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바다와 하늘밖에 안 보이는 세상. 땅은커녕 작은 섬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이 망망대해 한가운데, 작은 카약에 몸을 싣고 있다. 손에 쥔 건 패들 하나. 태양은 뜨겁고, 밤바다는 차갑다. 바람은 종잡을 수 없이 불고, 파도는 예고 없이 몰아친다. 물 한 방울, 음식 한 조각이 소중해지고, 체력은 서서히 소진된다. 가야 할 방향도 모르겠고, 언제쯤 끝이 날지도 모른다. 이대로 떠다니다가 그냥 사라지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바다를 혼자서 건널 수 있을까..?
그런데, 실제로 대서양을 카약 하나로 건넌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당시에 무려 70대였다.
폴란드의 탐험가, 알렉산데르 도바. 그는 100일 넘게 카약을 타고 대서양을 횡단했다. 오직 패들 하나로, 바람과 파도와 싸우면서, 끝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지나갔다. 우리가 일상에서 은유적으로 느껴지던 고난의 상황을 그는 현실적으로 고립된 채, 혼자서 버티고 극복해서 육지로 왔다.
나는 종종 이런 순간이 온다. 뭐 하나 되는 것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표류하는 느낌. 계획했던 길은 막히고, 애써 쌓아 올린 것들은 무너지고, 주변엔 도움을 줄 사람도 없다. 어디든 도착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하루하루 버티는 게 목표가 되고,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기약이 없다. 어릴 때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점점 현실을 알게 될수록 "이거 그냥 포기하는 게 맞나?" 싶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이런 인생의 바다를 혼자서 노를 저어 간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버티는 것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마치 도바가 70대에 바다 위에서 겪은 현실이 지금 우리가 고난의 바다에서 겪고 있는 것처럼 좌표도 잃고, 기운도 빠지고, 도착지 자체가 있는 건지조차 의심하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도바가 아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패들 하나뿐일 때, 육지에 닿지 않으면 그 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모두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결과주의적 오류가 매일 반복될텐데 망망대해에서 어떤 힘으로 도바는 노를 저었을까?
심지어 나는 언제부턴가 패들을 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패들을 놓지도 못한다. 이 패들을 놓아버리면 다시 나아가고 싶은 욕망이 들 때, 패들을 놓은 지금을 원망할 것이 더 두려워서 결단조차 내리지 못한 채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도바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나를 상상해 봤다.
바람조차 피할 수 없는 작은 카약 위에서, 거센 파도에 휩쓸리며 나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패들을 쥔 채로 멍하니 있을까? 거대한 파도 앞에서 무의미한 저항이라며 체념하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우선 패들을 저을 것 같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그저 살아 있으니 젓는다. 살아 있으려면 저어야 한다. 방향과 시간을 따져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망망대해에 있으니 해가 떠오르던 쪽을 향해서 계속 저어야 한다. 그렇게 젓다가 지쳐 쓰러지더라도, 포기하고 소금에 쩔어 말라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비록 지금은 바다 위에서 지쳤지만,
아직 포기한 건 아니니까.
벌써 포기한 척하고 싶지는 않다.
도바는 육지에 도착하고도 두번이나 더 대서양을 카약으로 횡단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했고, 74세에는 히말라야 등반 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는 그를 '자신을 소모하다가 끝내 사라진 사람'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끝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우리에게 중요한 건 도착지가 아니라,
패들을 놓지 않는 것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아직 패들을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