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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다 Sep 14. 2015

공주를 처음 만난 날

마리오의 후일담 1


창고지기는 날개가 돋는 상상을 했다.


창고엔 항상 팔리지 않은 셰리프 재고가 가득했다.

천장에 닿을 만큼 높게 쌓인 상자들은 고지식한 보안관처럼 항상 그를 내려다보듯 기울어 있었다.



상상 속에서 창고지기는 벽을 차고 단숨에 꼭대기까지 도약한다.

꼭대기에서 서까래에 ‘X월 X일 정상 정복’ 따위 낙서를 여유롭게 쓰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다른 재고를 찾으려 복도를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꼭대기의 상자를 꺼내려 근처의 모든 재고를 퍼즐 맞추듯 움직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참 소박한 꿈이다.





이따금씩 셰리프들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할 일은 우리를 어서 B창고로 옮기는 거야.

맞아, 우리는 잘 만들어졌지만 결국 안 팔렸으니까.

맞아, 우리는 결국 흥행하지 못했으니까.

맞아, 우리는 실패했으니까.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한 줄만 알았던 셰리프들은 의외로 자격지심에 빠져 있었다.

셰리프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어야 하는 창고지기도 점점 그들을 닮아갔다. 





창고지기는 산더미같은 재고 상자의 틈에 양손을 넣었다.

단숨에 열한 개의 상자를 들어올렸다. 머리 위로 5미터는 훌쩍 넘을 상자의 탑이 휘청거렸다.

창고지기는 능숙하게 균형을 잡아 복도를 걸었다. 출입구까지 세 번의 모퉁이를 돌았다. 뛰어넘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때 창고지기는 금발의 백인 여성을 발견했다.

일반인이 창고 근처에 나타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심지어 서양인이었다.


창고지기는 존 귈러민 감독의 <킹콩>을 본 적이 있다.

미개 문명의 신이었던 거대한 고릴라가 우연히 섬에 들어선 여성에게 반해서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었다.

킹콩에 나왔던 여자가 꼭 저런 금발을 가진 백인 여성이었다.


창고지기는 그녀에게 한눈을 팔다가 결국 발이 꼬이고 말았다.

재고 상자의 탑이 위태롭게 기울더니 쓰러졌다.

공교롭게도 그 아름다운 여성을 덮칠 뻔 했지만, 다행히도 백인 여자의 곁에 있던 사람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박스와 함께 쓰러졌던 창고지기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백인 여자는 무사했다.

백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은 제작부장이었다.

창고지기는 그녀만 보느라 몰랐지만, 둘은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런데 단순한 방해도 아니고 위해를 가한 것이다.


백인 여자는 창고지기에게 다가왔다.

또각또각, 구두소리마저도 그녀의 도도한 아름다움을 더했다.

짝!

뺨을 맞은 창고지기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화도 나지 않은 표정으로 태연스럽게 손을 털었다. 그리고 몸을 홱 돌려 부장에게 돌아갔다. 


그것이 *마리오와 피치 공주의 첫 만남이었다.





* 마리오 : (명칭) Mario. Nintendo社의 마스코트, 라고 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마스코트가 사람이 아닌 이상 그런 일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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