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내가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등 각종 강의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인문학 강의인 이순신 리더십과 은퇴 후 후회하는 것들에 대한 강의는 제목 자체가 ‘희망과 절망’이다.
엄마의 자서전을 쓰면서 엄마의 희망과 절망을 생각해 보았다.
자서전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하는 내내 엄마는 “그때는 너무 좋았지”라며 희망을 이야기하셨고, “손이 벌벌 떨려서 마음속으로 빌었단다.”라며 절망을 말씀하셨다. 내가 엄마에게 절망을 적지 않게 주었음을 알았던 날, 많이 슬펐다. 아버지께서 엄마가 나로 인해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말씀을 해 주신 날, 나는 밤새 엄마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남형아 네가 대학교 수석합격 했을 때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네가 공무원으로 양복 입고 첫 출근 하던 날 그렇게 의젓해 보이더구나.”,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집에 데려오던 날 엄마는 음식을 차리며 노래가 절로 나왔단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어려운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고 전화 왔던 날, 은퇴와 관련한 책을 출간해 나에게 내밀던 날, 너무 기뻐 너 아버지와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엄마에게 희망을 주었다.
“네가 사관학교 시험 3차에서 불합격했을 때, 한참이나 남은 공직에서 퇴직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너를 위해 기도했단다.” “특히,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다고 했을 때 온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는 몸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을 만큼 아팠단다.”
엄마에게 절망을 주었다.
“둘째야 너는 어릴 때부터 유독 엄마를 좋아했단다. 엄마는 너 손잡고 다닐 때 참 행복했단다. 그리고 너는 항상 엄마의 기대에 부응했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늘 칭찬받는 네가 자랑스러웠단다. 너는 나의 희망이었다.”
“네가 새로운 도전에 실패했을 때, 이별의 아픔으로 한참이나 집에 오지 않았을 때 엄마는 밭에서 일하며 몇 번이나 주저앉곤 하였다. 너 어릴 적 손잡고 걸었던 신작로 그 길을 걸을 때 늘 너를 위해 기도했단다.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었다.”
엄마가 노환으로 자리에 몸져누우신 것은 어쩌면 내가 드렸던 아픔이 마음의 병으로 나타난 것이 가장 큰 원인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로 인한 아픔이 온몸으로 흘러내렸고, 그 아픔을 이겨 내시는데 온몸을 써야 했을 엄마, 이제야 엄마의 아픔을 절망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둘째 아들아, 너도 얼마나 애쓰며 살았겠니? 죽을힘을 다해 그 아픔을 이겨 낸 너를 보며 늘 네가 고마웠단다. 엄마는 너로 인해 행복했고, 너로 인해 아팠단다. 그런데 돌아보니 아팠던 것보다 행복했던 것이 훨씬 많더구나. 그리고, 이제 용서할 사람은 용서하고, 너도 용서받으렴. 너의 남은 생, 너와 아이들 잘 돌보며 행복하길 바란다. 엄마의 마지막 소원이다.”
나의 아이들이 나의 희망이다. 그러면, 엄마의 희망은 나였다. 나의 아들이 방황할 때 나는 아팠다. 그러면, 나의 아픔이 엄마에게는 절망이었을 것이다.
집을 찾을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아이들 잘 돌봐라 그리고, 사람들 마음 아프게 하면 안 된다. 우리 둘째는 내가 믿는다.”라고 이야기하셨다. 희망이다. 나에 대한 희망이다. 나에 대한 그 희망이 다시 엄마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엄마는 늘 나에게 희망을 이야기하셨다.
“엄마, 실패와 이별로 엄마 마음 아프게 한 것 죄송합니다. 온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푹 주저앉고 싶을 때 엄마 얼굴 떠올리며 버티고 이겨왔어요. 엄마가 나에게 준 사랑과 내가 엄마에게 줄 희망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