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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프레임코웍스 Aug 25. 2020

꼼꼼한 계획은
어떻게 삶을 망가뜨리는가

뉴프레임마이라이프 시즌2. 인생은 에잇볼




그 어떤 작은 우연도
끼어들 자리가 없는,
엄청나게 재미없는 사람



처음 입사했던 회사에는 좀 독특한 장치가 있었다. 정직원 누구에게나 1인 집무실과 초시계가 주어졌다. 처음에는 컨설팅 분야다 보니, 일하는 시간만큼의 수임료를 청구하는 계약들이 있어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스포츠 선수가 연습을 통해 자신의 신기록을 경신하듯, 비슷한 종류의 일을 반복할 때마다 더 빨리 일을 끝내라는 장치였다.



단 1초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회사에서 살아남으며 익힌 타임 매니지먼트는 엄청났다. 다른 회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연간이나 월간, 주간 단위 계획은 명함도 못 꺼낸다. 몇 년이 지나자 나는 매일을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법에 푹 절여졌다. 이직을 해도, 분야가 바뀌어도, 심지어는 내 개인생활도 초침 사이를 뛰어다니듯 다루게 되었다.



어제의 나보다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 덕분에 나의 일들은 늘 웃었다. 남들은 나를 부지런하다 부러워했지만, 내 기분은 그게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성취감이 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엄청나게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당연한 결과였다. 내 삶에는 그 어떤 작은 '우연'도 전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되거든,
인생이.



흔히들 사는 데 있어, 계획이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사소하게나마 계획을 세우면, 계획 때문에 약간의 노력이라도 더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얻는 것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테다. 하지만 목표가 있으니 계획을 세웠을 텐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면 목표도 이루지 못했을 터. 온전히 과정만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좌절을 감당해내야 한다.



(볼 사람은 다 본 것 같아 스포일러 걱정 없이 말해보는)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영화 기생충 속의 대사가 나중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생각해보자. '무계획이 계획이다. 너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NO PLAN.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되거든. 인생이.' 



영화 기생충 속 주인공이 뒤숭숭하게 인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이 대사가 삶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내뱉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나 예리하게 현실의 과녁 한가운데를 명중시키는 말인지 모른다. (봉준호 나이스) 



사는 건 결코 만만하지 않다. '우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연을 사랑하는데 드는 비용,
0원



'(그렇게) 사는 게 불안하지 않으세요?'



인디펜턴트워커(탈회사형인간)으로 살면서 수없이 받는 질문이다. 나는 언제나 불안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초시계를 끼고 살던 인간에서 우연을 받아들이는 삶으로 완전히 돌아섰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프랭클린 플래너 같은 사람보다는 몰스킨 같은 사람이 되는 편이 더 행복하다는 건 이렇게 살아본 사람만 안다.



우연을 사랑하면, 불쑥 나타나 인생을 꼬이게 하는 변수가 반가워진다. 갑자기 무마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이건 또 내게 무슨 기회를 가져다줄까 기대하게 된다. 모르던 사람과 억지로 어울려야 하는 자리도 다시 보게 된다. 어차피 다시 안 볼 사람이라는 낙인 대신, 언젠가는 인연이 되지 않을까라는 감사함으로 사람을 대하게 된다. 새로운 파트너사를 구할 때도, '오늘은 3번만 거절당하면 빨리 퇴근하자!'라는 마음이다. 숱하게 거절당하다 보면 정말 좋은 파트너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삶은 내가 살고 싶은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무런 인과 관계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이라는 우연이야 말로 삶을 지배한다. 불확실성, 복잡성, 애매함... '우연'의 모두 다른 이름이다. 이 모든 우연에게 인생의 한편을 내어주는데 드는 비용은 0원. 밑져야 본전, 대신 얻을 건 많다. 우연의 양면성을 사랑하면, 삶은 팽팽하지 않고 좀 더 따듯해지며 재밌어지기 시작하니까.



 



뉴프레임마이라이프


뉴프레임마이라이프는 평생 직업이 회사원일 줄 알았던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한 기회에 회사를 그만두고, 저만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느낀 점들의 기록입니다. 숫자 8은 많은 문화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상징해왔습니다. (그런 이유로 뉴프레임코웍스의 시그니처 넘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구게임에서도 새 게임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이번 게임을 종료하는 에잇볼을 쳐야 하나 봐요.



인생은 진행 중인데, 우리는 어디서 솟았을지 모를 압박에 자꾸 결론을 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투박한 글 솜씨지만, 이번 시즌에는 삶이란 우연의 연속이며, 모든 것은 하나의 고정관념이 아닌, 서로 다른 양면이 존재함에 대해 제가 느낀 것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시즌2 '인생은 에잇볼'로 돌아와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또한 뉴프레임마이라이프를 사랑해주시고 기다려주셨던 몇몇 분들께 심심한 감사인사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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