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년 차 인디펜던트 워커다.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고,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살아간다. 회사를 그만둘 때만 해도, 회사 없이 일한다는 개념은 프리랜서뿐이었다. 그래서 그때 '#탈회사형인간'이라는 개념을 스스로 만들었다. 아직도 이런 개념은 낯선지, 보는 사람 따라 나는 개인사업자도 되었다가 FIRE족도 되었다가 한다.
무엇이라 부르든, 셀프 고용되어 일하는 두 번째 6월을 보냈다. 옛 생각에 젖어보자면, 이맘때 회사는 늘 바빴다. 5월부터 상반기 성과는 잘 보이게, 하반기 운영안은 치밀하게 작성에 수정으로 지지고 볶을 때다. 여름휴가 일정을 팀원마다 취합하며, 겨우겨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의 고개를 숨 차게 넘어가는 그런 시기.
인디펜던트 워커에겐 으레 회사라면 갖는 이런 타임라인이 없다. 대신 마음에 째깍째깍 초시계가 있다. 본 적도 만진 적도 없지만, 만화나 영화 속 폭발물에 설치된 것 같이 생긴 게 틀림없다. 일을 다 못해내면, 그 폭탄이 쾅쾅쾅하고 터져버릴 것 같이- 이렇게 사람 마음을 초조하게 들볶을 수가 없다.
나에게 묻는다. 도대체 뭘 했니, 6개월을...
오늘 아침도 마음에서 울리는 초침 소리로 눈을 떴다. 1초의 지체도 없이 눈 뜨는 순간 마음에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벌써 6월 다 끝나고, 7월도 1주일이 넘어버렸어!' 창 밖으로는 초여름 선선한 바람 줄기 타고 새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내 마음은 눈 뜨자마자 지옥행이다. 그래도 일단 오늘을 시작해야지 싶어, 평소처럼 세수도 안 한 얼굴에 옷만 갈아입고 마스크를 챙겨 아침 산책을 나섰다.
'그 중요한 네이버 쇼핑 입점도 못 시켰지. 하반기 플래닝도 끝을 못 냈네. 뉴프레임코웍스 인스타그램은 엉망이고... 아우 씨, 진짜 도대체 뭘 했니, 6개월을.'
내가 미워도 이게 난데 싶어, 기가 죽었지만 그래도 그냥 걸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어쩌란 말이냐라며 (생각했지만, 사실 마음은 계속 불편한) 포기 비슷한 심정 뿐이다. 심란한 속마음과 전혀 상관 없다는 듯, 탄천은 깨끗한 아침볕에 반짝였다. 황새는 느릿느릿 고개를 주억거리고, 풀밭에 가끔 보이는 시들한 빨간 것들은 아마 봄 내내 영글었던 뱀딸기겠지. 그 위로 사람들은 간결한 차림에 잰 걸음으로 출근 방향으로 흩어졌다. 아침 산책마다 매일 보는 익숙한 풍경. 나도 그 속에 그렇게 섞여서 그냥 걸었다.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다. 인생은 에잇볼을 치러 가는 과정이라는 걸
집으로 돌아올 때쯤,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더듬더듬 걸어온 나의 상반기.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 유독 많아서, 모르는 길을 물어물어 찾아가는 심정으로 가득했던 시간들. 와디즈에서 뜨거운 성원 속에 치른 첫 앵콜펀딩은 얼마나 마음을 졸였으며, 29CM같이 근사한 곳에 입점할 때는 또 얼마나 주눅이 들었던가. (무려 스페셜오더!) 연말정산도 늘 틀리던 나였는데, 지자체 무료 세무상담 울며 불며 받아가며 세금도 결국 무사히 납부해냈다.
용기를 내자며 집으로 돌아와 씻고 커피를 내리는 홈오피스 오픈 준비 중에, 불현듯 당구게임이 떠올랐다. (나는 당구를 좋아한다. 어쩌다 보니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한 때는 당구장 집 딸이기도 했다.) 포켓볼의 에잇볼. 숫자 8이 그려진 이 까만 공은 자기 몫의 공을 다 넣고 마지막에 넣는 공이다. 에잇볼을 넣는 사람이 게임의 승자가 된다. 반대로 게임 중간에 모르고 넣어버리면 게임에 패한다.
그러고보니, 웬 놈의 상반기·하반기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지난 날에서 무작위로 추출하는 어떤 날도 그저 우리 인생에 주어진 '하루'일 뿐이다. 괜히 상반기 안에 뭔가 굵직한 것 하나 없이 지나가면 헛산 듯한 기분이나 심어주는 이 올드프레임이 지긋지긋하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오늘이나 잘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하마터면 또 까먹을 뻔 했다.
인생은 긴 게임이다. 중간에 자꾸 에잇볼을 넣고 게임을 끝내려 하면, 마음만 초조해질 뿐. 성취감도 좌절감도 순간을 스치는 단상에 불과하다. 우리 인생에서 넣어야 할 에잇볼은 인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나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는 한, 한 번도 틀린 말이라곤 안 하는 나이키도 그 옛날 그렇게 말했었다. 인생에는 피니시라인이 없다고 말이지.
뉴프레임마이라이프
뉴프레임마이라이프는 평생 직업이 회사원일 줄 알았던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한 기회에 회사를 그만두고, 저만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느낀 점들의 기록입니다. 숫자 8은 많은 문화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상징해왔습니다. (그런 이유로 뉴프레임코웍스의 시그니처 넘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구게임에서도 새 게임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이번 게임을 종료하는 에잇볼을 쳐야 하나 봐요.
인생은 진행 중인데, 우리는 어디서 솟았을지 모를 압박에 자꾸 결론을 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투박한 글 솜씨지만, 이번 시즌에는 삶이란 우연의 연속이며,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음에 대해서 제가 느낀 것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시즌2 '인생은 에잇볼'로 돌아와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또한 뉴프레임마이라이프를 사랑해주시고 기다려주셨던 몇몇 분들께 심심한 감사인사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