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로켓 배송' 선점을 위해 배송 인력과 물류센터에 돈을 쏟아붓는 건 유명하다. 마켓컬리는 새벽 배송에 이어 '풀콜드'에 집중하며 '신선함'에 목숨 걸었다. 하지만 이들의 현재 실적은 적자. 투자받은 '총알'이 든든하니 더 큰 장악을 위해 현재는 인프라 투자 모드라고 한다.
투자가 있어 버틸 수 있는 일부 유니콘을 제외하더라도, 장사의 기본은 적은 돈을 들여 제품/서비스를 생산하고 이를 팔아 남긴 차액(이윤)을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본 공식은 요즘 같은 시대에 얼마나 풀기 어려운지 모른다. 소비자들은 최저가 검색과 보장을 지원하는 플랫폼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결국 싸고 질 좋은 제품/서비스는 생산원가나 운영비를 줄여야만 가능한데, 인건비도 유통비도 물류비도 마케팅비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 힘들다. (이러니 재고라도 생기면 눈물로 처리할 수밖에)
쇼핑, 무언가를 사게 하는 행위를 유도하는 게 너무 치열해진 이 세상. 하지만 유통에 필요한 그 어떤 것도 없이 플랫폼 하나만으로 물건을 팔아 대박 난 곳이 있다. 와디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와디즈의 크라우드 펀딩.
쇼핑이 아니라 '펀딩'입니다. 고객이 아니라 '서포터'구요.
와디즈는 쇼핑의 프레임과 룰을 아주 살짝만 바꿨다. 와디즈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는 단순 '쇼핑'이 아니라 공구에 가까운 '크라우드 펀딩'이다. 단어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프레임(개념)은 완전히 다르다. 우선 소비자나 고객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서포터'라는 정식 명칭이 따로 있다. 빠른 배송도 약속하지 않는다. 펀딩 기간이 지난 후 (결제 누락자를 위한 결제 재시도 기간 포함) 1주일에 걸친 결제 기간을 지나야 만 제품/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다.
쇼핑이 아님을 알려주는 와디즈. 품질에 이슈가 발생할 수도 있다.
와디즈는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개념을 새로 창조하지 않았고, 국내의 유일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도 아니다. 그러나 물건을 제조하고 유통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을 열어주었다.
첫째, 물건을 미리 만들 필요가 없다. 크라우드 펀딩은 펀딩 기간 동안 결제 예약, 일종의 '선주문' 받는다. 수요를 미리 예측할 수 있고 생산을 위한 최소 수량 (MOQ)를 달성하지 못한 펀딩은 무산되기 때문에 생산자 입장에서는 탁월한 리스트 헷징 시스템인 셈이다.
둘째, 제조비뿐만 아니라 광고비를 획기적으로 절감시킨다. 와디즈에서 펀딩을 진행하면 오픈 알림 (영화로 치면 예고편) 광고를 신청할 수 있고, 펀딩이 성공될 경우 펀딩(거래) 총금액에서 일부를 수수료로 내기만 하면 된다. 광고비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는 말이다. 와디즈도 펀딩이 성공할 수 있도록 구글과 페이스북 광고를 열심히 진행한다. 또한 '오늘 오픈한 펀딩/지지서명을 가장 많이 받은 펀딩' 등 펀딩 인기 외에 다른 지표를 통해 다양한 펀딩을 최대한 노출시켜준다. 펀딩이 끝난 뒤에도 공지를 올리면 서포터에게 알림이 가기 때문에 CRM 기능도 무료로 제공한다.
셋째, 프로젝트 오픈은 무료이며 개인도 참여할 수 있다.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개인도 프로젝트 오픈이 가능하다. 심지어 프로젝트 오픈 횟수는 무제한이다. (현행 법률 상 가능하다) 지방에서 농사를 짓는 분도, 뛰어난 아이디어가 생긴 학생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펀딩을 진행할 수 있다. 물론 펀딩이 성공하면 결제 수수료는 받아간다. (펀딩이 무산되면 아무 돈도 받아가지 않는다.)
이처럼 와디즈는 결과에 대한 수수료로 먹고 산다 펀딩 수가 많을수록, 결제 예약이 많을수록, 펀딩 성공이 많을수록 이윤을 더 많이 낼 수 있는 구조다. 이 구조 덕분에 사업이든 장사든 뭐든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자본금 0으로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최저가와 총알 배송에서 벗어나 '왜 이 세상에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게 고민할 수 있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믿고 거르는 와디즈'라는 해결과제
와디즈가 엄청난 거래액에서 오는 수수료로 이익을 내고, 제작자나 마케터들이 문제 해결에 기반한 기획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소비자'는 무슨 이익을 얻을까? 와디즈는 와디즈에서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든 제품이 '최초의 제품'임을 강조한다. 실제 제작자에게도 다른 유통망에서 선보인 적 없음에 대해 몇 차례나 확인한다.
얼리버드에게는 성지와 같겠지만,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물건을 구매하고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자기 효능감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오죽하면 차라리 기부를 하지, '믿고 거르는 와디즈'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믿고 거르는 페북' 이후 믿고 거르는 새로운 플랫폼이 추가되었다는 건 상당히 씁쓸하다.
최근 진행된 한 펀딩. 8천5백만 원 넘게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했으나, 쇄도하는 '사기 항의'에도 와디즈도 판매자도 특별한 공식 입장이 없다.
메시지를 통해서만 응대를 하겠다고 판매자(메이커)가 공지를 올렸으나, 만족스러운 대응이 되지 않아 구매자(서포터)들이 자발적으로 오픈 채팅까지 만들고 나섰다.
와디즈의 크라우드 펀딩 품질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알러지가 심각한 니켈 안경테는 물론이고, 지난 상반기 최고의 펀딩 누적액을 자랑한 '베이직북(랩탑)'은 30억이 넘게 펀딩이 되었으나, 막상 물건을 받아본 사람들은 차라리 비용을 올리고 더 좋은 품질로 만들어달라는 의견들을 남겼다. 8천5백만 원가량 펀딩 된 미니 에어컨도 품질과 무성의 대응에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이 같은 경우는 사실 너무 많아 다 열거할 수가 없다.
서포터(라고 쓰고 소비자라고 읽는다)들은 물건의 품질에 화가 난 걸까? 아니다. 사전 공지가 충분히 되어 있기 때문에 기대와 다른 물건이 오더라도 펀딩의 의미를 숙지하고 있다. G마켓이나 11번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펀딩이 완성된 이후 와디즈와 메이커의 무성의한 대응, 환불 불가의 원칙 등에 분노하고 있다.
와디즈는 사전에 프로젝트 검수를 진행한다. 판매자(메이커)의 자체 검수, 와디즈의 1차 및 2차 검수 과정이 있다. 하지만 와디즈는 과연 얼마나 모든 분야의 제조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까? 와디즈에 직접 펀딩을 진행해본 경험으로는 와디즈에는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프레시홀인원 통밀 식빵을 프로젝트로 올릴 때도 천연발효 방식이 아니라는 점을 명시했더니, '천연발효라는 인증을 받아오라'는 응답만 1주일째 받았던 경험이 있다. 메이커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매출과 직결되는데, 이메일로만 커뮤니케이션을 고수하는 와디즈의 응대가 답답하기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펀딩은 잘 마무리되었고, 높은 평점을 기록했으며, 현재도 뉴 프레임 코웍스 홈페이지에서 이를 바탕으로 잘 판매되고 있다)
와디즈는 수수료를 받는 플랫폼이다. 제대로 된 검수로 서포터와 메이커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서포터는 단순 기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와디즈와 같은 스타트업은 혁신을 통해 소비자 및 세상에 기여해야 한다. '믿고 거르는 와디즈'라는 말이 생겨나고, 결과에 대해 방관하는 이상 와디즈의 미래가 지금까지의 행보처럼 고공행진 일지 의문으로 남는다. 생면부지의 프로젝트를 믿어준 서포터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좋은 제품을 선보이려 노력하는 수 많은 기획자들이 와디즈의 태만함으로 갈 곳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 룰브레이커즈 시리즈는 뉴프레임코웍스가 추구하는 정신을 보여주는 브랜드, 인물, 사건 등에 대해 소개합니다. 뉴프레임코웍스는 일종의 마케팅 프로젝트이지만,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뉴프레임코웍스는 룰셋터(RULE SETTER)의 공식,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는 룰브레이커(RULE BREAKER)의 정신을 담은 물건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활동을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이 이야기를 보고, 함께 나누고 있다면, 당신도 이미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뉴프레임코웍스 크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