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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다 Sep 11. 2015

기록강박증

메모를 우리 말로 뭐라고 할까? 기록?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중요한 클라이언트와 만난 자리다. 대화 내용을 정확히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말한다. "기록해두겠습니다." 굉장히 딱딱하지 않은가?

수첩을 꺼낸다면 가죽 양장의 형사 수첩 같은 것이어야 할 것 같고, 노트북을 꺼내 자판을 두드리거나 녹음기를 꺼내 녹취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말이다.

적어야 할 것을 적어둔다는 것은 기록이지만, 메모는 메모일 뿐이다.

메모는 그 어떤 말로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니까 아까 내가 들었던 말은 오해다.


"재근 씨는 기록강박증인 것 같아요."


기록강박증이 뭐냐, 기록강박증이?

정도로 치자면 나는 애호가일 뿐이지 강박증에 시달리는 중독자는 아니다.

게다가 기록이 아니라 메모다.

나는 그저 내가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잊고 싶지 않아서 빽빽히 메모해 두는 사람일 뿐이다.

메모와 기록도 구별 못하고, 강박증으로 몰아가기 좋아하는 그녀 때문에 나는 무척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나에 대해서 관심도 없던 직장 동료들이 그녀의 말을 듣고 나를 다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 것이다.


"암, 뭔가 잊고 있는 게 있을 땐 재근 씨에게 묻는 게 상책이지."


"재근 씨 앞에서는 함부로 말 하면 안 돼. 고소라도 당하면 어떡해?"


"세상 참 철저하게 사는 친구야!"


나는 샐쭉 웃고 말았다. 대꾸를 안 하는 게 낫지.


'대꾸를 안 하는 게 낫다.' 라고 메모해 두었다.

7월 22일의 일이었다. 무진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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