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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다 Sep 10. 2015

밥 먹자

"밥 먹자"는 말이 독특하게 들리기 시작한 날을 기억한다.


<다이하드 4.0>을 영화관에서 볼 때였다. 영화 초입에 맥클레인을 연기한 브루스 윌리스가 이런 대사를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다.


"영웅이 뭐가 좋아. 밥도 혼자 먹어야 돼."


여기서 "밥도 혼자 먹어야 돼" 라는 대사에 마음 한켠이 찌르르해졌던 것이다.

아마도 그때 즈음이 "밥 먹자"는 말의 뉘앙스가 달라졌던 때가 아니었을까?

사회적으로도 그 말을 다르게 쓰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원문이 무엇인지, 번역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런 변화를 세심하게 적용시켰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생명체가 살아가려면 당연히 섭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도 무수히 많은 식사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밥 먹자"는 다음과 같은 말들과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식사하셨어요?"

"밥을 꼭꼭 씹어 먹어요."

"끼니 거르는 게 일상이었지."

"밥 무라."


신사가 냅킨을 두르고 덜 익은 고기에 칼질을 하는 식의 '식사'와는 다른 것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다.

'밥'이라는 단어에서 외로움이 느껴지기 시작한 거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니까

예전에 유행했던 개그 프로의 "밥 먹자."는 말은 "외롭지만 어쩔 수 있나. 걍 살아나 보자." 같은 거고

인상적으로 봤던 한국 영화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대사는 "그딴 식으로 살아서 졸라 외롭지 않았냐?" 같은 거로 들렸던 것이다.





대학교 신입생일 적에 나는 자주 식사를 걸렀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라고 말은 했지만, 실은 같이 식사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붙임성이 없고 수줍음을 많이 탔으니까.


하루는 오전 강의가 끝나고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갈 때,

한 동기가 지나가듯이 내게 말했다.


(손으로 밥을 떠먹는 시늉을 하며) "밥 먹자."


나는 순간 벙쪄서 대답하지 못했는데, 천만 다행이었다.

내게 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 오늘은 또 뭐 먹지?" 하며 다른 동기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학교 앞에 왕돈가스집이 괜찮다고 들었는데. 거기 참 괜찮다던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하드 4.0>이 끝나자 그녀가 내게 말했다.

아, 나와 함께 영화를 봤던 그녀 말이다. 얘기 안 했던가?


"밥 먹자."


나는 괜히 울컥하는 것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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