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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혹은 아집.

일본의 관광지에는 인형 뽑기 가게가 많다. 그중에도 파란빛과 하얀빛으로 밝게 꾸민 입구에 커다란 인형이 잔뜩 들어있는 뽑기 기계를 배치하고 아기자기한 유니폼을 입은 점원이 돌아다니는 가게는 우리 딸에게 놀이동산과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제 9살이 된 딸아이도 다른 선물 가게에서는 엔화가 한화로 얼마인지를 물으면서 가격을 가늠했지만, 놀이동산 같은 뽑기 가게에서는 천 엔은 천 원이고, 백 엔은 백 원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엔화가 마치 카지노의 칩처럼 쓸 때의 망설임이 실제 원화보다 가벼웠다.


소비의 경험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굳이 아이에게 비용을 자각 시키지 않았지만, 아이를 자제시킬 필요가 느껴질 때쯤 아이에게 주려던 엔화로 직접 뽑기를 해 봤다. 운이 좋게도 두 번만에 큰 인형을 뽑았다. 지금까지 아이가 썼던 비용을 환수받는 기분이 들었고, 무엇보다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것이 감성적으로도 보상을 받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손에는 동전이 좀 남았다.


어차피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천 엔을 바꾼 것이라
 남은 동전은 이제 덤으로 얻은 기회다.


성공을 한 경험과 남은 동전이 운만으로 얻은 성과가 아니었다고 느끼게 했다. 그래서, 남은 동전으로 좀 더 대담하게 다른 뽑기도 시도했다. 그렇게 두 번째 인형도 3번 만에 뽑았다. 점원들이 탬버린을 흔들며 축하해 주는 분위기에 딸아이도 환호를 지르며 너무 좋아했다.


이쯤 되니 정확히 설명은 못해도
뭔가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았다.


집게를 잡는 쪽이 아니라 미는 쪽으로 이용하여서 뽑기 편하도록 설정을 한다든가, 집어서 꺼내 오는 것이 아니라 올라왔다가 떨어질 때 입구 쪽에 붙도록 노린다는 식의 방법이 짧지만 직접 겪은 경험으로 얻은 것이고, 실제로 결과물을 얻으니 이 뽑기 방의 인형을 모두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림 계산으로 쓴 돈보다 얻은 이득이 컸고, 무엇보다 뽑기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이 성과를 겸손하게 운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나의 방법이 기반이 된 운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운이라는 기운이 빠질 때까지 좀 더 도전해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더 무겁고 값이 나가는
피규어에 도전했다.


두 번의 성공을 했던 방법으로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여러 번 놓쳤다. 나름 발전하는 인간형이라고 실패가 누적될수록 뽑는 방법은 점점 더 보완, 수정이 되면서 좀 더 성공의 가능성을 올린다고 생각했다.

지금 포기하면 이 기계에 들어간 돈은 그냥 버린 돈이 되겠지만, 조금만 더 시도해서 결실을 얻으면 내 생각이 맞다는 검증도 받고 버리는 돈도 투자의 과정이 될 것 같았다.


여기서 멈추면 지금까지 쓴 천 엔은
확정된 손해지만,
추가로 천 엔을 더 시도해서 피규어를 뽑으면
지금까지 천 엔과 앞으로 천 엔까지 투자다.


아슬아슬한 실패에도 아이와 아내의 기대 가득한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의 다 되었다는 신뢰와 응원을 보내는 것 같았다. 급하게 동전을 더 바꾸고 아이의 응원에 부응하기 위해서 신중하게 가시 도전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실패는 어찌나 아슬아슬한지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구경을 할 정도였다.

함께 아쉬워해는 주변 사람들도 왠지 나를 응원하는 것 같고, 아이에게 아까의 희열을 다시 느끼게 해주고 싶은 욕망에 10개의 동전은 금세 사라졌다. 이제 손해에 대한 망설임은 사라졌고, 성공에 대한 강한 도전의식에 도취되어서 다시 동전을 바꾸는데 처가 말했다.


“이미 충분히 즐거웠어요. 저 피규어를 꼭 원하는 것이 아니면 이제 집에 가도 돼요.”


좀처럼 나를 말리는 일이 없는 아내가 미소에 불만을 담아서 나를 말렸지만, 거의 다 만든 성공의 순간을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기대하는 아이에게 꼭 부응해주고 싶은 마음을 설명했다.


“좋아요. 그럼 더 해 봐요^^”


그러나 그 기계는 그 이후 5천 엔을 더 가져가고도 피규어가 뽑히지 않았다. 나의 운이든 실력이든 분명히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손해는 쌓여갔지만 내 머리는 손해를 계산할 상황이 아니었다. 좀 더 투자해서 저 피규어를 뽑아야 했다. 결국 5천 엔을 더 쓰고서 피규어를 뽑았다. 대략 피규어 하나를 뽑기 위해서 만 엔 하고도 2~3천 엔을 쓴 셈이다.


인형 두 개와 피규어 하나..

피규어를 얻어서 손해를 줄였다지만, 왠지 기분은 좋지 않았다.


난 언제 멈췄어야 했을까..?



투자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은 돈으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경험으로 수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자기만의 '투자 법칙'을 만들어 갑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충분한 경험이라고 판단이 되면 좀 더 큰돈으로 경험하고, 그 과정의 보상이 성공적이면 점차 시드를 늘려서 투자를 하게 되죠. 그래서, 어느 정도 큰돈을 투자를 하는 상황이라면 나름대로 확고한 '투자의 법칙'이 만들어집니다.


자기가 성공한 투자의 법칙을 누구에게나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검증을 받는다면 학술적으로도 주목을 받는 '이론'이 되겠지만, 각자의 '투자 방법'은 굳이 타인에게 검증을 받지 않아도 자기에게는 이미 경험으로 검증이 끝난 이론처럼 확고해집니다.


그런데, 경험으로 만들어진 이론에는 언제나 치명적인 '블랙스완'이 있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검은 백조가 실제로 나타나면 경험으로 만들어진 법칙이 확고할수록 블랙스완은 검기 때문에 백조가 아니라고 아집을 부리곤 합니다.


이런 아집으로 손해를 보전 중에도 '블랙스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가 실제로 백조가 아니라 검은 오리라고 판정이 나면 충분한 보상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집의 성공 경험은 점점 '블랙 스완'을 인정할 유연한 사고는 줄어듭니다.


아집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나의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더 이상 아집을 부릴 수 없는 잔고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모든 검은 새를 '블랙스완'으로 경계한다면, 수익을 얻을 기회마저 과도한 신중함으로 놓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집과 신중함 중 한 가지 태도를 정해서 고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아집을 부려야 하는지, 또 언제 신중해야 하는지는 각자의 성향과 경험에 의한 것이고 그 보상은 각자의 운이 포함된 결과입니다.  


다만, 스스로 투자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아집인지를 되내어 볼 손실 지점을 정해놔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난 할 수 있어.. 여보.
천 엔만 더 줘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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