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낸 날들
언덕집을 떠난 다음 선택은 반지하였다.
그곳도 투룸이었고, 지하철 역과 매우 가까웠다.
그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사를 마치고 마주한 반지하방.
창문은 있었지만,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빛은 바닥까지 닿지 않았고,
나는 그 바닥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반지하의 단점은 뭐니 뭐니 해도 가는 빛줄기와 환기였다.
언덕 위에서는 매일 숨이 찼지만, 낮은 창이 있는 이 집에서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낮에도 불을 켜야 했고,
창문을 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목과 매연이 먼저 들어왔다.
그게 반지하였다.
퇴근하고 겨우 도착한 어느 날이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싶었는데,
변기가 먼저 울컥하며 소리를 냈다.
변기가 역류한 것이다.
물은 흙냄새와 함께 바닥을 뒤덮었고,
그날따라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이게 내 선택의 대가인가 싶었다.
주인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오래된 집이라 그래요, 아오 골치 아파.
나도 당장 이 집 정리하고 싶다니까.
며칠만 참아요, 정화조 청소 부를 테니까.”
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이 집을 ‘선택’ 한 게 아니라
그저 허용된 자리로 밀려 들어온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하수구 냄새와 치약 향이 뒤섞인 물을
작은 바가지로 조금씩 퍼냈다.
손목이 아프고 허리가 저렸는데
이상하게도 그때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울 힘 같은 건 이미 다른 데 쓰고 온 것 같았다.
다음 날 출근길,
버스 손잡이를 잡은 내 손끝에서
희미하게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악몽 같은 공간에도
조금은 따뜻한 순간들이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젖은 머리로 바닥에 앉아
브라운관 TV를 보던 밤들.
커피믹스를 머그컵에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마시던 순간들.
그 집에는 내가 만든 아주 조용한 온기가 있었다.
그리고 집 옆에는 다정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백반집이 있었다.
6천 원으로 밥과 국, 다섯 가지 반찬을 먹을 수 있었고
사장님은 남은 반찬을 싸주기도 하셨다.
밥이 질릴 때면 집 근처 쌀국숫집에 갔다.
블로그에 리뷰를 써줬다는 이유로 만두를 더 얹어 주던 사장님도 있었다.
작은 보답이었지만,
혼자 사는 날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흰머리가 빨리 찾아와 염색을 자주 했는데,
동네 미용실 중에는 2만 원 하는 곳도 있었다.
게다가 머리도 더 잘 됐다.
그때는 조금 뿌듯하게 돈 아끼는 맛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드라마 속 단칸방이나 옥탑방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모양새는 얼추 비슷해지고 있었다.
숨이 찼던 그날들 속에서,
나는 버티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