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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FT explorer 허마일 Nov 17. 2019

세상과의 권태기를 날려주는 '낯섦'의 미학.

김영하 산문집 '보다'를 읽고


  '보다', 제목처럼 책장에 끼워놓고는 관상용으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야릇해지는 외로운 밤에 은밀히 꺼냈다. 엄지손가락으로 종이 날개를 더듬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드디어 그 속살을 들춰보았다. 내가 책을 탐한 건지 책이 날 유혹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날 우리는 새벽까지 침대에서 뒹굴었다.


사람을, 세상을, 우리를 
'다르게' 보다.

   

  '낯설게 하기', '다르게 보기'. 간절히 가지고 싶은 매력적인 능력이다. 글쓰기 능력은 의식과 훈련으로 불끈 솟는 알통과도 같다는데, 입이 쩍 벌어지는 문장을 만날 때마다 이게 길러지는 능력인지 타고나는 능력인지 의심이 출렁거려 멀미가 난다. 





  영화 '건축학개론'을 두 번 보았다. 풋풋한 로맨스 감성과 잔잔한 영상미에 끌렸고 무엇보다 한번 보기는 아쉬운 여배우들의 미모 때문이었다. 작은 엇갈림과 사소한 오해로 애절하게 스쳐 지나가야 했던 첫사랑의 추억, 어릴 적이나 자라서나 사랑에 어설프고 서투른 인물들은 나의 메마른 감성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두 번째 볼 때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의미가 담긴 장치들에 나름 집중하면서 보려 했지만 금세 수지, 한가인의 미모에 넋이 빠졌다. 분석이란 없었다. 다시 한번 감탄의 연속이었다. 


  김영하 작가도 그 영화를 보았단다. 그런데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는 '집짓기'가 핵심인 영화였다며 내 머리에 망치질을 하는 문장들을 후후 불어 제치기 시작했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나름 쌓아 올렸던 생각의 집은 짚더미로 만든 아기돼지의 집이었다. 늑대 같은 저자의 입김에 내 집은 날아가 버렸다. 


<내 집을 날려버린 늑대의 입김>

  '이 영화에는 두 개의 삼각관계가 등장한다. 건축가 승민(이제훈/엄태웅)-서연(수지/한가인)-서연의 아버지(이승호)로 이어지는 관계와 승민-서연-승민의 약혼자 은채(고준희)로 이어지는 관계가 그것이다.'


  '승민은 집을 지어달라는 첫사랑 서연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서연이 승민이 제시한 신축 설계안을 마뜩잖아하는 것이다.'


  '서연의 욕망은 삼각형에서 아버지라는 꼭짓점을 제거하고 승민과 '새집을 지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꼭짓점을 남겨둔 채 승민과 새로운 게임을 벌이려는(증축)것이다. 반면 승민의 욕망은 아버지라는 방해물을 깨끗이 제거한 채 서연을 독점하는 것일(신축)터이다.'


  '우리는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승민 같은 남자나 자기 욕망을 모르면서도 당당한 서연 같은 여자에게 더 끌린다. 우리의 내면은 자기 안에 자기, 그 안에 또 자기가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이 아니다.

  우리의 내면은 언제 틈입해 들어왔는지 모를 타자의 욕망들로 어지럽다. 그래서 늘 흥미롭다. 인간이라는 이 작은 지옥은' 


 -김영하 '보다' 중에서 


 이 책에는, 우리가 쉽게 접하고 접했던 영화, 드라마, 책, 뉴스, 신문 기사들뿐만 아니라 소소한 일상 속에서 접하는 타인과의 상황들에 대한 독특하고 신선한 생각들이 가득 담겨있다. 유쾌하고 유려한 소설가의 문장을 보는 재미에 더해 작가의 렌즈를 통해 낯설게 투과되는 세상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뻔하고 지루해 권태스러웠던 나의 일상에 절실히 필요했던 렌즈였다. 

포켓몬스터 '웅이'

 "눈을 왜 감고 다니냐, "앞은 보이냐"

 짙은 속눈썹에 옆으로 찢어진 작은 눈 때문에 숱하게 들었던 진담 섞인 농담들이다. 내 눈 못지않게 작은 김영하 작가님의 눈이 세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요지경의 능력을 갖춘 것은 나로서도 꽤나 희망적인 일이다. 나의 요지경도 즐거운 세상을 발견할 줄 아는 레벨이 되기 위하여, 오늘도 눈을 크게 떠본다.


김영하 작가와의 만남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 것인가'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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