지나가는 작은 발작 같은 것이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훨씬 긴 시간 동안 일어난 지진 같은 사건이었는데… 이래서 여러 수단으로 기록해둬야 하는 법이다.
의사 선생님은 경기가 맞는 것 같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길 권했고, 내게 의뢰서까지 쥐어주었다. 권장인 줄 알았는데 의뢰서까지 받으니 필수적인 일로 느껴졌다. 여기서 큰 병원은 준이의 유전질환을 팔로업하고 있는 서울대병원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오늘이라도 바로 가보라고 했지만, 그렇게 당장 갈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아무리 빨리 잡아도 주말이었기 때문에 일단 그렇게 예약을 잡았다.
이제 커다란 걱정거리가 세 가지로 불어났다. 첫째는 발열이고, 둘째는 발열로 인한 경기이며, 셋째는 애석하게도 함께 찾아온 목감기다. 설상가상으로 RSV가 유행이다. 이런 감기 바이러스가 유행이 아니라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RSV는 기관지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5세 미만 소아에게는 폐렴을 일으킬 수 있는 흔한 원인이다. 준이의 첫 입원이 이것 때문이었다.
네뷸라이저(호흡기 치료 장치)를 쓰는데, 그 시절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첫 폐렴을 워낙 오랫동안 앓았기 때문에 집에 네뷸라이저를 가지고 있었다. 더이상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깊이 넣어 두었다. 버리지 않은 건 어쩌면 이런 날이 또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긴 했다. 정말 오는 것은 바라지 않았지만 말이다.
네뷸라이저는 마치 산소마스크처럼 생긴 기구를 얼굴에 대고, 치료제를 분무하는 방식이다. 소리도 크고, 숨을 쉴 때 느낌도 달라지기 때문에 준이가 기겁을 한다. 그래도 네뷸라이저를 써 주면 잠깐은 숨을 고르게 쉴 수 있게 된다.
대신 얼굴에 뭐든 가까이 오는 것에 대해 울며불며 거부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닦아주는 손수건이든, 물을 마시기 위한 빨대컵이든 말이다. 안 그래도 물 먹이기 어려운데, 물을 먹일 수단마저 봉인되어 버렸다.
잊으면 안 된다. 발열로 인한 경기를 막기 위해 37.5도만 넘어가도 바로바로 해열제를 먹여야 한다. 해열제는 어떻게 먹이겠는가? 입으로 먹인다. 즉, 약병을 얼굴에 가까이 가져가야 한다. 제길! 보통 울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니다. 10킬로 넘어가는 생선만 낚아도, 파닥이면 들어 옮기기 어렵다. 준이는 걷지 못해도, 생선보다는 힘이 세다.
그 안에선 영원 같은데, 밖에서 보면 우레처럼 빠르게 느껴지는 일주일이 지나갔다. 다음으로는 나와 아내가 기침을 할 차례였다.
나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전에는 글쓰기를 꽤 오래 배우고 연마했다. 그러던 끝에 내린 결론이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기에는 내 부족함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쓰기는 더 잘하고 싶고 계속해서 하고 싶은 유일무이한 활동이다. 오랫동안 짝사랑하는 중이다.
하지만 쓰는 방식과 실력은 그대로인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다. 요즘은 뼈저리가 느끼고 있다. 언제든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던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던가! 원할 때 가능한 만큼 시작하고 끝맺을 수 있으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부족하다고 생각할 시간에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로움이 얼마나 기꺼운 것인지 반추해 보라고 하고 싶다.
여기까지, 주간 연재라고 등록해 놓고 매주 찾아오지 못한 일화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