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프레임마이라이프 시즌2. 인생은 에잇볼
내 첫 명품백은 샤넬백이었다.
나는 그날의 영수증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압구정 현대백화점. 2010년 4월 17일 오후 4시 57분. 4백5십9만 원. 품목은 샤넬부띡. 그렇다. 내 첫 명품백은 샤넬백이었다.
형광등에 비춰야만 보이는 노르스름한 글씨의 흔적만 남은 영수증처럼 기억도 흐릿하다. 27살의 나는 현금다발을 들고 가서 그 가방을 샀던 듯하다. 깜찍한 치기로 가득 차서는, 꽤나 우아한 척 현금다발을 내밀었었다. 백화점 카드 결제 한도액을 높여도 샤넬백 금액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년이 흐른 후, 나는 37살이 되었고 이 핸드백은 여전히 잘 팔린다고 한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이제부터는 가격을 1080만 원으로 올릴 예정이란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화점이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을 서고, 매장이 열면 뛰어 들어가 산다고 했다. 해프닝 같은 뉴스 화면 속에서 그때의 내 마음 같은 것들이 겹쳐 보였다.
샤넬백은 그냥 가방이 아니었다.
열심히 일한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전리품이었다.
당시 내 나이 또래에 샤넬백을 가진 사람은 많이 없었다. 하지만 위로 고개를 들어보면, 이야기가 달랐다. 상무님, 이사님, 좀 이르게는 팀장님. 어떤 문제에도 준비되었다는 듯 정답만 알려줄 것 같은 표정의 성공한 사람들. 과장을 좀 보태자면, 그들의 어깨에는 전부 샤넬백이 자연스럽게 걸려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시절 돈다발을 들고 가서 산 건 샤넬백은 물론이요, 성공한 여자의 기분이었을 거다. 그 좁은 생각 속에서는 샤넬백이 나 대신 모든 것을 말해줄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많은 골머리를 앓아가며 프로젝트들을 멋지게 성사시켜 왔는지. 또 내가 얼마나 힘든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결국엔 성과 속에서 우아하게 서있는지.
그때의 나에게 샤넬백은 그냥 가방이 아니었다. 왜, 유명한 일화도 있지 않는가. 2000년대 인기 있었던 미드, '섹스 앤 더 시티' 속 사만다의 유명한 에피소드. 버킨백을 주문하기 위해 매장을 찾았다가 5년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그녀는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따진다. 그런 그녀에게 점원은 "손님 이건 그냥 가방이 아니에요. 버킨백이라고요. (It's not a bag. It's Birkin.)"라는 말을 남긴다. 비싼 가방은 열심히 일한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전리품이었다.
직급이 올라가고, 월급도 올라갔다. 어느덧 샤넬백은 3개나 되었고, 다른 비싼 핸드백들은 계속 쌓여갔다. 출근길이나 중요한 미팅으로 향하는 나는 왼손에는 랩탑 파우치나 서류철이, 오른쪽 팔에는 늘 비싼 가방이 대롱거렸다. 그 풍경은 노력과 성취에서 느껴지는 감동이라기보다는, 불편을 억누른 흔적이 역력한 어쩌면 좀 슬픈 듯한 느낌에 가까웠던 것 같다.
핸드백에 넣을 것은 소지품이지
내 인생과 열정과 욕망이 아니라고
남녀를 불문하고 가방에는 그것을 드는 사람이 살고 있는 삶과 추구하는 욕망이 동시에 담긴다. 그리고 현실과 욕망이라는 모순된 관계는 언제나 등을 부대끼며 같이 붙어있다. 진지하고 깐깐한 브리프케이스에도, 간결하고 경쾌한 에코백에도, 질긴 백팩에도, 우아한 핸드백에도 그렇게 저마다의 복잡한 매일이 담긴다.
잇백 같은 건 사라진 시대지만, 여전히 서바이벌 현장 같은 일터로 향하는 여성들의 손과 팔 그리고 어깨에는 여전히 핸드백이든 에코백이든 나름대로 멋을 부린 가방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노력한 것만큼 인정받고 싶고, 그 결과가 여유있고 멋이 넘치는 것이라면 더더욱 놓치기 싫으니까. 그래서일까. 내가 드는 가방이 무엇인지는 대다수에게 여전히 중요하다.
2010년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샤넬백 같은 누가 봐도 근사하고 좋은 가방은 하나쯤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핸드백에 넣을 것은 소지품이지 내 인생과 열정과 욕망이 아니라고. 우리 모두의 인생은 우주만큼 복잡하고, 값지며, 핸드백같은 예쁘장한 전리품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다고 말이다.
뉴프레임마이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