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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프레임코웍스 Jun 11. 2019

어느 우아하지 않은 피겨스케이팅 선수 이야기

RULE BREAKER 1. 수리야 보날리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브랜드로 손꼽히는 나이키는 2019년 이런 메시지를 세상에 던졌다.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하나만 정답이라구? 둘 다 하면 안 돼?

과거가 너의 미래를 만든다구?

성적이 니 목표를 이루게 해준다구?

보여지는 게 중요하다구?

남들이 정해준 대로 할 거야? 니 뜻대로 할 순 없는 거야?

너 스스로를 믿을 때,

니가 어디까지 갈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거든.

넌, 너만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야.



'넌 어떤 사람이 될래?'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나이키의 브랜드 캠페인은 1분 1초. 총 8개의 질문을 던지고, 2개 문장의 조언을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그 여운은 길다. 엠버와 청하, 지소연, 박나래가 등장해서만은 아니다. 보아의 내레이션 효과만도 아니다. 여운은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메시지에서 영감이 되어 우리를 흔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rKo-vh1GNM8

나이키 2019년 캠페인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단언컨대, 나이키는 '시대정신'을 스포츠 정신과 가장 잘 버무려 말할 수 있는 화자다. 태생부터 그렇다. 나이키는 1971년 미국에서 설립됐다. 1970년대의 미국은 '자기중심의 시대'다. 근면하고 강인한 개인이 낼 수 있는 성과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에게 나이키는 '조깅' 문화를 선보였다. 조깅은 운동화 한 켤레와 게으름을 떨칠 정신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포츠다. 나이키가 선보인 러닝화는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이전까지는 조깅은 스포츠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도망자로 간주되어 체포되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리고 달리기는 아직까지 나이키의 중요한 DNA 중 하나다.)



콜린 캐퍼닉의 나이키 JUST DO IT 30주년 광고와 타임지 커버



나이키의 화법(마케팅)은 여전하다. 2018년 JUST DO IT 30주년 기념 광고에는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이 등장한다. 나이키가 그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콜린 캐퍼닉은 경찰의 흑인 과잉진압과 같은 인종차별 문제로 얼룩진 미국에 의도적 무례함을 표하기 위해, 경기마다 울려 퍼지는 미국 국가에 충성하는 대신 무릎을 꿇었다. 일부 층에게 분노를 샀고, 트럼프는 특히 진노했다. (개새끼들이라며 욕설난무) 그러나 미국의 젊은 층은 열광했다. 시대가 원하는 것은 억압이나 군림이 아닌, 평등과 자유였으니까.



나이키가 젠더 이슈가 뜨거운 한국의 시대에는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라는 캠페인을 선보이는 것은 이 같은 맥락이다. 이것이 태생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나이키의 매력적인 화법이다.




나이키의 외침 이전에 그녀의 백플립이 있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수리야 보날리. 바야흐로 나이키가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라고 메시지를 건네는 이 시대라면, 다양성은 시대정신을 관통하고 있다는 의미. 그녀는 이런 때에 꼭 한 번은 주인공이어야 한다.



수리야 보날리는 1998년 나가노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 피겨스케이팅 선수다. 그녀는 은반 위에 나타난 매우 드문 흑인이었고, 사연으로 포장되기 좋은 입양아였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보수적인 국제빙상연맹이 지배하는 국제대회에서 끝내 정상의 위치에 닿지 못했다. 그녀는 프랑스의 피겨 여왕이자 국제적 대회의 가장 중요한 선수 중 하나였다. (그녀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유럽 선수권 여자 싱글 부분 5연패를 기록했다. 5년 내내 유럽에서 피겨스케이팅으로 1등을 먹었단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올림픽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회자된다. 금메달 챔피언이나 여왕 같은 수식어가 아닌, '백플립'이라는 동작으로. 그녀의 은퇴 후 20년이 흐른 2018년에 허핑턴 포스트는 '우리에게는 더 많은 백플립이 필요하다'라는 편집장의 기고문을 실었다. 2019년 넷플릭스는 '승리한 패배자들'이라는 총 15부작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중 한편으로 그녀를 소개한다. ('어떤 판정'편) 물론 중심이 되는 소재는 백플립이다.



넷플릭스가 2019년에 선보인 수리야 보날리를 주제로 한 다큐 '승리한 패배자들 - 어떤 판정'



도대체 백플립이 뭐길래? 백플립은 은반 위에서 뛰어올라, 뒤로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돌아 착지하는 기술이다. 기계체조, 아크로바틱, 비보잉 등에서 볼 수 있는 동작이며, 전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 중 수리야 보날리만이 할 수 있는 고난도 점프 기술이다. 하지만 그녀의 백플립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적 희소성에 있지 않다. (또한 피겨스케이팅의 가치는 오직 고난도의 기술을 구현하는 소수의 선수에 있지도 않다.) 




전형적 아름다움의 기준과 달랐던 스케이터



그녀의 백플립은 기술 동작이 아닌, 국제빙상연맹에 맞서는 무엇이었다. 국제빙상연맹은 그녀를 두고 아름답지 못하며, 우아하지 않다고 줄곧 평가해왔다. 실제로 수리야 보날리의 스케이팅은 고전미의 추구와 거리가 있다. 즉, 전형적인 부류의 여성미나 곡선미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역동적이고, 강렬했으며, 가련하거나 애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세계챔피언이었던 옥사나 바울은 발레를 기본으로 한 우아한 백조 같은 스케이팅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번엔 심사위원들이 마음에 들어할까? 또 실패일까, 괜찮을까?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 넷플릭스, '어떤 판정' 중에서



그녀는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 무대로 세계무대에 데뷔한 이후 끊임없이 스스로를 향해 저 질문을 던져야 했다. 주류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그녀는 놀라운 탄성과 피겨스케이터로서의 힘이라는 무기가 있있었지만, 인정받기 위해 발레리나 같은 매력을 얻으려 힘을 쏟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를 매우 슬프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불안한 한 때를 겪어 본 사람이라면, 자기 확신 없이 무언가를 해내야만 하는 사실이 얼마나 끔찍한지 잘 알 것이다. 내가 속한 환경이 내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강요할 때, 그것은 나를 억누르거나 부정해야 하는 과정을 동반한다. 사람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방해 없이 그것을 선택하고 행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본능이다. 본능을 거세당한 인간은 빛을 잃는다. 스스로에 대해 회의적인 질문과 생각들은 곧 돌덩이 같은 무기력이 되어 자아를 눌러버린다.



이런 심적 혼란과 발목 인대 파열 부상의 고통 속에 1998년 나고야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리고 링크를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결심한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올림픽에서 그녀는 스스로 영웅이 되어보자고. 좋은 점수 같은 건 받지 않아도 좋으니, 주류가 그토록 그녀에게 강요했던 아름다움의 기준에 한 번쯤 정면으로 맞서기로 한 것이다.




단 한 번의 백플립, 그녀는 전설이 되었다



사뿐-



1998년 나가노 올림픽 프리 프로그램에서 백플립을 선보이는 수리야 보날리



선수생활을 해오던 9년간 그녀를 향한 모든 구속과 억압에 일갈하듯, 심사위원을 향해 '백플립'을 선보였다. 심사위원은 당황했지만 관중석의 반응은 달랐다. 그녀의 스케이팅 프로그램이 끝나기도 전에 환호성을 지르며 그녀를 연호했다.



얼마나 많은 관중이 올림픽의 참된 의미를 떠올렸는지는 알 수 없다. (올림픽은 1894년 쿠베르탱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스포츠를 통해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차별을 넘어선 세계평화를 이상으로 추구한다.) 관중의 환호는 본능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녀의 백플립 속에는 어떤 노력에도 주류일 수 없었던 한 인간이 스포츠를 통해 자유의지를 펼치는 비상의 순간이 담겨있다는 것을 모두 느꼈던 것이다. 마치 전기감전과 같이.



백플립은 그녀를 단숨에 전설로 만들었고, 그녀는 온전한 자유와 환희를 맛보았다




원래 그런 것은 없으니까



올림픽은 편견과 차별을 넘어선 인류의 평화를 도모하는 이상이라면, 삶은 진흙탕에 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왜?'라고. 1998년에 선보인 수리야 보날리의 백플립에는 기존의 기준에 당연히 수긍하지 말 것, 그로 인해 꿈을 단념하지 말 것, 세상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깎아내지 말 것 그 대신 ‘왜’ 그런 기준이 존재하는지 질문할 것 같은 현재를 넘어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갈망이 담겨있다.



여기에 뉴프레임코웍스는 한 술 더 뜨고자 한다.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며, 이것을 함께 이룰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 이 세상은 그녀의 백플립 같은 유쾌하고도 마땅한 반항을 통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 뉴프레임코웍스가 항해를 시작하는 2019년, 나이키가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한 번쯤 그녀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이유다.




* 사진출처 - 구글 및 수리야 보날리 공식 페이스북 

* 룰브레이커즈 시리즈는 뉴프레임코웍스가 추구하는 정신을 보여주는 브랜드, 인물, 사건 등에 대해 소개합니다. 뉴프레임코웍스는 일종의 마케팅 프로젝트이지만, 많은 물건을 팔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뉴프레임코웍스는 룰셋터(RULE SETTER)의 공식,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는 룰브레이커(RULE BREAKER)로 존재하기 위해 활동합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이 이야기를 보고, 함께 나눈다면 누구나 이미 뉴프레임코웍스 크루가 되어 그 움직임을 함께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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