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걸 채워 넣는 일

by 김쓰새

독립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독립 후 내가 만난 나는 그다지 깔끔하지 않았다. 회사와 집을 오가며 하루를 버티는 사이에 싱크대엔 설거지가 쌓였고 빨래는 계속 미뤄졌다.


첫 번째 살았던 원룸에서는 빨래를 하려면 4층 공용 세탁실로 가야 했다.

건물에 사는 모든 임차인들이 하나의 세탁기로 빨래를 하려면 순번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빨래 한 번 하기가 쉽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세탁실에 마련된 건조대 수가 적어서 빨래를 걸 수 있는 양이 한정적이었는데 건조대에 이미 차지하고 있는 빨래들로 어쩔 수 없이 방에서 빨래를 말려야 했다. 당연히 건조는 완벽히 되지 못했다. 마음먹은 대로할 수 있던 것을 못하게 되었을 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힘을 느꼈다.

또, 빨래를 마치고 빨랫거리를 들고 방으로 돌아오는 원룸복도에서 시골에서 살 때에도 보지 못한 바퀴벌레 떼를 발견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벌레를 보면 몸이 굳는다는 것을... 살면서 만나지 보지 못한 벌레를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겁쟁이인지 알았다. 알았다 하더라도 벌레 따위에 몸의 온 신경이 곤두서는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렇게 벌레와도 살이를 같이 하게 되었고 기본적인 빨래마저 원활하지 못하고 나의 날들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을 느꼈다.


기본적인 것도 갖추지 못한 것을 하나 둘 깨달으며 스스로 세상에 이런 바보가 따로 없다 생각했다. 야무지고 온갖 똑똑한 척은 다했던 나는 라면 하나 끓이려다 냄비가 없다는 걸 깨달아 마트에 가서 냄비를 사고, 말린 빨래를보관할 서랍장이 없다는 걸 깨닫고 시장 안에 있는 가구점에 가서 플라스틱으로 된 4단 서랍장을 급히 사 왔다.


당시 나의 일상은 '없는 걸 채워 넣는 일'이었다.


수건, 휴지, 고무장갑, 쓰레기봉투 같은 것들을 사면서 문득

엄마는 이런 걸 다 어떻게 챙겼던 걸까.했다.


살림살이란 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돌봄의 흔적'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한 달쯤 지나자 원룸이 주는 '내 공간'이라는 설렘보다 '내가 관리해야 할 공간'이라는 현실이 앞섰다.


수시로 새어 나오는 벌레를 잡고, 누수가 생기면 수도 밸브를 잠그는 등 그런 온전치 못한 곳에서 나오는 각종 공과금을 내면서 한숨을 쉬었다.

만족스럽지 못한 것에도 돈이 들어간다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고시원에서 원룸으로 상승했다고 생각했는데 별반 다를 게 없는 나날들이었다.


밤이면 옆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짖는 소리와 반대편 옆집 남자의 전화 통화 소리가 벽을 타고 흘러들었다.


그렇게 그리던 도시의 밤은 고요하지 않았다.


또, 끼니 늘 챙기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땐 오히려 회사에서 회식이 잡히면 괜히 좋았다. 공짜 밥을 그것도 고기 아니면 회 같은 자취 하면서 먹기 힘든 것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혼자 밥을 먹어야 했는데 먹는 것을 챙기는 것 또한 엄마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다른 반찬, 다른 국이 나오던 식탁을 뒤로 하고 대충 때울 수 있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시리얼을 먹으며 간신히 배고픔만 달래는 생활에 스스로의 어설픔을 인지했다.

외롭다는 감정보다는, 이제 진짜 '살고 있다'는 실감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가끔 문 앞 택배를 옮겨두던 옆집 언니가 있었다.

이름도 모르지만, 퇴근길에 마주치면 짧게 인사했다.

그 짧은 눈인사 하나가,

이 도시에서 내가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 같았다.


독립은 화려한 선언이 아니라 하루하루 쌓이는 생활의 무게였다.

그 무게 속에서 나는 조금씩,

'사는 법'을 배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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