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아직 공중에 있는 동안

NFL해설위원이 생각하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제목을 제대로 읽는 법

by NFL잡학사전

어떤 작품의 제목은 뜻을 알기 전에 먼저 분위기로 다가온다.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그렇다. 처음 들으면 기도문 같고, 종교적 비유 같고, 어딘지 비장한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 ‘Hail Mary’는 가톨릭의 성모송을 가리키는 말이다. 메리엄-웹스터도 이 표현의 첫 뜻을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로마 가톨릭 기도”로 두고 있다. 그런데 같은 사전은 곧바로 두 번째 뜻을 덧붙인다. “경기 종료 직전, 점수를 만들기 위해 엔드존 쪽으로 던지는 마지막 장거리 패스”. 그리고 이 말은 이제 미식축구를 넘어, 실패 가능성이 큰 마지막 승부수 전체를 가리키는 비유로도 널리 쓰인다. 즉 헤일 메리는 신앙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미국 대중문화의 생생한 관용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제목은 바로 그 두 갈래의 의미를 한꺼번에 품고 있다.


이 점을 모르고 제목을 읽으면 작품의 결이 조금 달라진다. 막연히 “신에게 기대는 마지막 기도” 정도로만 받아들이기 쉽다. 물론 그 감각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미식축구라는 더 구체적이고 더 세속적인 문맥이 들어 있다. 그것은 초월적 구원을 기다리는 태도라기보다, 시간이 거의 다 끝난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한 번 더 던져보는 태도에 가깝다. 헤일 메리는 경건한 단어이기 전에, 패배 직전의 인간이 택하는 가장 현실적인 무모함의 이름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말이 미국에서 어떻게 퍼졌고 무엇을 뜻하게 되었는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헤일 메리의 출발점은 물론 성당이다. 이 말은 중세 라틴어 Ave, Maria의 영어 번역에서 왔고, 영어권에서의 첫 용례는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뜻은 기도다. 도움을 청하고 중재를 구하는 말. 이 바탕 때문에 헤일 메리에는 처음부터 절박함의 정서가 들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스포츠의 언어로 옮겨 붙은 과정은 매우 미국적이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미식축구 기원담은 1922년 노터데임과 조지아텍 경기다. 당시 노터데임 가드 노블 카이저는 허들 안에서 동료들에게 “헤일 메리를 하자”라고 말했고, 곧바로 팀은 중요한 터치다운을 만들었다. 그 뒤 이 표현은 사라지지 않았다. 1935년 노터데임 감독 엘머 레이든은 종료 32초 전 나온 결승 패스를 “Hail Mary play”라고 불렀고, 1941년에는 신문 기사에 이미 “기도와 함께 던지는 패스”라는 뜻의 “Hail Mary pass”가 등장한다. 다시 말해 이 용어는 1970년대에 갑자기 생겨난 말이 아니라, 가톨릭 문화와 대학 미식축구의 접점에서 수십 년 동안 자라난 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표현이 곧장 미국 전체의 일상어가 된 것은 아니었다. 오래 살아남았지만, 한동안은 주로 미식축구 안에서 통하는 말에 가까웠다. 그것이 전국구의 말이 되는 데에는 ‘단 하나의 장면’이 필요했다. 1975년 12월 28일, 달라스 카우보이스와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NFC 플레이오프 경기. 달라스는 14대 10으로 뒤지고 있었고, 시간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약 30초 남짓, 타임아웃이 없는 상태였다. 50야드 라인에서 스냅 시작. 로저 스타우백은 필드 중앙 근처에서 스냅 된 공을 받고, 드류 피어슨에게 길게 던졌다. 피어슨은 경합 끝에 그 공을 잡아 그대로 결승 터치다운을 만들었다. 경기 뒤 스타우백은 자신이 거의 눈을 감고 헤일 메리를 읊는 심정으로 던졌다고 말했고, 그 한마디가 다음 날 신문과 방송을 타고 번지면서 ‘헤일 메리’는 미국 스포츠 어휘의 중심에 들어갔다. 이 표현은 그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날 대중화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 장면이 결정적이었던 이유는 단지 극적이어서만은 아니다. 스타우백의 말에는 헤일 메리라는 표현의 핵심이 모두 들어 있었다. 계산은 했지만 확신은 없고, 방법은 하나뿐이며, 성공 가능성은 낮고, 그래도 던져야만 하는 순간. “last-ditch attempt”, 즉 마지막 필사적인 발악 혹은 마지막 승부수라는 성격이 이 한 장면에 압축돼 있었다. 이후 헤일 메리는 미식축구 전술 용어를 넘어 정치, 비즈니스, 대중 담론 전체에서 통용되는 비유가 되었다. 어떤 일이든 정상적인 경로로는 답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꺼내는 낮은 확률의 시도. 오늘날 미국인이 이 말을 들을 때 떠올리는 것은 종교적 경건함만이 아니라, 바로 그런 절박한 마지막 장면이다.


그렇다면 미식축구에서 헤일 메리 플레이는 정확히 무엇인가. 가장 간단히 말하면, 경기 종료 직전 점수를 내야 하는 팀이 엔드존 안이나 그 근처로 던지는 초장거리 패스다. 다만 이 정의만으로는 부족하다. 헤일 메리는 그냥 멀리 던지는 패스가 아니다. 시간이 거의 없고, 짧게 끊어가며 전진할 여유도 없고, 보통의 플레이로는 역전이 어려울 때만 호출되는 상황적 플레이다. 그래서 헤일 메리는 정교한 작전 이름이라기보다, 다른 길이 거의 닫힌 뒤에야 겨우 선택되는 마지막 수에 가깝다. 헤일 메리라는 말에는 플레이의 형태만이 아니라, 그 플레이를 콜 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순간의 공기까지 함께 들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작정 하늘로 던지는 공 같지만, 실제로는 꽤 정교하다. 2009년 시즌 시작 이후 NFL에서 집계된 헤일 메리 시도가 193번이며, 그중 터치다운은 16번이었다. 성공률이 10퍼센트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같은 분석에 따르면 헤일 메리 패스는 평균적으로 공이 손에서 떠나기까지 4.75초가 걸린다. 일반적인 패스보다 훨씬 길다. 리시버들이 엔드존에 집결할 시간을 벌어야 하고, 쿼터백은 수비를 피해 발사 지점을 만든 뒤 높은 포물선을 그려 공을 떨궈야 한다. 공은 멀리 가야 하지만, 동시에 너무 멀어서는 안 된다. 끝선 뒤로 넘어가면 무의미하고, 낮으면 수비에게 걸린다. 그래서 헤일 메리는 무모함의 다른 이름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아주 계산적인 플레이다.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준비하고, 그 뒤에야 비로소 운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기억해야 할 첫 번째 헤일 메리는 역시 1975년 스타우백과 피어슨의 헤일 메리 패스다. 이것은 단순한 명장면이 아니라, 언어의 역사를 바꾼 플레이였다. 미식축구 팬이 아니어도 이 장면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헤일 메리라는 말이 어떻게 한 경기의 해설 표현을 넘어 미국식 삶의 비유가 되었는지, 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 플레이 전에도 헤일 메리는 존재했다. 그러나 이 플레이 이후 헤일 메리는 “모두가 아는 말”이 되었다. 단어는 사전에 실리기 전에 사람들의 입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스타우백의 패스는 바로 그 생존의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대학 미식축구의 전설, 1984년의 ‘헤일 플루티’다. 보스턴칼리지는 마이애미에 45대 41로 뒤지고 있었고, 남은 시간은 6초였다. 더그 플루티는 마지막 스냅에서 제라드 펠런에게 길게 공을 띄웠고, 경기는 47대 45로 뒤집혔다. 이 패스는 64야드를 날아가 세 명의 수비수 머리 너머로 떨어졌다. 이 장면이 유난히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헤일 메리가 단지 프로의 상징이 아니라 대학 미식축구의 신화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헤일 메리에는 언제나 계산된 각도와 동시에 설명되지 않는 과잉이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될 리 없는데 된다”는 스포츠의 가장 오래된 문법이 들어 있다는 사실도 이 플레이는 잘 보여준다.


세 번째는 2015년 그린베이 패커스와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경기, 이른바 ‘미라클 인 모타운’이다. 이 장면은 현대 NFL에서 헤일 메리를 설명할 때 교과서처럼 인용된다. 이 플레이는 종료 직전 주어진 언타임드 다운에서 나왔고, 애런 로저스가 리처드 로저스에게 61야드 터치다운을 연결하면서 패커스가 27대 23으로 승리했다. 이 패스는 당시 NFL 역사에서 경기 종료와 함께 승부를 뒤집은 헤일 메리 가운데 가장 긴 패스였다. 중요한 것은 거리만이 아니다. 애런 로저스는 왼쪽으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롤아웃하며 시간을 벌었고, 리시버들이 엔드존 안에서 제 위치를 잡을 시간을 만든 뒤 공을 올렸다. 헤일 메리가 단순한 투척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을 동시에 버는 기술이라는 점을, 이 장면만큼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드물다.


네 번째는 2020년의 ‘헤일 머레이’다.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카일러 머리가 디안드레 홉킨스에게 던진 이 43야드 결승 터치다운은 버펄로 빌스를 상대로 32대 30 승리를 만들었고, NFL Honors에서 그 시즌 클러치 퍼포먼스 플레이 오브 더 이어로 선정됐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름 자체다. Hail Mary가 Murray를 만나 Hail Murray가 된다. 좋은 헤일 메리는 종종 고유명사를 낳는다. 사건이 너무 강렬해서, 원래의 일반명사가 특정 선수의 이름과 결합해 별도의 전설이 되는 것이다. 헤일 메리가 살아 있는 언어라는 사실은 바로 이런 데서 드러난다. 오래된 표현이지만, 매번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다섯 번째는 2024년 제이든 대니얼스의 워싱턴 헤일 메리다. 대니얼스는 시카고 베어스를 상대로 경기 종료와 함께 노아 브라운에게 52야드 결승 터치다운을 연결했다. 베어스가 종료 25초 전 리드를 잡은 직후였기에 더 극적이었다. 이 플레이가 인상적인 이유는, 헤일 메리가 여전히 과거의 낭만이 아니라 현재형의 무기라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리그는 바뀌고 전술은 정교해졌지만, 시간이 바닥났을 때 마지막으로 하늘에 공을 띄우는 장면은 여전히 관중을 숨죽이게 만든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헤일 메리의 감정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공이 떠 있는 몇 초 동안 모두가 똑같이 결과를 기다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대로 기억해야 할 장면으로 2012년의 ‘페일 메리’도 있다. 시애틀 시호크스와 그린베이 패커스 경기 마지막, 러셀 윌슨의 헤일 메리가 골든 테이트의 터치다운으로 판정되면서 시애틀이 14대 12로 이겼는데, ESPN의 당시 경기 기사에는 이 결말이 대체 심판(2012년 NFL이 심판노조와 임금, 연금, 운영 조건을 둘러싼 단체협약 갈등 끝에 정규 심판들을 직장폐쇄하고 투입한 자격 및 경력 부족 임시 심판진)들의 논란 속에서 내려진 결정으로 정리돼 있다. 이후 AP는 이 사건을 NFL이 2012년 심판 직장폐쇄를 끝내는 쪽으로 기울게 만든 대표적 계기라고 회고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헤일 메리가 언제나 숭고한 기적의 이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때로 그것은 축복보다 논란의 이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조차도 헤일 메리의 본질과 멀지 않다. 마지막 장면은 늘 질서와 혼돈의 경계에 있기 때문이다. 공이 가장 높이 떠오를수록, 판정과 해석의 균열도 함께 커진다.


이제 『프로젝트 헤일메리』로 돌아가자. 앤디 위어는 인터뷰에서 제목의 이유를 아주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는 처음부터 ‘헤일 메리’라는 표현의 변주를 제목으로 생각했고, 미식축구에서 그것은 경기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절박한 패스이며, 소설 속에서는 과학자들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타우 세티를 향해 우주선을 던지는 일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 설명은 지나치게 깔끔해서 오히려 더 좋다. 작가는 제목을 신비롭게 포장하지 않는다. 모호한 종교적 상징 대신, 아주 미국적인 스포츠 비유를 꺼내 놓는다. 덕분에 제목의 성격도 분명해진다. 이것은 기도문을 빌린 제목이지만, 실제로는 마지막 작전의 제목이다.


흥미로운 것은 위어가 같은 인터뷰에서 번역가들이 이 제목 때문에 꽤 애를 먹었다고 말한 대목이다. 미국 밖에서는, 심지어 영어권인 영국에서도 이 표현이 널리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헤일 메리가 보편적 종교 언어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실제로 이 제목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미국축구라는 지역적 문화 맥락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번역하기 어려운 제목이다. 왜냐하면 이 말에는 “기도”와 “마지막 패스”가 동시에 들어 있는데, 다른 문화권에서는 두 갈래가 자동으로 겹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독자나 관객이 이 표현을 한 번 더 설명 듣게 되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의 공식 소개 역시 이 제목을 정확히 받쳐준다. 공식 소개에 따르면 영화는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라이랜드 그레이스 박사가 “지구로부터 수백만 마일 떨어진 곳에서 홀로 깨어나 인류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는 이야기”이며, 그는 “죽어가는 태양의 수수께끼를 풀어 지구를 구해야 하는 과학 교사”다. 이 설정은 헤일 메리라는 말의 미식축구적 의미와 완벽하게 겹친다. 시간이 없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답이 없다.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던진다. 우주선 하나를, 임무 하나를, 인간이 가진 지식 전체를.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헤일 메리는 그래서 스페이스 오페라풍 수사가 아니라 서사의 구조를 압축한 말이다. 제목이 이야기의 뼈대를 이미 다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 제목을 이해해야 영화가 더 잘 보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헤일 메리는 단순한 종교적 수사가 아니다. 이 작품은 하늘에서 기적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계산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가능한 실험을 모두 거친 뒤에도 남는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이야기다. 그러니 여기서의 헤일 메리는 막연한 기도의 말이 아니라,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을 때 끝내 선택하는 마지막 시도의 이름에 가깝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헤일 메리가 본래 팀 스포츠의 언어라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쿼터백 한 사람이 던지는 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를 지키는 라인과 끝까지 달려 들어가는 리시버, 그 공을 두고 부딪히는 여러 몸이 함께 있어야 성립하는 장면이다.


그런 점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 역시 한 사람의 영웅담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 전체가 마지막으로 밀어 올린 하나의 시도, 집단적으로 던져 올린 마지막 패스에 더 가깝다. 무엇보다 헤일 메리라는 말에는 결과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시간이 들어 있다. 공은 이미 손을 떠났지만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고, 추락도 성공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몇 초의 시간.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 궤적을 바라보는 그 짧고 긴 순간.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붙잡는 긴장도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은 단지 인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서사의 구조와 정서를 동시에 압축한 말이 된다.


공이 아직 공중에 있는 동안, 경기는 끝나지 않는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제목이 오래 남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기도의 이름이면서 패스의 이름이고, 종교의 언어이면서 스포츠의 언어이며, 동시에 끝나기 직전의 세계를 부르는 말이다. 그리고 좋은 소설과 영화가 늘 그렇듯, 이 제목은 한 작품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 밖의 삶까지 따라온다. 선택지가 남지 않았을 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해보는 일. 미국인들이 오래전 미식축구에서 빌려온 그 말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결국 인간이 그런 장면 속에서 가장 인간다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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