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중 후퇴
독립생활로 얻은 것은 몸과 마음의 병이었다.
더 이상 일을 할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되자
나는 결국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돌아간다는 표현보다는, 후퇴했다는 표현이 더 가까웠다.
그 집은 넓었고, 볕이 깊이 들어왔다.
낮은 담장 너머로는 논이 이어지고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도
시끄럽지 않았다.
백 명 남짓 사는 시골 마을의 오래된 집.
그곳에서 나는 아주 천천히
살아남는 법을 다시 배웠다.
그 시간이 6년이나 이어질 줄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고향에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 사는 친구들이 있었다.
서로의 결혼식도, 이직도, 실패도
알지 못한 채 멀어진 관계들이
다시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을 힘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도시에서 멀어진 첫 며칠은
그저 잠만 잤다.
아침이면 귀가 따가울 만큼 울어대는 새소리,
밭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느린 발소리,
삽이 흙을 가르며 내는 낮은 마찰음이
온 집 안에 퍼졌다.
그 소리들은 내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았다.
그것들은 부드러웠고
나를 다시 잠으로 데려가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나는 먹고, 자고, 울고, 다시 잤다.
말 그대로 신생아 같은 생활이었다.
그러다 아주 미세하게,
내 안에서 움직임이 되살아나는 순간이 왔다.
그래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심리학 책을 펼쳤을 때
내가 지나온 시절이 되돌아왔다.
이해하는 것이 곧 치유일 거라 믿었지만
알아버린 사실들은 오히려 나를 더 아프게 했다.
모르는 것이 약일 수 있다는 말이
그때 처음으로 뼈 아래까지 내려왔다.
어떤 날엔 물건을 던졌고,
어떤 날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럼에도 나는 멈춰 있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움직이는 사람이었고
그 와중에도 사람을 만났고
책을 읽었고
집 근처 도서관에서 업무 보조를 했다.
하루 네 시간, 한 달 80만 원.
집세와 공과금이 없는 삶에서
그 돈은 부족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집이 있다는 것은,
내가 누울 바닥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무너뜨리지 않게 붙드는
가장 원초적인 힘이라는 것을.
집이 있어야 비로소 독립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고요함에 익숙해질수록
움직여야 한다는 신호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몸 안에서 올라왔다.
들판은 눈부셨고
햇살은 넓었으며
고요는 내 안을 다 채워주었지만
그것들이 다 채워지고 나자
나는 다시 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거침없이 달려 나갈 수는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간 지 2년째 되던 해,
나는 다시 서울의 일자리를 구했다.
좋은 회사였다.
안정적이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이었다.
그런데 나는 한 달, 두 달,
길어야 1년을 버티고
또 그만두었다.
도시는 다시 나를 삼키려 했고
나는 다시 몸을 움켜쥐고 버텨야 했다.
괴로웠다.
나는 대체 무엇을 향해
그토록 움직였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