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에 수익률이 높은 정답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는 상식적으로 잘했는데도 손실이 나고, 눈감고 찍었는데 수익이 나는 게 시장이다.
감으로 얻은 수익을 자기 능력으로 포장하기도 하고,
열심히 고민한 결과의 손해는 운이 나빴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답이 없다는 말은
'항상 그러한 법칙'같은 것은 없다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투자가 동전 뒤집기라는 의미는 아니다.
주식의 가격은 기업 운영의 성적이 아니라,
종목의 인기의 방증이다.
당신이 오늘 매수한 기업의 재무제표나 기술적 분석, 재무적 분석을 해 보지 않은 것처럼
대부분의 매수자들은 해당 종목의 운영 성적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래도 산다. 가격이 오르는 것을 보고,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산다.
개미의 대부분은 가격의 변화만 보고 산다.
그것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렇게 몰린 개미들이 가격을 올리니까 개미가 산 것이 가격이 오르는 것이 달걀과 닭처럼 선후가 불분명한 현실이다. 그래서, 주식의 가격은 인기의 방증일 뿐이다.
우리가 맞춰야 하는 것은 인기의 흐름이다.
인기의 원인도 단조롭지 않다.
샘 알트먼의 방문으로 '샘표'의 주가가 오르고,
태풍 노루가 온다고 '노루표 페인트'의 주가가 오르는 것을 예측하고다음에도 그러한 인기가 올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성적표가 좋은 영업이익이 5년 연속 증가에도, 주가가 떨어지는 종목이 있고
퇴출 성적표인 영업이익이 3년 연속 적자인데도 시총이 50배가 증가하는 일도 있다.
그러니, 아무리 주가의 상식적 예측도 틀리 수 있다.
1억 원이 있을 때 -10%의 손실은 천만 원이다.
그 천만 원은 생각보다 견디기 어렵다.
하지만 500만 원의 -10%, 즉 50만 원의 손실은 감정적으로 훨씬 다르다.
-1,000만 원에서는 손절을 고민하지만, -50만 원에서는 '존버'를 선택할 수 있다.
같은 10%인데, 내 감정은 투자 규모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주식의 가격의 변동을 일으키는 많은 사람중에
전재산 1억으로 천만원인 손실인 사람의 감정과
1억 중 500만원을 투자한 50만원 손실인 사람의 감정이 함께있다.
누구의 감정이나 결과가 맞는 것이 아니고,
극단적인 손실과 여유로운 손실이 함께 있다.
목돈이 들어가면 같은 가격 변동에도 감정의 진폭이 커진다.
그래서 자산 대비 투자 비중이 클수록 가격 변화에 대한 예측 오차를 견딜 여유가 줄어든다.
비중이 클수록, 오차 허용범위는 작아지고, 판단은 조급해진다.
결국 비중은 예측의 허용범위와 반비례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의 크기를 정하고,
그 안에서 일관성을 지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투자자의 기준이다.
이건 마치 포커에서 스택 관리(stack management) 와 같다.
내 칩이 많을 때는 상대의 베팅을 여유롭게 본다.
손실을 감당할 여유가 있으니까,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택이 줄어들수록, 같은 베팅도 더 크게 느껴지고
조금만 밀려도 “이번 판을 무조건 따야 한다”는 조급함이 올라온다.
그 조급함이 결국 나쁜 결정을 부른다.
커밋(Commit) 도 마찬가지다.
이미 너무 많은 돈을 넣어버려서, 이제는 물러설 수 없다는 심리.
투자에서도 자산의 큰 비중이 들어간 상태는
커밋된 포커 플레이어와 같다.
손실이 나도 멈추지 못하고, 손실을 만회하려는 감정이 전략을 대신한다.
그래서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장의 방향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의 크기를 정하고 그 안에서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다.
포커의 고수들이 칩을 잃어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이미 ‘잃어도 되는 만큼만’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투자도 똑같다.
감정이 무너지지 않는 범위에서만 참여할 때,
비로소 우리는 끝까지 자신의 기준을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