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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FT explorer 허마일 Nov 27. 2019

뛰는 인공지능 위에 생각하는 놈이 있다.

현실보다 현실이 되어버린 가상에서의 미래는 밝을 수 있다.

 초등학생을 거쳐 중학교 시절, 집에 들어와서는 방으로 휙 들어가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뻗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다급한 목소리로 여동생을 불렀다.

 “야 진짜 큰일 났어! 이거 봐봐!! 대박이야..!! 빨리 와봐!!  

 “응? 뭔데 그래?”

동생이 귀찮지만 호기심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왔다.  

.

 “불 좀 꺼줘..”


 여동생의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는 오빠의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찬다. 아무 이유 없이 동생을 괴롭히는 것은 출출할 때 퍼먹는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시원하다는 것은 현실남매의 불변의 공식이다.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었을까. 강산은 그대로인데, 인터넷이 나오고, 스마트폰을 거쳐 SNS까지 굽이치는 과정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거대한 시대의 쓰나미 속에 훌쩍 스마트해진 동생은 이제 나의 장난에 전혀 무관심하다. 장난기 많은 아이는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은 방에 살고 있지만 변해버린 놀이터의 모습에 무안할 때가 많다. 그게 아쉬웠던 걸까 나는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되었다. 그렇게 장난기가 놀 수 있는 무대를 부지런한 능구렁이처럼 만들며 살고 있지만 문득 자유롭고 순진무구, 천진난만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시리야~ 양말 좀 벗겨줘~”

 “하이 빅스비~ 불 좀 꺼줘"

 언젠가 집에 들어와 지친 몸을 침대에 구겨놓고는 시리와 빅스비(스마트폰 인공지능)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이들은 장난을 모르는 심심한 치들이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에는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동생의 그것이 없다. 괜히 욕을 해봤다.

 "이 재미없는 새끼야"


시리: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네요.

빅스비: 바른말 고운 말을 좋아해요.


 똑 부러지는 정 없는 말투에 내 관심도 기대도 뚝 부러진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했을까? 인류는 편함과 실용을 추구하며 엄청난 기술의 발전을 이룩했고 이제 그 성장의 가속도는 덩치가 어마 무시해지고 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오늘과 내일의 차이는 그 이상으로 폭이 커지고 있다.

 구글 마케터인 김용민 저자의 책 ‘가상은 현실이다’는 소셜미디어와 인공지능, 그리고 가상화폐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통찰로 가득하다. 이 예측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에 근거한, 오늘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는 내일이기에 귀를 바짝 세울만했다. 세계적인 인문학자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로 과거 인류의 발자취를 되짚으며 앞으로 일어날 대혁명에 대해 물음표를 찍었다면,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며 앞으로의 인류가 논의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였다. 읽는 내내 생각할 거리들을 쏟아져 어지럽다. 351페이지의 얇은 종이로 만든 책이지만 한쪽, 한 면에 찍힌 텍스트들이 던지는 생각의 무게는 묵직했다.  


 ‘기계에게는 인간이 가진 의식이 없지만, 반대로 인간이 가지지 못한 능력이 있기도 하다. 바로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초월적 사고력’이다. ‘의식 없음’과 함께 이는 기계 지능이 인간 지능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기계 지능은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대로만 사고하지 않는다. 기계 지능은 많은 규칙이 그에게 프로그래밍되었기 때문에 뛰어난 것이 아니라, 프로그래밍된 것 이상으로 판단하는 법을 알기 때문에 뛰어난 것이다. 기계 지능이 특정 영역에서 인간보다 우월해진 것은 바로 이 능력, 스스로 학습해 인간이 생각지 못했던 영역까지 사고하는 초월적 사고 능력 때문이다.’


 ‘프로그래밍을 넘어 판단하는 능력을 기계에게 부여한 것은 딥러닝 방법론이다. 이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것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상징적인 사건이다. 딥러닝 이후로 기계 지능은 그 이전과 달리 초월적 사고가 가능해지게 되었다.'

- '가상은 현실이다' 중에서 -


딥러닝: 기계가 학습을 반복해 답을 찾도록 설계하는 것. 하나의 입력에 대해 미리 정해진 출력을 내놓는 고정적인 프로그래밍이 아닌, 무수한 입력-출력 데이터 조합을 학습하여 입력에 대한 출력을 알아서 찾아내는 역동적인 방식


영화 포스터 왼쪽부터 '엑스 마키나', '허', '블랙미러: 시즌1 EP: BE RIGHT BACK

 책을 보는 것만큼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전구처럼 반짝한 영화들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공지능과 로봇을 핵심소재로 다루는 엄청나게 흥미로운 영화들인데, 영화를 다루는 글이 아니기에 아쉽지만 생략해야겠다.

 세 개의 영화가 공통으로 다루는 미래 기술은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꿰뚫고, 웹상의 빅데이터를 토대로 상대의 유머 코드와, 취향, 성격까지 분석해 관계와 소통에 있어서 사람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를 넘어선 물리적인 로봇이다. 스크린 속의 엄청난 기술들이 우리의 곁에서 희미하게나마 넘실거리고 있는 걸 보면 이 영화들은 더 이상 공상의 산물이 아니게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로봇은 인간,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반면 인간은 로봇이 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것은 너무 좁은 해석이다. 인공지능이 진짜로 대체하는 것은 절대자다. 인간의 일자리가 아닌 '신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다.
- '가상은 현실이다' 중에서 -

 '오늘날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인간 집단의 단순화다. 알파고가 바둑의 비밀을 풀어내는 동안, 인간은 각자의 소셜 네트워크 속에서 단순화된 신념 체계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중략) 봇이 인간을 닮아가는 것처럼, 인간은 점점 봇을 닮아가고 있다. 봇의 특징인 기계적 단순성, 집단적 사고와 행동, 자동반사적 반응은 소셜미디어 시대 인간에게서 두드러지는 패턴이다. 인간과 구분이 가지 않는 봇의 행동만큼이나 봇과 구분이 가지 않는 인간의 행동도 자주 관찰된다. 봇과 닮은 인간, 봇 맨의 등장이다.'

 '역설적이게도 페이스북의 비전인 '보다 열리고 연결된 세상'이 아니라, 소셜미디어 전반은 더욱 닫히고 배타적인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모두가 연결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이 택한 것은, 같은 편끼리의 강한 결속과 상대편에 대한 적대감 강화였다. 그렇게 동질적 이념을 공유하는 소셜 네트워크가 빠르게 형성되며 봇 맨이 배양될 환경이 마련되었다.'

- '가상은 현실이다' 중에서 -


 책에서 말하는 봇 맨은 소셜 네트워크 세상에 한해서만 쓰이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SNS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대중매체, 온라인 미디어 콘텐츠, 정치적 목적을 가진 언론, 심지어 부모나 친구의 의견과 조언까지 수없이 받아먹는 정보들에 있어서 사고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생각하지 않게 된 우리는 로봇이든 사람이든 타인의 의도 안에서 인생을 정복당하고 있는 '봇 맨'일 것이다.

 생각은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인간을 규정하는 행위이다. 내 기호와 취향을 분석한 인공지능이 퍼붓는 정보 세례는 끝도 없이 나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동물적인 감정과 본능에 한해 움직이게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의 뇌는 깊고 넓은 생각은커녕 얕고 짧은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은 단순 기관이 되어가고 있다.


 뛰는 인공지능 위에 '생각하는 놈'이 있다.


 우리는 감정과 본능으로만 반응하는 편도체, 동물의 반사적인 행동을 지양하고 이성적인 뇌, 사고와 언어를 관장하는 대뇌피질의 근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어떤 주장이나 사실을 대할 때는 글자 그대로의 물리적 해석이 아닌 목적론, 의미론적인 접근법을 끊임없이 훈련해야 한다. 사람의 약점인 불안감과 동정심을 자극해서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연막작전에 당황하지 말자. 항상 중립적인 관점에서 '왜'라는 물음을 무기 삼아 의심하며 진격할 때 현실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이 돼버린 가상이라는 전장 안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사람이 사람다움을 잊지 않고 지켜낸다면 우리는 절대 인공지능에게 잡혀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소셜 네트워크, 인공지능, 가상화폐가 가져올 엄청난 미래가 어둡고 아픈 우리 사회에 평화를 가져다 줄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전의가 불타오르는 밤,

침대에 누워 '생각'을 깊게 해 본다.

내 장난을 받아주는.

그 시절 동생에게 했던 것처럼 양말을 벗기게 하고, 발 냄새를 맡게 했을 때.

얼굴을 찌푸리고 욕하는 로봇이 있다면.

나와 코드가 맞아 함께 낄낄거릴 수 있는 인공지능 'Her'가 있다면.

그리고 내 동생보다 얼굴도 아주 조금만 이쁘다면.....






잡아먹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행복한 생각을 해본다.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미래는 황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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