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집

사는법

by 김쓰새

첫 독립의 실패, 고시원 생활, 그리고 어렵게 얻은 원룸을 지나 서울에서 스무 번째쯤으로 가파르다는 언덕 위의 투룸으로 이사했다.

낯설고 고단한 시간 속에서 조금씩 살아가는 법을 배워갔다.


그집에 나를 들였을때부터 현실이 얼마나 팍팍한지 알았다. 화장실이며 주방, 현관으로 바퀴벌레와 곱등이가 드나들었다. 또, 옆집 남자 대학생의 쿵쾅거리는 발소리,

어떤 아저씨의 큰 기침 소리에 마음이 늘 긴장했다.


옆옆집에는 치매가 있는 할머니가 살았다. 가끔씩 문을 열고 들어와 “애기, 밥 못 먹었지?” 하며 부엌을 기웃거리곤 했다. 하도 성가셔 그 집에 찾아가 사정을 말하자

며느리는 “그냥 이해하세요”라고 말했다.


이사한 날, 주인아줌마는 말했다.

“쓰레기는 저기 가로수 밑에 몰래 버리면 돼~ ”

그런 행동은 본 적도, 배운 적도 없었다.

서울살이가 이렇게 인심까지 바꿔놓는 걸까 싶었고

나는 저리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퇴근 후 언덕을 오를 때면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특히 눈이 온 겨울이면 발이 푹푹 빠져

마치 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했던 때다.

춥고 힘들었지만 몸이 움직였고,

땀을 흘리며 살아 있다는 감각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혼자 지내던 어느 날, 몸과 마음의 감각이 사라졌다. 잠시 일을 쉬게 되었고, 낮에도 밤에도 불을 끈 채 지냈다. 창문 밖 햇빛조차 과분하게 느껴졌다.

그 시간을 통과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 시기는 세월호 사고가 있던 때였다.마음이 무겁고, 세상을 피하고 싶었다. 며칠 동안 뉴스를 보며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꼈다. 감히 그 감정이 내 생활 속까지 스며들었다.


점점 나는 예민해지고 뾰족해졌다.작은 일에도 쉽게 불편해하고, 사람들과도 자주 부딪혔다.


버스가 붐비던 날, 누군가 내 팔에 손을 대길래 밀쳤더니

그 사람이 오히려 욕을 퍼부었다.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는 걸 보고

욕 한마디 섞지 않은 말로 맞받았다.

이후로 다시 마주친 적이 없다.

도시에서 살아남는 법은

이런 사소한 충돌 속에서도 지지 않는 거였다.


그 시절 나는 지금보다 훨씬 말랐는데도

스스로 뚱뚱하다고 생각했다.

‘살 빼준다’는 포스터를 보고 찾아간 가게가

알고 보니 다단계 판매장이었다.

다행히 돈이 없어서 제품을 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하나의 구원이었다.

‘없는 게 매리트’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 시절에도 좋은 사람들은 있었다.

덕분에 나는 그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어느 날 윗집 세탁기 호스가 빠져

물이 우리 집 현관으로 쏟아졌다.

윗집 사람은 나와 비슷한 사회초년생 같았고,

계속 미안하다고 허리를 숙였다.

너무 안쓰럽게 사과를 하길래 나도 같이 청소를 했다.

며칠 뒤, 명절이 지나고 나니 문고리에 감 한 봉지가 걸려 있었다. 서로의 실수와 당황을 이해하며 조용히 마음을 나눴다.


모두 사는 법을 경험한 기억들이다.

더 또렷이 기억나면 좋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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