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네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투자를 '양궁'이나 '사격'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내가 활시위를 얼마나 팽팽하게 당기는지, 호흡을 얼마나 고르는지, 그리고 언제 놓는지에 따라 과녁 정중앙을 뚫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투자는 '바다를 향해 페트병을 던지는 일'에 가깝다.

상상해 보자.

당신의 손에는 전 재산이 꾹꾹 눌러 담긴 투명한 페트병이 들려 있다.

규칙은 간단하다. 저 일렁이는 바다 위에 던진 페트병이 특정 지점에 정확히 돌아오면 당신은 부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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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제권이라는 달콤한 착각

당신은 모래사장 위에 서서 바다를 본다. 오늘은 바람도 잔잔하고, 파도의 주기도 일정해 보인다. 지난 수년간 바다를 연구했고, 조수간만의 차도 꿰뚫고 있다. 옆에 있던 누군가는 방금 던진 병이 기막히게 돌아와 환호성을 지른다. 자신감이 차오른다.

"지금이야."

당신은 정확한 각도로, 완벽한 힘을 실어 페트병을 던진다. 병이 손끝을 떠나는 순간, 당신은 확신한다. '이건 완벽해. 계산대로야.' 던지는 시점도, 던지는 각도도, 병의 무게도 모두 내가 정했으니까. 마치 수익도 내가 정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2. 손을 떠난 순간, 주어(Subject)가 바뀐다

하지만 병이 내 손을 떠나 공중에 머무는 0.1초 뒤, 게임의 주관자는 더 이상 '나'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바다'다.

철썩이며 다가오던 파도가 갑자기 뒤로 물러선다. 잔잔하던 바람이 홱 방향을 튼다. 내가 던진 병은 예상했던 지점 근처에 떨어지지만, 하필 그때 솟구친 너울이 병을 낚아채 먼바다로 끌고 간다.

당신은 당황한다.

"어? 내 데이터에 의하면 저 파도는 밀려와야 하는데?"

"지금쯤 돌아와야 하는데 왜 자꾸 멀어지지?"

바다는 당신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이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당신의 자세가 얼마나 완벽했는지는 바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바다는 그저 물리법칙대로, 혹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심연의 변덕대로 움직일 뿐이다.


3. 확률 99%의 함정

저 멀리 수평선으로 가물가물 멀어지는 페트병을 보며 누군가 위로한다.

"걱정 마. 통계적으로 저런 파도 뒤에는 99% 확률로 다시 돌아오는 조류가 생겨."

하지만 투자의 세계에서 이 위로는 잔인한 고문이다. 전체 바다의 확률이 99% 승률이라 해도, 지금 떠내려가는 내 병이 돌아오지 않으면 나에게는 100%의 실패다.

심지어 지난번에 100배의 수익을 냈던 판단과 경험도 아무 소용없다. 남들이 다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비참함만 더할 뿐이다.

내 눈앞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돈이 담긴 병이 수평선 너머로 영영 사라지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한다.

발만 동동 구르며 바다를 향해 소리쳐도 파도 소리에 묻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무력감을 느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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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투자의 본질

투자가 무서운 진짜 이유는 손실 그 자체보다

'과정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 있다.

우리는 단지 병을 던질 권리만 가졌을 뿐, 병을 돌아오게 할 능력은 가진 적이 없다.

던지는 것은 나였지만, 결과를 만드는 과정은 언제나 바다였다.

수익을 내가 만들었다고 믿는 것이 투자자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오만이자, 가장 늦게 깨닫게 되는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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