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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다 Sep 15. 2015

점프맨,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오다!

마리오의 후일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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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가상현실이 구현된 바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3D 입체영화나 직관적인 체험형 장비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면서 먼 일이 아닌 듯 보이는 현재이지만 그 실체는 단순한 흉내의 메커니즘 다름 아니다.

그러나 개발자들이 개발 방향을 ‘구현’이 아닌 ‘재현’으로 잡은 이유가 잇다.

이미  오래전에 개발되어 시연된 적 있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고지기의 인생이 송두리째 변화한 1980년대의 일이다. 





셰리프를 통해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겪은 *임천당 사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임천당의 미국지부는 일본 본사의 실패 사례를 면밀히 검토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동키콩이었다.

거대 고릴라가 납치한 여성을 구출하기 위해 한 남자가 분연히 나선 작품이었다.



그의 이름은 점프맨이었다. 이름처럼 점프를 잘 하는 남자였다.

당시 그의 경쟁자들은 모두 바보처럼 2방향, 혹은 4방향으로 걸을 줄밖에 몰랐다. 그러니 점프를 할 줄 아는 그는 강했다.


고작 8비트에 불과한 장비였지만 수많은 변수를 안았다는 면에서 인기를 끌었다.

점프맨은 점프를 할 수 있었고, 납치된 여자는 간절한 모습으로 구출을 기다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한 기계의 한계를 뛰어넘어 실제 사람이 안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8비트의 모습으로 각인되겠지만, 한층 현실적인 세계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동키콩의 성공으로 유명해진 점프맨은 후속작을 위해 본사가 있는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일본은 일약 비디오게임의 본고장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이제 완전히 유명인사로구나!” 점프맨은 자축하는 기념으로 동생과 함께 전날 술을 마셨다.

결국 과음의 영향으로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하다가 출국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시간 약속에 엄격한 일본인들은 그 사태를 용납하지 않았다.

상황은 점입가경으로, 마침내 점프맨을 대신할 뉴페이스를 찾는데 이르렀다.





창고지기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가 부숴먹은 재고들을 변상하려면 그의 세 달 치 월급이 고스란히 날아갈 지경이었다. 게다가 생전 처음 본 여자에게 뺨을 맞은 것까지 치면……. 


그때 제작부장이 창고지기를 찾아왔다.

일개 창고지기에게 부장이 찾아올 일은 없었다.


창고지기가 제작부장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었냐 하면, 사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얼굴도 본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상자를 무너뜨려 금발 여성이 다칠 뻔했던 일 말이다.

그때 부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그냥 넘어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창고지기를 찾아온 부장은 그때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이 만화 속 악당 같아서 창고지기는 흠칫 놀랐다.

부장은 창고지기가 입구에서 종이를 붙들고 이것저것 계산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어떻게 할 거야!”

“물어낼게요……. 어떻게든.” 


워낙 박봉이었기 때문에 모아둔 돈은 별로 없었지만 적금을 깨서 변상을 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장은 노골적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너 정도가 갚을 수는 있겠어?” 


창고지기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자 부장은 입맛을 다셨다.

부장은 창고지기의 앞에 쪼그려 앉아 그의 얼굴 구석구석을 뜯어보았다. 


“수염도 꽤 근사하고. 생전 화 한 번 안내 봤을 눈이네. 좀 순수하지만, 뭐 괜찮겠지. 살도 토실토실하고. 이봐, 혹시 모자도 쓰나?”


갑작스런 질문에 창고지기는 버벅였다.


“예, 예. 모자라면 간혹 쓰기도 합니다만…….”

“좋아. 그럼 이걸.” 


부장은 취향 고약해 보이는 빨간색 모자를 창고지기의 머리에 씌웠다.

모자를 쓴 창고지기가 기대보다 훨씬 괜찮아 보인다며 부장은 기뻐했다.

다짜고짜 창고지기를 이끌고 창고를 나섰다. 





창고지기는 경악했다.


부장을 따라서 간 곳은 다름 아닌 본사 건물이었다. 직장을 구하고 처음으로 본사에 발을 디딘 것이다.

참고로 면접은 창고 옆에 딸린 작은 사무실에서 보았었다. 그런데 본사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누추했다.

용기 있게 뛰어든 시장에서 큰 실패를 했다더니, 창고 좁은 줄 모르고 하염없이 쌓이던 재고들이 괜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 다 낡아빠진 건물의 한 구석에 녹색의 토관이 있었다.

보통은 녹색이 아닌데다 만든지 얼마 안 되었는지 새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단연 눈에 띄었다.

부장은 창고지기에게 손짓을 하더니 토관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창고지기는 주저하며 그 뒤를 따라갔다. 


조금 독특하게 보일 뿐인 토관 안에는 놀랍게도 버섯왕국이 있었다.

들이 있었고 산이 있었다. 하늘에는 조각구름 흐르고 있고 공기는 달콤했다.

창고지기는 문 안에 들어서서 주위를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뒤따라 들어온 부장이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대역 데려왔다!” 


순식간에 몇 명의 무리가 부장과 창고지기의 곁으로 다가왔다.

동산 뒤에서 나타난 사람이 순식간에 다가온 것은 약과고, 땅굴 속에서 튀어나오거나 심지어 구름을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각종 해괴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철야를 했는지 꾀죄죄해 보였다. 그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이야, 닮긴 닮았는데?”

“닮았다고? 그는 버섯왕국의 영웅이라고! 아무나 주워와서 쓸 수는 없어.” 


거북이 복장을 한 사람이 악을 썼다. 부장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어떡할 건데? 우리 회사에서 수염 기른 사람은 당장 이 사람밖에 없어.”

“하지만 어떻게 봐도 다르잖아요. 금방 알아보면 어떡해요?”

“아예 새로운 사람이면 어때? 점프맨,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오다! 그런 느낌으로.” 


거북이 창고지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물었다. 


“그럼 이름부터 바꾸어야겠네. 이름이 뭐예요?”

“아, 전.”

“마리오다. 창고에선 그렇게 통하는 모양이던데.”

“마리오?”

“그, 그 이름은.” 


그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창고지기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의 본명은 따로 있었지만, 다소 여성스러운 이름이었다.

면접 당시 그의 이력서를 본 상사는 간단하게 그의 성과 이름에서 한두 글자씩을 따서 이국적인 별명을 지어 주었다. 


“무슨 이름이 그래요?”

“알고 보니 교포라든지?”

“몰라, 뭐. 나쁘지 않잖아? 어차피 수출할 거니까.”


창고지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부장이 말을 잘랐다.


“자네는 이제 여기로 출근하면 돼. 그럼 변상 건은 잊어주지.”

“예?”

“좋아! 준비는 다 되어 있으니까 먼지 한 번 날려 보라고.”

“……예?”





* 임천당 : (명칭) 任天堂(Nintendo)는 본래 마작 등의 오락용구를 개발, 판매하던 회사로, ‘하늘에 운을 맡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성공은 마리오의 성공처럼 큰 행운이 없었더라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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