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독립운동 실패기

by 김쓰새

독립운동 실패기


생각보다 독립은 쉬웠다. 대학을 서울로 다니면서 마지막 학기때 겨우 자취가 허락되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산다’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작은 공간이더라도 문을 닫고 나만의 조용함을 만끽하고 싶었다.


먼저 인터넷으로 학교 앞 고시원을 알아봤다. 사진 속 방은 혼자 지내기에 더없이 알차 보였다. 작지만 깨끗했고, 창문도 있었다. 책상 위에 조그만 스탠드 하나, 벽에는 흰색 커튼. 그 사진을 보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다.


하지만 막상 내가 마주한 고시원은 달랐다. 사진 속 창문은 복도 쪽으로 나 있었고, 햇살은 하루 중 단 한 시간도 들지 않았다. 좁은 방 안엔 침대와 책상 사이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고시원에 들어가고 처음 며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피곤했다. 낮에는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TV소리, 밤에는 옆방 사람의 키보드 타이핑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컵라면을 먹으면 그 냄새가 복도를 타고 내 방까지 들어왔다. 방마다 문틈 아래로 불빛이 새어나왔고, 그 불빛들이 새벽까지 꺼지지 않았다. 옆방의 알람 소리와 컵라면 냄새,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대로 전해졌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혼자’라는 말이 ‘자유’가 아니라 ‘고독’일 수 있음을 배웠다.


고시원 방은 고향집 화장실 보다도 작았다. 짐이라고 해봐야 캐리어 하나, 책 몇 권, 그리고 데스크탑이 전부였는데도 방이 꽉 찼다. 방 한쪽에 놓인 얇고 좁은 매트리스 위에 앉으니, 삶이 아주 작게 접혀버린 기분이 들었다.창문이 없어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됐고, 머리맡으로는 옆방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됐고, 무엇을 먹든, 언제 자든,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비좁고 쿰쿰한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혼자’라는 자유를 느꼈다.


일을 구해야 했다. 방세, 교통비, 식비까지 계산하니 도시의 공기는 숨이 막힐 만큼 비쌌다. 다행히 학교에 국가근로장학생이란 제도가 있어 지원했고, 근로장학생으로 선정되어 조금은 안전하고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었다. 나는 특이하게 학교안에서 근로를 하지 않고 학교와 연계되어 있던 작은 출판사에서 일했다.처음엔 단순히 교정지를 옮기고, 원고를 정리하는 정도였지만 활자와 종이 냄새가 나는 공간이 좋았다. 가끔 편집자가 커피를 타오며 원고를 넘길 때,그 뒷모습을 보며 내 미래를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시급은 낮았고, 마감이 다가오면 밤늦게까지 복사기 앞을 지켜야 했다. 좁은 사무실 안에서 쌓여 가는 종이 더미와 피곤한 얼굴들을 보며, ‘도시에서의 삶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고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이 싫지 않았다. 버스 창문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 퇴근 후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창백한 공기, 그 모든 게 내 인생의 시작같았다.


그러나 이런 낭만속 우울을 이기지 못했다. 고시원 얘길 하자면, 분명 여성 전용이라고 해서 안심했지만 밤마다 남자 소리가 들렸다. 옆방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와 남자의 묵직한 기침 소리,

공용 주택에서 지켜져야 할 규칙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화장실도 더러웠다. 사용한 휴지는 휴지통 밖으로 흘러나와 있었고, 물을 내리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공용 샤워실 하수구에는 늘 머리카락이 가득 쌓여 있었고, 어떤 날은 샤워기에서 녹물이 나왔다. 심지어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좁고 쾌쾌한 공간에서, 이런 불편함과 소음 속에 누워 있으면‘혼자 산다는 것’이 마냥 자유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그 무렵, 어느 고시원에서 살인사건이 났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다.그날 밤, 방 안으로 연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끼고 화들짝 놀라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주방에서 누군가 요리를 하고 불을 끄지 않아 프라이팬이 타고 있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연기 냄새가 코를 찌르고, 화염의 열기보다 더 빠르게 심장이 뛰었다.‘이 좁은 공간에서 죽는건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곧장 연기를 걷어내고, 타버린 도구를 찬물에 담가 진화시킨 뒤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안그래도 세상에는 고시원 살이에 대해 안좋은 소문이 돌고 있을때였기에 복도로 나온 사람들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하고 아우성을 쳤지만, 누가 그랬는지 실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스스로 잘 지켜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규칙이 있고, 여성 전용이라는 안내문이 있었지만,그 모든 것은 종이 한 장에 불과했다.혼자가 되는 순간은 모든것을 스스로 챙겨야 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피부로 깨달았다.


사실, 이 경험 이후 나는 잠시 고향집으로 내려갔다.첫 독립의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고,좁고 지저분하며 안전하지 않은 고시원에서의 나날은 생각보다 버거웠다.혼자라는 자유는 달콤했지만, 동시에 위험과 괴로움이 뒤따랐다. 게다가 바로 취업이 되지도 않아서 방세를 낼 처지를 점점 잃어갔다. 이렇게 첫 독립은 실패였다.


하지만 그 실패 덕분에 나는 독립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배웠던거 같다. 독립은 어려운 것이었다.


우리 나라가 한 번에 독립하지 못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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