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 직후 신촌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얼굴이 너무 선하세요” 다짜고짜 말을 걸어준 고마운 누나와 카페에서 시원한 빙수를 먹으며 20분가량 대화했던 적이 있다. (결코 끌려간 것이 아닌, 나의 자의였다. 더운 날씨에 이쁜 누나가 팥빙수가 먹고 싶다길래 남자답게 하나 시켰을 뿐)
일단 내가 호구가 아니라는 변명을 다급하게 늘어놓자면…
공중부양, 순간이동, 유체이탈, 텔레파시 같은 초능력이나 귀신, 천사와 악마 같은 영적인 존재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신실한 크리스천 부모님 밑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오며 함께 커져왔다. (모태신앙이신 많은 분들, 혹시 저 같은 증상이 없다 하시면… 네 저는 호구가 맞습니다.)
납득도 이해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점철된 성경을 보면서 종교를 향한 나의 불신과 반항은 커질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가득한 것이었다.
극심해지는 치질 때문에 고통에 몸부림쳤던 어느 날, 수술을 코앞에 두고 증상이 돌연 사라져 버린 것처럼(지금도 매운 걸 먹거나 술이 과한 다음날 가끔씩 고개를 내밀긴 한다.) 인류의 과학이 밝히지 못한 현상이 아직도 무수히 많음을 인정한다면 미지의 영역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서도 마음이 열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독립선언 후 퇴사한 나는 오늘도 기도와 명상을 하며, 돈다발로 만든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일명 딸라딘이 되는 상상을 한다.
이런 나의 호기심을 전제로 깔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보면 아직도 미약한 발걸음이지만 과학이 발전해오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부터 자기장, 주파수, 초음파, 에너지, 뇌, 우주 등등에 관련된 연구와 증명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쉬운 예로 불교의 샤머니즘 행위로 간주되던 명상이 이제는 의학적으로 엄밀한 뇌세포 운동임이 밝혀져 병원이나 건강센터에서도 필수적인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에 따라 새벽기도 왕인 우리 엄마의 방언이나, 어둠의 세력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영빨 같은 것들도 언젠간 과학으로도 밝혀질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이미 밝힌 연구와 논문이 있다면 알려주시길…)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과학과 신비의 닿을 듯 말 듯하다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뒤섞이는 이 경계, 봄비처럼 스며들기 시작해 젖은 것도 마른 것도 아닌, 부들거림, 현대 지식으로 설명이 가능 할랑 말랑 하는 바로 이 야들야들한 지점에 내가 강렬히 끌린다는 것이다. (변태처럼 보일까 봐 미리 전제를 깔아놨지만, 끄적이고 보니 실패한듯하다.)
자기 계발서에 흔히 보이는 자기 긍정, 자기 확신, 감사와 확언을 이용해 운을 만들고 우주의 기운을 부른다는 이야기는 미래가 불안한 젊은이들에겐 절실한 단비 같은 처방이다. 나 역시 열렬한 관심을 가지며 애타게 단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야들 거림의 스폿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바로 우주의 학문이라 불리는 명리학과 점성학이었다.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돼 있다. 인류는 코스모스(우주를 뜻하는 그리스식 표현)에서 태어났으며 인류의 장차 운명도 코스모스와 깊게 관련돼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 있었던 대사건들뿐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까지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기원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중에서 -
희대의 천문학자가 말했듯이 인류의 장차 운명을 우주를 통해 알 수 있다면, 어찌 나 같은 작은 인간의 사소하고 하찮은 미래라고 모르겠는가. ‘옳다구나 이거구나’ 했지만 덜컥 망설여진 이유는 알 수 없는 인생이라 아름다운 것이라던 말했던 나의 별, 이문세 형님 때문이었다. 나는 노래를 찰떡처럼 심장에 붙이고 살아왔다. 아, 퇴사를 앞에 두고 그토록 괴로워했던 딜레마가 다시 또 찾아왔다.
이런 고민이 가슴에 옹이처럼 딱딱해지고 있던 어느 날, (사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말이 많아 미안합니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의 인터뷰 자료를 엮어서 책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모든 영화의 전개가 그렇듯, 역시나 이 시점에서 등장하는 매력적인 그녀, 그 모임에서 한 여자를 만난 것이다. 그녀의 직업은 점성술사였다.
“저기 강사님, 괜찮으시면 꼭 차트(점성학에서 쓰는 별자리표) 봐드리고 싶어요.”
“오. 정말요? 그래 주시면 저야 너무 감사하죠.”
“네, 다음 주 중에 한번 연락 주세요!”
서로의 명함을 주고받았고, 점성학을 떠나서 그녀는 너무나 매력적이었지만 문세 형님의 말씀을 저버릴 수 없었다. (형님, 언제쯤 세상을, 사랑을 다 알까요. 정말 이래야만 할까요.)
며칠 뒤, 뜻밖에도 그녀에게서 먼저 카톡이 왔다.
‘재석님, 일전에 차트 봐드린다고 했던 것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돌아오는 주 화요일 저녁 7시, 저번에 뵈었던 홍대 카페 괜찮으실까요?^^’
‘앗,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감사합니다. 스케줄 확인해보고 곧바로 답장드릴게요!’
스케줄은 개뿔, 난 텅텅 비어 있는 강냉이 다 털린 옥수수. 망설였지만 머릿속으로 이 만남의 이유를 빠르게 그려보았다.
1. 우주의 기운에 대한 내 호기심, 그리고 내 미래에 대한 막연함은 괴롭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방향 정도만 살짝 알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2. 심리테스트 효과로 환기되는 기분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점성술사가 귀엽고 이쁘다.
내 나름의 타당하고 명백한 명분(특히 3번)에 힘입어 나를 둘러싼 우주의 기원, 그 뿌리가 되는 내가 태어난 도시, 생년월일과 시간을 적어 보내 주었다.
노란 전구색 조명이 은은하게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홍대에 한 카페, 그녀는 나의 별자리를 보며 내 미래와 운명에 관한 우주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절도 해라. 오른손잡이 시구나. 목에 저런 점이 있네?’했던 행복한 시간도 잠시,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진 그녀의 입에선 충격적인 이야기가 새어 나왔다.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워낙 밝으신 분이라 생각지도 못했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일까요?”
(허허, 인생의 굴곡은 누구나 있기 마련인데, 내가 그렇게 까지 힘들었었나? 아니 힘들어야 했던 걸까?)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우선 밑의 그림을 보시라.
허마일의 별자리 차트
<지질한 하루의 믿든지 말든지 빤짝 점성학>
점성술에서 다루는 별자리 차트는 원형으로 생겼는데, 한반도의 휴전선처럼 가로로 그었을 때 북은 빛이요, 남은 어둠이라 한다. (사람마다 차트마다 다를 수 있다.)
빛은 세상에 드러나는 외면 중심의 성향을 뜻하며 이는 명예와 권력, 인기와 부를 뜻한다. 이에 따른 직업을 정치인, 연예인, 사업가, 유명 운동선수 등이 될 것이다.
어둠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음이요, 내면 중심의 성향을 뜻하는데 이는 속세에 속하지 않음이요. 우주만물을 연구하고 마음을 공부하는 이들이 되시겠다. 자 감이 오는가? 내 별들은 전부 완전 어둠 천지인 것이? 나 같은 유형의 직업은 10시간 이상 명상하는 티벳 승려 라던지, 깊은 산골에서 묵언 수행하는 스님 정도 되시겠다.
나의 미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함이요. 아득한 어둠 속에서 나는 도를 닦을 사람이라는 것이다. 목소리로 먹고 사니 목을 아끼랬다. 싫어! 싫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싶었다. 재물도 명예도 없는 어둠이지만 명은 아주 길다고 말했다.
(***기질과 성향의 개념인 것이지, 빛이 마냥 좋고 어둠이 마냥 나쁜 것만이 아님을 확실히 말합니다.)
그녀는 갑자기 입에 모터가 달린 듯이 퍼붓기 시작했다.
한 가닥 희망이 있단다. 수평선 왼쪽 부분에 파랗게 걸친 지점... 그토록 내가 끌렸던 빛도 아닌 어둠도 아닌 야들야들한 경계선… 플루토(명왕성: 얼마 전 태양계에서 제외되면서 지위 강등돼버린 아웃사이더 왜소행성)의 기운에 걸쳐 있다는데, 워낙 소행성이고 빛의 기운이 약하기에, 칡흑 같은 감옥 속에 쥐똥만 한 구멍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햇빛도 아니고 은은한 달빛 정도 되시겠다. 점성술사는 바로 이 명왕성의 실 줄기가 신의 한 수로 작용해 내가 이제껏 이렇게 밝게 살아올 수 있었다 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잘 풀리고 싶다면 빛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며 소개해주겠다고 한 순간! 나는 갑자기 제대 직후 빡빡이 시절에 만났던 ‘도를 아십니까’ 누나가 떠올랐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레퍼토리, 하지만 차트가 너무 정확하잖아? 이건 신이나 점이 아닌 과학이 묻어있는 학문이라고.
표정관리가 안 되는 얼굴로 어설픈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헤어졌다. 실망감을 금치 못했지만, 비싼 점성 차트를 공짜로 본 것은 어쨌든 이득이므로(이득 맞지요?) 괘념치 말거라. 스스로를 달래며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그날따라 유난히 깜깜한 밤이었다. 젠장 가로등은 왜 꺼져있는 거야.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들어와서는 집에 있는 스위치란 스위치는 다 켜재끼고 침대에 누웠다. 잠시 멍을 때리며 ‘우주의 기운? 그딴 거 다 필요 없어. 우주니 별자리니 뭐니 전부 안드로메다로 꺼져버리라고(응 원래 너네 집이지 미안)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캄캄하다고? 흥, 어림없는 소리! 두고 보라고. 내 운명은 내가 직접 만드는 거야! 이 몸이 직접!’ 같은 유의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음… 그러고 보니, 내 생시가 새벽 1시가 정확한 걸까? 아니 원래 3시쯤이었던 거 같은데?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워 한 번 더 확인해서 가슴에 말뚝을 제대로 박은 후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을 듣다가 잠이 들었다.
언젠가 내 사랑을 찾겠죠
언젠가 내 인생도 웃겠죠
그렇게 기대하며 살겠죠
그런대로 괜찮아요
아직도 많은 날이 남았죠
알 수 없는 인생이라 아름답… 난 알아버렸다.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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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나 답을 준다던 나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재석님, 언제가 괜찮으실까요?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괜찮을까요?’
나는 고민 끝에 장문에 답장을 보냈다.
‘저, 사실 그때 말씀 못 드렸습니다만… 아버지가 교회 목사님이신데, 제 운명에 대해서 말씀드렸더니 꼴 보기 싫다고 당장 짐 싸서 나가라 하시네요. 아버지와 남처럼 지내는 건 어찌 그런대로 나쁘지 않겠지만, 아버지에게서 오는 용돈과는 결코 남이 될 수 없겠습니다. 아쉽지만,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로 하지요. 죄송합니다.’
라는 투의 거지발싸개 같은 톡을 보내 놓고 그녀와의 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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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7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현재,
시니어와 청춘의 소통 연결고리! 어르신들의 행복을 안내하는 눈부신 빛이 되겠습니다! 포부 있게 외쳤던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씩씩하게!! 캄캄한 방에서 열심히 라면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 어제는 무려 네 시간짜리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보는데, 노트북에서 나오는 빛에 눈이 시려 눈물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